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로 이름은 본명 아닌 드라마 집필용 필명…인터뷰도 단 한 번만 응하고 사진 공개 거절
[일요신문]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임상춘 작가는 흔히 ‘신비주의 작가’로 불린다. 지금까지 한 번도 얼굴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데다, 드라마를 알리는 제작발표회 자리 등에 직접 나선 적도 없기 때문이다. 작가협회에 소속된 드라마 작가들의 정보를 모은 일명 ‘작가 수첩’에도 사진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도 본명이 아닌 드라마 집필용으로 만든 필명이다. SNS를 통해 모든 게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비밀 없는 세상에서 임상춘 작가만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임상춘 작가는 흔히 ‘신비주의 작가’로 불린다. 지금까지 한 번도 얼굴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사진=넷플릭스 제공그렇지만 임상춘 작가는 방송가에서 그 누구보다 유명한 인물로 꼽힌다. 매주 금요일마다 이야기를 공개하는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다시 한 번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는 그는 2019년 KBS 2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과 2017년 ‘쌈 마이웨이’ 등 작품을 연이어 성공으로 이끈 스타작가다. 김은숙부터 김은희까지 방송가를 쥐락펴락하는 유명 작가들이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세상이 됐지만 임상춘 작가만큼은 예외다. 명성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모습을 감춘 신비주의는 변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임상춘은 대체 누구일까.
#‘폭싹 속았수다’가 담은 시대상, 나이가 궁금한 작가
3월 7일 공개를 시작한 ‘폭싹 속았수다’는 1950년 초 제주에서 태어난 주인공 애순과 관식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약 60년의 시간을 다루면서 부모 세대의 추억으로 남은 1970~1990년대 시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전체 16부작 중 21일까지 12편이 공개된 가운데 전 세대가 공감할 만한 부모와 자녀들의 성장과 희생, 상실과 아픔의 이야기로 화제의 중심에 있다.
3월 7일 공개를 시작한 ‘폭싹 속았수다’는 1950년 초 제주에서 태어난 주인공 애순과 관식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젊은 시절의 애순과 관식을 연기한 아이유와 박보검은 물론 이들의 중년과 장년의 모습을 맡은 문소리와 박해준의 활약까지 매회 시선을 뗄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열풍의 진원지는 배우가 아닌 극본을 쓴 임상춘 작가로 꼽힌다. 아이유부터 문소리까지 드라마에 출연한 이유로 이구동성 “작가님의 팬이었다”고 밝혔고, 출연을 제안받을 당시 대본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하면서 깊은 신뢰와 ‘팬심’을 드러냈다.
임상춘 작가가 방송가에서 실력을 증명한 작품은 ‘쌈 마이웨이’다. 박서준과 김지원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좌절하는 청춘의 사랑 이야기다. 판타지로 미화하지 않은 현실적인 청춘의 서사로 시청자를 사로잡으면서 임상춘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임상춘 작가가 방송가에서 실력을 증명한 작품은 ‘쌈 마이웨이’다. 사진=KBS 제공그때부터 그를 향한 관심이 집중됐고,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지만 작가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0년 넘도록 집필 활동을 하고 있지만 언론과 인터뷰를 한 건 단 한 번뿐이다. ‘쌈 마이웨이’의 종영 이후 어렵게 성사됐다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작가는 사진을 공개하는 건 끝내 거절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작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하나”라며 “당신은 지금 무척 잘하고 있고, 잘 살고 있다고 응원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폭싹 속았수다’의 제목이 제주도 방언으로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의미라는 점에서 작가의 가치관은 이번 드라마에서 마음껏 꽃을 피운 셈이다.
#임상춘 이라는 이름의 뜻
임상춘 작가는 2013년 방송콘텐츠진흥재단이 주최한 드라마 극본 공모전을 통해 데뷔했다. 30대에 맞는 사춘기를 그린 ‘삼춘기’라는 작품이다. 보통 신인 작가들이 드라마 작법을 전문으로 배우는 아카데미 등을 수료하고 공모전에 응모해 데뷔를 노리지만, 임상춘 작가는 달랐다. ‘삼춘기’가 당선되기 전까지 작가 아카데미 등 전문 교육 기관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대 후반에 오래 꿈꿨던 드라마 집필을 시작해 ‘독학’으로 당선된 경우다.
초반부터 MBC 단막극 ‘내 인생의 혹’, 웹드라마 ‘도도하라’ 등을 통해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에 주력했다. 그러다 2016년 KBS 2TV 4부작 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시청률 23%를 기록한 공효진 강하늘 주연의 ‘동백꽃 필 무렵’으로 정점을 찍었다.
‘동백꽃 필 무렵’을 연출한 차영훈 PD는 “연출자로서 ‘동백꽃 필 무렵’ 같은 대본을 만난 건 행운이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KBS 제공‘백희가 돌아왔다’와 ‘동백꽃 필 무렵’을 연출한 차영훈 PD는 2019년 여러 인터뷰에서 임상춘 작가와의 작업에 대해 “처음 드라마를 시작하면서 따뜻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며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어지고,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드라마를 해보자고 했다”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연출자로서 ‘동백꽃 필 무렵’ 같은 대본을 만난 건 행운이고 기적 같은 일”이라며 “배우들과 모든 스태프가 최선을 다해 대본 그대로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임했다”고도 말했다.
특정 세대를 타깃으로 삼지 않고 전 연령대의 공감을 일으키는 임상춘 작가만의 이야기 힘은 따뜻한 인간미에 있다. 60여 년의 시대상을 다루는 이번 ‘폭싹 속았수다’ 역시 자칫 잊힌 과거의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는 부모 세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우리 엄마가 떠올라 눈물이 터진다’는 반응이 세대를 불문하고 쏟아진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 그런 부모를 생각하면서 성장하는 자녀들의 진솔한 이야기의 힘이다.
작가의 지향은 ‘임상춘’이라는 필명에서도 확인된다. ‘생각할 상’, ‘넉넉할 춘’자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필명인지 모르고 이름만 들을 때 남성 작가로 여기는 경우도 빈번하지만, 1985년생의 기혼 여성 작가다. 임 작가를 잘 아는 한 방송 관계자는 “남편과 드라마에 관련한 일들을 상의하면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며 “신비주의처럼 비치지만 밝고 유쾌한 성격으로 함께 일한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작가”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