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인 오빠 안 원장이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진 병원 전경. 안 원장은 논란이 확산되자 병원 문을 닫았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안 아무개 씨는 3남1녀 중 막내다. 안 씨와 다섯 살 터울인 첫째 오빠 안 아무개 원장은 직장생활과 가사에 바쁜 어머니 A 씨를 대신해 안 씨를 보살피는 일을 도맡았다. 안 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안 원장이 자신을 챙기며 몸을 많이 만지는 등 성추행했고, 그가 대학에 들어가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 씨는 부모에게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우등생인 안 원장은 부모의 신임과 기대가 두터웠고, 그는 성격이 포악해 가족 모두가 오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분위기였다고 안 씨는 설명했다.
안 원장으로부터 끊임없는 성폭행에 시달려온 안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에게 무기명으로 “저 임신한 것 같아요”라는 글을 적어 도움을 청했다. 익명의 쪽지 사건의 장본인은 안 씨로 밝혀졌고 학교가 한바탕 뒤집어졌지만, 그저 장난으로 치부돼 해프닝으로 끝났다고 한다.
피의자인 오빠 안 원장이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진 병원 전경. 안 원장은 논란이 확산되자 병원 문을 닫았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안 씨는 광주 집을 탈출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대학 진학을 했지만 주말이나 방학 때는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안 씨는 대학생이 되고 안 원장에게 반항도 해봤으나 안 원장은 “갈보X, 잡X” 등의 욕을 퍼부으며 성폭행을 일삼았다.
성폭행에 시달리던 안 씨는 “대학교 2학년 때 친오빠인 안 원장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말했다. 안 씨는 아무도 찾지 못하게 연고가 없는 부산의 M 미혼모보호시설로 들어갔다. 그러나 어머니 A 씨가 M 보호시설을 찾아왔고, A 씨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임신중절수술을 받게 된다.
그 후 안 씨는 방학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친척집이나 친구 자취방, 독서실을 전전했다.
1996년 26세의 나이에 안 씨는 어머니 A 씨의 중매를 통해 C 씨와 결혼을 한다. 어릴 적부터 성폭행에 노출되고 임신중절까지 해 쉽사리 임신이 되지 않았던 안 씨는 수없이 시험관 아기를 시도한 끝에 결혼 6년 만에 쌍둥이를 낳는다. 그렇게 안 씨는 안 원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목포에 병원을 짓고 있었던 안 원장은 안 씨의 남편 C 씨에게 함께 일을 해보자며 설득했다. 외과 의사였던 C 씨가 필요했던 것.
C 씨가 한사코 거부하자 2006년 안 원장은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는 안 씨를 찾아와 또다시 성폭행했다. 안 씨는 “반항을 해봤지만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이 깰까봐 두려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말했다.
성폭행 후 안 원장은 “네 남편을 목포로 오게 설득해라. 안 그러면 계속 찾아와 괴롭히겠다”고 협박했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안 원장은 다시 집에 찾아와 안 씨를 성추행했다.
결국 안 씨는 C 씨를 설득해 목포로 이사를 하고 C 씨는 안 원장의 병원에서 같이 일하게 됐다. 그러자 안 원장은 C 씨에게 5억 원의 보증을 세우기도 하고, 수시로 인격모독을 했다. 매일 응급실을 지키게 하는 등 과도한 스트레스를 줬다. C 씨는 안 원장과 일한 지 4개월 만에 심장 부정맥이 와 일을 그만두게 됐다.
안 씨는 안 원장에게 “나한테도 부족해 애들 아빠까지 괴롭히느냐”고 따지기 위해 병원을 찾아갔지만 오히려 성추행만 당하고 돌아온다.
다시 광주로 돌아온 안 씨 가족은 이미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안 씨는 성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 자살 충동을 느끼는 등으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고, 안 씨와 C 씨는 이혼한다.
안 씨는 2010년 지금의 남편 이 씨를 만나 재혼을 한다. 그러나 안 씨의 정신적 고통은 개선되지 않았다. 안 씨는 밤마다 헛소리를 하고 자살시도를 하는 등 이상 징후를 보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이 씨가 안 씨를 추궁했고 안 씨는 이 씨에게 어렵사리 수십 년간 이어온 안 원장의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게 됐다.
