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6회 정기 주주총회에 삼성전자 주주와 기관투자자 900여 명이 참석했다. 600여 명이 참석했던 지난해 주주총회보다 참석 인원이 50%가량 늘었다. 이날 주총에서는 내내 ‘주가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성토와 질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일부 주주들은 ‘경쟁사 주식을 매도하고 삼성전자 주식을 샀는데 후회된다’, ‘8만 전자 때 샀는데 5만 전자가 됐다. 주가 회복 방안을 알려달라’고 질의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경영진들은 연신 사죄하면서 주가 부진 이유와 주가 부양 대책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주주들의 질의는 대부분 반도체 등을 담당하는 디바이스 솔루션(DS)부문에 몰렸다. 이날 컨벤션센터에서 만난 한 주주는 “자사주 소각이나 이씨 일가의 대출금 만기가 다가왔다는 등의 단기적인 주가 부양 이벤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회사가 향후 어떻게 질적 성장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라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주가는 다 우상향하고 있는데 삼성전자만 플랫한 상태다. 미래가 안 보인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올해 3월 18일 기준 340조 379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00조 원가량 줄었다. 주가 역시 1년 새 2만 원가량 하락하면서 5만 원대에 머물고 있다.
주가가 부진한 이유는 삼성전자의 경쟁력에 의문부호가 찍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던 D램 점유율은 42.2%에서 41.5%로 낮아졌다. 삼성전자의 TV와 스마트폰, 전장·오디오 부문 자회사인 하만의 디지털 콕핏 역시 시장점유율이 하락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D램보다 3~5배 이상 부가가치가 높은 HBM(고대역폭 메모리) 등 AI(인공지능) 반도체 대응에서 실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범용 메모리 영역에서는 중국 기업이 들어오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독점 공급자로서의 지위가 깨져 고전하고 있다. HBM은 먼저 개발해놓고 손을 놔 버리는 바람에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있다”라며 “범용 메모리에서 벌어들여서 미래 먹거리인 파운드리에 지원을 해 줘야 하는데 지금 그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의 TSMC와의 점유율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6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삼성전자는 11%로 2위를 기록했다. 2023년 4분기 14%였던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지난해 1~2분기는 13%, 3분기에 12%로 떨어지면서 지속적으로 TSMC에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는 주요 원인은 2022년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을 적용해 양산을 시작한 3나노 공정의 수율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GAA 공정은 기존 핀펫(FinFET) 공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최신 기술로 각광을 받았지만 수율 개선에 실패하면서 고객 신뢰를 얻지 못했다. 3나노 공정의 낮은 수율로 인해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갤럭시 S25에도 자사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2500 탑재가 불발되기도 했다.
그 사이 기술 투자와 개발을 이어 온 TSMC는 2나노에서 GAA 공정 적용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HBM도 마찬가지고 파운드리에서도 경영진의 판단 미스가 발목을 잡았다”라며 “소품종 대량생산을 하던 범용 메모리와 달리 HBM과 파운드리는 철저하게 고객 맞춤형 다품종 소량생산을 해야 하는 업종인데 여전히 공급자 마인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방안을 철저히 고민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주주총회를 앞두고 최근 삼성 임원들을 상대로 쇄신 메시지를 내면서 주목을 받았다. 지난 17일 이 회장은 전 계열사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서 교육 영상을 통해 “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은 찾아볼 수 없고, 판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라며 “위기 때마다 작동하던 삼성 고유의 회복력은 보이지 않는다. 경영진부터 철저히 반성하고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재용 회장은 “21세기를 주도하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30개 대표 기업 중 24개가 새로운 혁신 기업에 의해 무대에서 밀려났는데 이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국가 총력전의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라며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다. 경영진보다 더 훌륭한 특급 인재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양성하고 모셔와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재용 회장은 2022년 10월 회장 취임 당시 별도의 취임사 없이 “삼성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내놨다. 당시에도 이 회장은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다.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오고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부회장이던 시절에는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은 물론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바꾸자. 잘못된 것, 미흡한 것, 부족한 것을 과감히 고치자”라고 주문한 바 있다.
삼성전자의 위기가 대두되면서 이재용 회장의 발언 강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절실함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Foundry사업부 명칭 사용 가이드 안내’라는 제목의 사내 공지를 배포하며 직원들에게 ‘발음을 명확히 하라’는 지침을 내려 논란을 빚었다. 특히 초등학생도 이해하기 쉽게 보고서를 써서 올리라는 방침이 적용되면서 실무진의 불만이 상당히 고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여러 과학 기술이 복합적으로 작용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기술 전문가가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특히 양산은 직접 경험을 해야 감각이 생기는데 그런 요소가 부족하면 판단을 잘 못 한다”라며 “보고서를 간소화할 게 아니라 의사결정자가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의사결정 구조도 경직돼 있고 부차적인 요소에 중점을 두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재용 회장이 ‘특급’ 인재를 모셔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인재 영입 역시 차질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업계 다른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해외 유명 파운드리 업계 전문가를 부사장급으로 영입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해당 인사에게 부사장급에서 제시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연봉을 제안했지만 그가 현재 직장에서도 같은 수준으로 받는다며 거절했기 때문”이라며 “중국 기업이라면 즉각 훨씬 더 높은 연봉을 제안하면서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했을 거다.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삼성이 아직도 간절하지가 않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이종환 교수는 “개발 임원이 사실 양산까지 고려를 해야 된다. 그런데 수율이 확보되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서 제조 임원이 곤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전체적인 최적화를 고려하는 게 아니라 부서별로 각자 자기 실적만 챙기는 ‘부서 이기주의’ 문화가 만연한 상태다. 사즉생의 각오로 임하라고 주문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중요한 건 액션이다. 위기라고 말하지만 비전이 없다. 뭘 하겠다고 하는지 기억에도 잘 안 남는다”라며 “대부분 열심히 하겠다고 얘기하는데 그렇다고 남들이 열심히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혁신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DX부문에서는 차세대 기술 역량과 고객 중심의 혁신을 결합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DS 부문에서는 HBM 적기 개발로 차세대 AI 제품 경쟁력을 확보하고 파운드리는 고객 서비스 중심 사고를 바탕으로 사업 경쟁력을 확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