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선관위에 대한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2023년 5월 불거진 ‘북한 해킹 의혹’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정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은 2023년 7월 17일~2023년 9월 22일 보안점검을 진행했다. 부정선거 음모론 단골 메뉴인 시스템 해킹과 투·개표 조작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국정원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하루 전날인 2023년 10월 10일 선거인명부 해킹이나 투·개표 조작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선관위가 전체 전산 장비 중 95%에 대한 점검을 거부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 발표를 근거로 극우 진영을 중심으로 선관위가 부정선거 중심에 있다는 음모론이 확산됐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후인 2024년 12월 12일 선관위 전산시스템이 엉터리라고 주장했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계엄군을 보냈다고 했다.
선관위는 부정선거 의혹은 모두 근거가 없다며 일축해왔다. 국정원 발표에 대해 선관위는 12대 장비를 제외한 모든 장비에 대한 점검 권한도 부여했고, 점검받은 5% 장비는 선거인명부 작성과 투·개표에 사용되는 주요 전산 장비라고 밝혔다. 해킹이나 투·개표 결과 조작이 가능하다는 내용과 관련해선 선관위가 보안 수준을 일부 낮춘 상황에서 모의 해킹 실험을 한 결과라고 해명했다(관련기사 계엄군 타깃 영순위…윤석열에 찍힌 ‘선관위’ 수난사).
이 논란과는 별개로 선관위는 ‘채용 비리 의혹’으로 도마에 올랐다. 2월 27일 감사원은 ‘선관위 채용 등 인력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선관위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0년 동안 291차례 경력 채용을 했는데, 878건의 규정 위반이 발견됐다.

고위직이 자신의 친인척을 부정 채용한 사례는 무더기로 적발됐다. 2019년 9월 경력경쟁채용에서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아들 이 아무개 씨 합격을 위해 친분이 있는 인사를 면접위원으로 선정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김 전 사무총장 아들은 선관위 내부에서 ‘세자’로 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선관위 과장이 자녀 합격을 위해 1·2등 응시자의 점수를 조작한 사건도 드러났다. 충북선관위 채용 때는 송봉섭 전 사무차장이 해당 지역 인사 담당 직원에게 전화해 딸을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면접관으로 들어간 직원들은 송 전 사무차장과 함께 근무한 인사들이었다고 한다.
중앙선관위가 친인척 채용에 대해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중앙선관위는 2024년 5월 31일 선관위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지자 박찬진 사무총장, 송봉섭 사무차장, 신우용 제주선관위 상임위원, 김정규 경남선관위 총무과장 등 4명을 수사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사무총장과 송 사무차장은 징계 없이 사표가 수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채용 비리 논란에 연루된 일부 직원들은 오히려 승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박찬진 전 사무총장 딸 박 아무개 씨는 2024년 10월 1일 자로 8급에서 7급으로 승진했다. 특혜 채용 논란이 불거진 후였다. 박 전 사무총장은 2022년 전남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관여해 딸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선관위는 2021년 9월 경남선관위 과장 자녀 특혜 채용에 대한 투서를 접수했을 때 묵인했다고 알려진다. 2021년 12월에는 ‘선관위 부모·자녀 관계 직원 현황’을 파악했다. 그러나 채용 절차 위반에 대해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복무 기강 문제도 나왔다. 한 강원도선관위 소속 과장은 2015년부터 2023년까지 124회 출국했고, 총 817일 동안 해외에 체류했다. 해외 체류 기간 중 183일을 무단결근, 허위 병가, 공가 등으로 처리한 것으로 파악됐다.
비리 의혹 당사자들의 태도도 뭇매를 맞았다. 3월 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김대웅 선관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조은희 의원은 당사자들에게 자녀를 자진사퇴시킬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박찬진 전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은 각각 “본인 의사”라거나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고 답했다. 조 의원은 “그런 선관위를 국민 누가 믿겠나”고 비판했다.
#선관위 사과에도 '글쎄'
감사원 보고서가 발표된 날인 2월 27일 헌법재판소는 “선관위는 행정기관이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이며, 따라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헌법은 선관위를 행정부에서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행정부에 속한 감사원이 선관위를 직무감찰 할 수 없다는 게 헌재 판단의 요지다.
선관위는 헌재 결정이 나온 직후 인사 비리 등에 대해 사과했다. 선관위는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감사위원회 설치, 감사 기구와 사무처 분리, 인사 감사 관련 전담 부서 설치 등 자정작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국회의 선관위 통제 방안 마련에 대해서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3월 5일 대국민 사과문에서 “선관위는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렸다”며 “이번 사건으로 선관위에 대한 국민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아가 선관위의 조직 운영에 대한 불신이 선거 과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했다.
선관위가 고개를 숙이고 자정 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별다른 견제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선관위가 제대로 된 쇄신책을 내놓을 가능성엔 부정적 견해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통제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 선거 외에도 정당 경선 사무와 공공단체 선거 등을 위탁 관리한다. 공정한 선거 관리를 표방하지만 실제론 선관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선관위 유권해석’에 따라 후보자들의 희비도 종종 엇갈린다.
국회의원 선거, 공공단체 선거 등에서 선관위를 향한 불만이 터져나왔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 한 금융권 수장을 뽑는 선거 때 몇몇 선관위원들이 특정 후보 진영을 상대로 ‘갑질’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적도 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우리는 선관위의 ‘을’”이라면서 “국정감사를 할 때도 세게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감시를 제대로 했더라면 지금처럼 복마전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선관위 내부에서도 이런 부조리에 대한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됐었다고 한다. 선관위 한 관계자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특혜 채용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특히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이를 공론화하기 어려운 구조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기류가 팽배하다. 그래서 오늘날의 사태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