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이후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해외 주식 투자를 늘리면서 미국과 한국의 기업 거버넌스 차이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했고, ‘국장(국내 주식시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상장 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상법 개정안은 4월 처리가 유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일요신문i는 상법 개정안 전도사로 알려진 곽상준 부장을 만나 그가 전망하는 상법 개정 이후의 주식 시장에 대해 들어봤다. 곽 부장은 상법 개정이 단순한 법률 개정을 넘어 한국 자본시장 역사상 자본시장 개방, 금융실명제에 이은 ‘3대 혁명’에 해당하는 중요한 변화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상법 개정안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이 소액 주주 재산을 탈취하고 배신하는 일은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당하는 일이다. 한국 대주주들은 회사를 자기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굉장히 높다. 비상장 회사면 그럴 수 있지만, IPO(기업공개)를 했다면 달라져야 한다. IPO는 퍼블릭(공모)이고, 공모를 했으면 자기 지분만큼만 자기 재산이다.”
—한국 주식 시장이 미국, 일본 자본시장과 차이가 있나.
“한국 자본시장은 후진적이라고 했던 일본만큼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일본은 과거 ‘잃어버린 20년’을 겪었지만, 최근 자본시장 정상화 과정을 거치면서 부활의 기회를 맞고 있다.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기업 거버넌스가 개선되고 ROE(자기자본이익률)가 증가하면서 니케이지수도 급등했다. 미국은 여러 사회적 문제가 있지만, 자본시장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양극화가 심하고 사회 문제도 많지만, 자본의 역동성이 다른 모든 문제를 압도한다. 테슬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혁신 기업들이 계속 등장하는 문화가 있다. 이들 기업은 주주가치를 중시하면서도 혁신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혁신 기업이 있어도 자본 지원이 없어 말라 죽어가고 있다. 이런 차이가 결국 각 나라 경제 성장과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지금 이대로 가면 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보다 더 긴 정체기를 겪을 수도 있다.”
—상법 개정이 안 된 상태가 지속되면 어떤 문제가 있나
“물건에 비유하자면, 물건을 팔았는데 한국 주식시장은 애프터서비스를 안 하는 것과 같다. 사후 관리가 안되고, 팔고 나서 나 몰라라 하는 제품을 누가 사겠나. 회사가 돈을 벌었으면 배당을 해야 하고, 자본을 어떻게 쓸지 설명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한다. 이렇게 되니 한국 주식을 사람들이 안 사기 시작하고 ‘국장 탈출 지능순’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자본시장은 돈이 안 들어오면 돌아가지 않는다. 돈이 안 도니 신성장동력이 될 기업이 미국에서 상장하지, 한국에서 상장하지 않는다. 기존 기업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미래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이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도입이다. 현행법은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만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1983년부터 40년 넘게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판례를 유지해왔다. 삼성물산 합병 배임 판결에서도 법원은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는 입법 사항’이라고 판시했다. 이게 법으로 바뀌지 않으면 터널링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터널링은 일감 몰아주기, 물적분할을 통한 자회사 상장, 비상장 계열사를 활용한 이익 등 회사에 지하 터널을 뚫어 회사 재산을 빼돌리는 일을 일컫는다.”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건 상식이고 당연하다. 그런데 주주는 다른 이해관계자들과 달리 계약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 근로자는 고용계약이 있고, 소비자는 거래계약이 있고, 채권자는 대출계약이 있다. 이런 계약에는 모두 권리와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주주는 어떤가. 주식을 살 때 어디에도 ‘배당을 얼마 준다’ 같은 약속이 없다. 이익도 그렇지만 회사가 파산할 경우에도 주주는 보상받는 순위가 최후 순위다. 구조적으로 가장 큰 리스크를 지는데, 얼마를 줄지, 언제 줄지 아무것도 약속되어 있지 않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 ‘내가 뒤통수 안 칠게, 빼돌리지 않을게’라는 약속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충실의무다. 이 최소한의 안전장치 없이 어떻게 사람들이 장기 투자를 할 수 있겠나. 그래서 상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
—상법 개정이 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막을 수 있나.
“예를 들어 회사를 창업해서 성공했지만, 투자를 받으면서 지분이 희석돼 창업자 지분이 15%밖에 안 되는 상황은 흔히 발생한다. 현재 상법에서는 창업자가 회사 핵심 사업을 자신이 100% 지분을 가진 새로운 회사로 넘기는 일이 가능하다. 상법 개정이 되면 이런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다. 현재는 ‘회사 충실’ 의무만 있어 회사 레벨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주주 충실’ 의무가 도입되면 주주 레벨까지 살펴볼 수 있어 이런 불공정 행위를 제재할 수 있다.”
—상법 개정이 아니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도 충분하다는 반론도 있다.
“한국은 지금 자본시장에서 강도질이나 도둑질이 죄가 아니다. 금연구역에 표지판이 없으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처럼, 상법에 주주 보호 조항이 없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흡연으로 예를 들면 특정 장소를 열거하며 흡연 금지를 할 게 아니라 실내에선 아예 못 핀다고 못을 박아야 한다. 하나하나 핀셋으로 규정을 넣어서 잡아도 우회하는 또 다른 방법이 생긴다. 미국처럼 아예 틀을 바꿔야 한다.”
—상법 개정이 통과되면 주가에 어떤 영향이 있나.
