환율 불안 가중, 국내 경제 신인도 타격 불가피…정치 상황 격변으로 경제 회복 계기 약화 우려
[일요신문]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우리 경제에 상당한 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적 안정성 훼손에 따른 원화 자산의 리스크 프리미엄 확대가 불가피하다. 계엄군이 반헌법적으로 국회 무력화를 시도해 윤 대통령의 내란죄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국면으로 이어진다면 정치 이슈에 가려 경제 성장 회복 계기가 약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해제를 선언한 12월 4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비상계엄 해제 직후 열린 12월 4일 금융시장에서 원화 자산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코스피는 2% 가까이 급락했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2.7%를 넘었다. 채권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이다. 3일 계엄령 직후 1440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한 후 상승세가 둔화됐지만 여전히 1410원대를 웃돌고 있다. 연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 상승은 원화 가치의 하락이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국내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 외국인들을 환차손을 피하기 위해 보유자산을 내다 팔 필요성이 커진다. 이번 계엄사태 전에도 내년 원·달러 환율이 1475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전망이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부담까지 감안해 코스피 하단을 2100선까지 낮추는 증권사들도 등장했다. 계엄 쇼크가 사실상 코스피에 대한 매도 의견으로 이어진 셈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이번 계엄령 사태로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신인도 하락이 원화 가치와 경기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야당의 대통령 탄핵 움직임을 고려할 때 정치 불안이 길어지면서 내수 부진 현상이 심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리스크에 정치 불안 리스크까지 더해져 한국 기업들의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확대되면 외화 조달비용 부담도 무거워진다. 한국 기관의 해외채권 만기 물량은 올해 426억 달러에서 내년 524억 달러로 크게 늘어난다. 차환발행을 많이 하려면 그만큼 이자를 높여야 한다. 이렇게 해외에서 조달금리가 높아지면 국내 자금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박석중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긴박한 정치 상황 변화로 주요 외신과 글로벌 투자자들 대부분이 원화 표시 자산에 약세 불가피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2월 3일 오후 10시 30분경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국회 정문이 닫힌 채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국회 앞 도로에 계엄으로 투입되었던 육군전술차량이 시민들에 의해 둘러싸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내년 경제 전망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택한 배경에는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야당과의 갈등이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한은 전망치는 정부의 기존 전망치(2.6%)를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각각 제시한 2.5%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2.1%에서 1.9%로 낮췄다. 이는 한은이 추산한 잠재성장률(2%)보다 낮은 수준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출을 최소화해 재정건전성을 지킬 방침이다. 성장률 둔화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출범하는 탓인 만큼 예산의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회에는 예산 증액권이 없다. 결국 민주당으로서는 감액을 지렛대 삼아 내년도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정부의 양보를 받아내야 하는 처지다. 대통령 탄핵 등으로 정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정치권도 조기 대선 바람에 휩싸이면 나라살림 문제는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김용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 2008년 4월 이명박 정권 광우병 사태, 2016년 10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와 2015년 브라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정국 등의 해외 사례에 따를 경우 주식시장의 추세적 또는 완전 정상화 과정은 질서 있는 탄핵안의 확정과 긴급 금융시장 유동성 지원책 및 추가 경기부양책 제시 등을 통해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조기 대선 후보로 떠오른 유력 정치인 관련 테마주도 들썩거리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근무했었던 오리엔트정공, 최고경영자가 이 대표 캠프의 후원회장을 맡았던 수산아이앤티 등을 비롯해 에이텍, 에이텍모빌리티, 이스타코 등이다. 이 밖에 오리엔트바이오, 프리엠스, 티피씨글로벌 등도 주목을 받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테마주로는 오파스넷, 태양금속, 대상홀딩스, 덕성우 등이 급등 중이다. 오파스넷은 신동훈 사외이사가 한동훈 대표와 사법연수원 동기다. 태양금속은 한우삼 대표가 한 대표와 같은 청주 한씨다. 대상홀딩스는 배우 이정재와 한 대표가 친구 사이로 알려지면서 테마주가 됐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테마주로는 화천기계가 급등세다. 화천기계의 전 감사가 조 전 장관과 미국 버클리대학 로스쿨 동문이라는 이유다. 오세훈 서울시장 테마주로 분류되는 한일화학, 진양화학 등이 거론된다.
정치 테마주의 대부분이 개인적인 인연이 재료이지만 관계가 깊지 않다. 해당 정치인의 성공이 기업가치 상승으로 연결될 고리가 거의 없다. 수혜보다는 테마 자체를 재료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세력들에 의해 주가가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은의 RP 매입, 증권사엔 꽃놀이패?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금융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한국은행의 응급조치가 증권사에게 짭짤한 돈벌이 기회가 될 전망이다. 금융시장 경색으로 기업들이 현금이 부족한 사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은이 증권사들의 돈 장사를 작정하고 밀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 사진=박정훈 기자한은은 12월 4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이날부터 비정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에 들어갔다. 최용훈 한은 금융시장국장은 “한은은 단기 유동성 공급 조치를 수 주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공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P 매입은 한은이 금융회사가 보유한 국채 등 안전한 채권을 향후 되팔 것을 전제로 사주는 거래다. 담보대출과 비슷하다.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일반 기업들은 더 높은 이자를 주고서라도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한은의 RP 매입으로 싸게 조달한 돈을 더 높은 이자를 주는 회사채에 투자하거나 대출을 해주면 손쉽게 차익을 거둘 수 있다.
한은은 보통 정례적으로 RP를 사들이지만 이번에는 계엄령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진 만큼 비정례 매입 카드를 빼들었다. RP 매매 대상 증권도 산업금융채권, 중소기업금융채권, 수출입금융채권, 9개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특수채권, 농업금융채권, 수산금융채권, 은행법에 따른 금융채 등을 추가했다. 한은이 인정해주는 담보가 다양해지면 금융회사는 돈을 더 쉽게 많이 빌릴 수 있다.
한은은 RP 매매 대상도 은행 외에 투자매매업자와 투자중개업자 전체, 한국증권금융으로 넓혔다. 12월 4일 은행들은 원화 가치 하락 부담에 주가가 폭락했지만 증권주들은 상대적으로 낙폭이 적었다. 은행 대비 증권사는 환차손 부담은 적고 RP 수익 비중은 크기 때문이다.
한편 한은은 코로나19가 대유행했던 2020년 3월에도 3개월간 무제한 RP 매입에 나서며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