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민감국가 지정 사실을 뒤늦게 안 외교부 등에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 소속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일요신문i’에 “(국내 보도 전)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민감국가 지정 소문이 도는데 기분 나쁘지 않나’라고 질의했더니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두 달 넘게 민감국가 지정 사실을 몰랐던 이유’를 묻자 “미 에너지부 내부 직원들도 모르고 관련된 담당자 소수만 아는 사안”이라며 “내부 관리 비밀문서였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명했다.
#‘자체 핵무장론’ 때문에 민감국가 지정?
정치권에선 핵심 원인으로 최근 우리나라에서 부상한 핵무장론을 지목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자체 핵무장론’이 공개 언급되자 미국 정부가 이를 불편하게 받아들였다는 해석이다. 현재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인도 등이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돼 있는데 이들 역시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식되는 나라들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여러 차례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했다. 2023년 1월 국방부·외교부 업무보고 당시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 전술핵 배치나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우리 기술로는 이른 시일 내에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달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선 “한미가 미국의 핵전력을 공동 기획(Joint Planning)-공동 연습(Joint Exercise) 개념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한국과 공동 핵 연습을 논의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2024년 8월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자체 핵무장 방안에 대해 “확장억제·핵우산에 기반을 두고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것은 기본”이라면서도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그것으로 국민의 북핵 위협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모든 수단에 대한 방법은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내에선 다수 정치인이 핵무장론을 옹호하고 있다. 현재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는 김기현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12명이 지난해 11월 공동 발의한 ‘자위권적 핵무장 촉구결의안’이 상정된 상태다.
황명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미국 내부의 전문가 발언을 보면 한국이 해당 목록에 추가된 원인이 무엇인지는 이미 규명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민감국가 지정은 내란수괴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무책임한 핵무장론 외교 참사”라고 맹비난했다. 미 군사전문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지난 16일 중앙일보에 “한국의 자체 핵무기 개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 공유를 막기 위해 시작한 조치일 수 있다”고 밝혔다.
국립외교원장 출신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민감국가 지정 이유는) 핵이라고 확신한다”며 “2023년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워싱턴 선언’에서 NPT(핵확산금지조약) 준수 조항이 명시됐는데 이는 한국이 핵무기를 이전 받거나 전술핵을 재배치할 수 없도록 못 박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워싱턴 선언 중 ‘윤 대통령은 국제 핵 비확산 체제의 초석인 핵확산 금지조약, NPT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 및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하였다’는 부분을 읽으며 “이 당연한 것을 왜 써놓았겠나. 그때 복창시킨 것”이라며 “자꾸 위반할 것 같으니까 복창시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한국 내 핵무장론이 이번 민감국가 지정의 주요 원인이란 해석을 부인하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핵무장론이나 산업 스파이 때문이 아니고 기술적 보안 문제라는 것을 미국 측에 공개적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지난 17일 출입기자단 공지에서도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민감국가 지정)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에너지부 감사관실이 지난해 3월 미 의회에 제출한 반기(2023년 10월~2024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 산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의 한 도급업체 직원이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소지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타려다 체포됐다. 감사관실은 체포된 직원에 대해 “수출 통제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외국 정부’(Foreign Government)와 소통한 사실을 그의 이메일 계정과 채팅 내역을 통해 확인했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그 외국 정부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직원이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했던 것을 미뤄볼 때 한국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 나왔다.
우리나라 내부의 핵무장론을 경계하던 상황에서 미국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 유출 시도가 적발되자 미국 정부가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국회 외통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기자와 만나 “조 바이든 정부에서 이미 2023년부터 윤석열 정부의 핵무장론 발언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미 상원 의원들을 통해 들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인수위원회에도 이 내용들을 전했고, 인수위도 민감국가 지정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박진수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커지고 있는 핵무장론에 대한 미국 정계와 정부의 우려가 직간접적으로 반영돼 있고, 이러한 우려와 불만을 (민감국가 지정으로) 한국에 표출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인공지능(AI)과 원자력, 첨단기술 영역에서 한미협력과 공조가 제한될 것이 명백하다. 참으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완벽한 외교 실패이자 외교 참사, 정부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여권 핵심 관계자는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도 마치 큰 문제인 것처럼 상황이 통제불능이 된 것이 유감이라고 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반면 한 야권 의원은 “조셉 대사대리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며 “미국 대사대리인데 미국의 편에서 이야기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1월 12~14일까지 3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66%가 찬성했다. 찬성률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81%, 보수층 성향·60대 이상에서 각각 70%대 중후반을 기록했다.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층에서도 핵무기 보유 찬성이 각각 60%로 파악됐다. 한 야권 의원은 ‘일요신문i’에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라면 여야를 막론하고 어떤 방법이든 준비할 필요는 있지만 핵무장을 대통령이 외부에서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지정 해제를 위해 일단 ‘미국 눈치보기’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여권은 국내 정치 전략상 핵무장 필요성 발언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권에선 미국이 이렇게 강하게 나올지 몰라 당황했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여권은 핵무장론을 보수층 유권자 결집을 위한 전략적 카드로 쓸 것이다. 핵무장론이 마치 보수의 상징처럼 됐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민감국가 지정은 국내에 충분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감국가 지정 여부를 무기로 통상 영역 등에서 한국을 상대로 추가 이득을 취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진수 덕성여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민감국가 카드를) 적극 사용할 가능성은 낮지만 핵문제나 원자로기술과 관련해 정부 간 협상 이슈가 있을 경우 우위를 점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