“지수가 2배 이상 오를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연말 기준 장부 가치만 해도 코스피 3000포인트를 넘는다. 미국처럼 PBR(주가순자산비율)이 3~4배가 아니라 2배만 가도 코스피 5000포인트가 훌쩍 넘어간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PBR 1.4배 이상을 가본 적이 없다. 상법 개정되면 저점이 1배 내외가 되고, 고점은 2배까지 갈 수 있다.”
—2024년 연초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상법 개정 움직임이 있었다.
“2024년 초반 상황을 돌이켜보면 정말 아쉽다. 2024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거래소 방문 시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복현 금감원장도 외국인 투자자들을 만나면서 이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런 발언들을 신뢰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2024년 7월까지 국내 주식시장에서 무려 23조 원을 순매수했다. 그런데 하반기에 갑자기 ‘기업 자율’을 강조하는 발언이 나오면서 상법 개정 분위기가 급격히 식었다. 그 이후로 외국인들은 23조 이상을 순매도했고, 삼성전자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 결국 일반 투자자들, 특히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봤다. 정부 정책 일관성 부재가 시장 신뢰를 훼손한 대표적 사례다. 이런 신뢰 상실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2024년 주식시장 상승과 하락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상법 개정 움직임과 정책 번복이었다고 본다.”
—어떤 종목이 가장 혜택을 볼까.
“자산은 많은데 주가가 눌려 있는 기업이 첫 번째 타깃이 될 거다. 지주회사가 대표적이다. SK 지주 같은 경우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가 100조를 넘고, SK텔레콤 등 자산이 쌓여 있다. 하지만 SK 지주사 자체는 시가총액 10조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기업들이 많이 오른다고 본다. 또 대주주 지분이 적은데 자산이 많고 주가가 눌려 있는 기업들도 타깃이 될 거다.”
—통과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통과가 됐으면 좋겠는데 저항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본다. 이번에 통과 못 되더라도 결국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주식 시장을 접한 한국인들이 1000만 명 가까이 되면서 인식이 달라졌고, LG화학, 두산 등 국내 투자자들이 계속 피해를 보면서 여론이 형성됐다. 4년 전만 해도 ‘거버넌스’라는 단어 뜻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말이 됐다.”

“일부에서 이사회 독립성이 강화되면 경영자나 핵심 기술자가 쫓겨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경영을 잘하면 쫓겨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경영자에게 너무 큰 보상을 주면서 양극화가 논란이 되고 있다. 성장을 싫어하는 투자자는 없다. 배당이 적다거나 주주환원율이 낮다는 것도 납득할 만한 성장안을 내놓으면 문제되지 않는다. 고소, 고발을 두려워하는데 지금처럼 물적분할 같은 강도짓만 안 하면 법적 대응은 불가능하다.”
—최근 국내 리조트 1위 업체 대명소노그룹이 티웨이 항공을 인수하면서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시장가보다 7배 비싸게 샀다. 또 하나의 주주 불평등 사례로 꼽히면서 의무 공개 매수 제도 논의가 촉발됐다.
“최근 티웨이 항공 사례를 보면 경영권 프리미엄이 무려 7배나 됐다. 이런 상황은 주주 간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한다. 대주주는 제대로 된 가치에 팔 수 있고, 소액 주주는 버려진다. 같은 주식인데 대주주 소유 주식은 금칠을 돼 있는 것이다. 미국은 어떤가. 트위터를 인수할 때 일론 머스크는 전체 주식을 다 매입했다. 이게 정상적인 M&A(인수합병) 방식이다. 한국도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필요하다면 모든 주주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게 공정한 거 아닌가.”
—상법 개정과 함께 필요한 제도는 무엇이라고 보나.
“배당 소득 분리과세도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 배당이 늘어나고, 시중에 현금이 풀린다. 부동산과 달리 주식에서 나온 돈은 잘 쓴다. 부동산에 들어간 돈은 다시 나오지 않지만, 주식에서 나온 돈은 통화 승수가 빠르게 올라가 내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한다. 부동산은 팔아서 수익을 내더라도 또 다른 곳을 매수하면서 빚을 지기 때문에 돈을 쓰는데 주저하게 된다. 주식은 평가익만 올라도 기분이 좋아 소고기를 먹으러 가기도 한다. 주식이 오르면 내수 경제, 실물 경제도 훨씬 좋아질 것이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상법 개정이 되고 배당 소득 분리과세가 이뤄지면, 국내 주식 평가가 올라가고 투자자들이 돈을 벌게 된다. 그러면 세금을 내라는 요구에 대한 저항감이 줄어들 거다. 과거 금투세 추진은 ‘돈 번 것도 없고, 기업이 소액주주를 약탈만 하는데 세금까지 걷어간다’고 생각해 분노가 커진 것이다. 상법 개정, 배당 소득 분리과세 등을 도입 한 이후 시간을 두고 금투세를 도입하는 게 순리적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투자자들에게 조언한다면?
“상법 개정이 되면 한국 주식시장에도 공정한 룰이 제대로 갖춰진다. 경기 룰이 명확해져 소액주주가 차별받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고, 투자자들이 기업과 함께 진정한 동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는 불안 때문에 장기 투자보다 단기 시세차익만 추구하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좋은 기업에 장기 투자해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는 시대가 올 수 있다. 물론 상법 개정 이후에도 시장이 전면적으로 바로 바뀌지는 않을 수 있다. 마치 실내 흡연 금지법이 생겨도 문화로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과태료를 물고 처벌받는 사례가 생겨야 비로소 규범으로 자리 잡는다. 한국도 상법 개정 이후 약 5년 정도면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가 문화적으로 금지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한국 주식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시장 중 하나다. 이런 변화의 시기를 대비해 한국 주식시장에 계속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