광주지방검찰청목포지청.
안 씨는 안 원장의 사과를 받기 위해 부모도 찾아가지만 만나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안 씨를 향해 “오빠 등쳐먹으려고 한다”는 어머니의 욕설만 들을 수 있었다.
남편 이 씨는 “안 씨의 증언을 들어보면 어머니 A 씨도 안 씨가 어릴 적부터 안 원장에게 성폭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안 씨는 결국 지난 9월 11일 목포경찰서에 자신의 친오빠 안 원장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안 씨의 진술을 들은 담당 형사는 처음부터 “재판까지 가야 할 사건이다. 이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될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안 원장은 안 씨의 남편 이 씨를 공갈미수 혐의로 목포지방검찰청에 고소한다. 목포경찰서에서 조사가 들어가자 이 씨는 현주소지인 전주지검으로 이송을 요청했지만 목포지검의 담당검사는 이를 일방적으로 거부했다.
이 씨는 검찰에 송치돼 안 씨와 안 원장 등과 함께 목포지검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 씨는 “공갈미수 사건으로 목포지검으로 불려갔는데 공갈 사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안 씨의 성폭행 사건만 이야기했다”고 황당해했다.
이어 그는 “조사관이 ‘내가 성폭행 사건을 많이 맡아봐서 아는데 이번 사건은 직접 증거가 없기 때문에 끝까지 가도 무죄처리 돼 당신들만 상처받는다’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심지어 조사관은 이 씨를 다른 방에 격리한 후, 피해자와 피의자 관계인 안 씨와 안 원장을 대면시키고 “잘못했다는 말을 들으면 뭐하겠냐. 얼마 정도의 돈을 받고 합의해라”고 안 씨에게 합의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안 씨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친오빠로부터 수십 년간 성폭행당했다’는 주장의 글.
그러나 피해자 안 씨가 합의를 완강히 거부하고 안 원장 역시 고압적인 자세로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아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자 조사관은 이 씨를 다시 불러 이송요청서를 내밀면서 “전주지검으로 이송해줄 테니 작성하라”고 말했다.
이 씨가 “그동안 이송을 거부하더니 왜 이제야 사건을 넘기려고 하느냐”고 반발하자 검사는 “사안이 구속하기도 애매해 여기서 합의하고 덮으려 했는데 안 됐으니 나머지는 전주에서 수사를 받으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 씨의 공갈미수 사건은 전주지검으로 이첩됐고 현재 기소된 상태다.
이와 관련해 목포지검은 “남편 이 씨가 전주지검으로 이송을 요청하였으나 담당검사가 안 씨의 성폭행 사건의 진행경과를 파악한 후 결정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이첩을 거부했다”며 “가족 간의 맞고소 사건이라 합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나 합의가 실패해 전주지검으로 이송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이 씨는 “안 씨의 성폭행 사건은 아직 검찰로 올라오지도 않은 상태인데 검사가 사건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라고 반발했다.
안 씨와 이 씨가 검찰조사를 받은 다음날 목포경찰서의 담당형사는 “성폭행 사건이 불기소의견으로 올라갈 것 같다”며 연락을 취해왔다. 그는 “수사과장의 결재가 나지 않는다. 직접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명령계통의 체계라 나도 어쩔 수 없다”고만 설명했다.
고소내용 중 상당 부분은 공소시효가 지났고 DNA나 자백 등 직접 증거가 부족해 불기소처분을 내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목포경찰서의 담당자는 “수사 과정에서 A 씨는 경찰 조사 자체를 거부했고 안 원장 역시 대질심문, 거짓말 탐지기 등을 모두 거부해 피해자의 정황 말고는 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들도 “사건경위와 녹음 증거, 피해자 진술만 봐도 유죄가 확실한데 왜 목포경찰서에서 불기소처분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전남지방경찰청은 바로 “목포경찰서에서 처리 중인 안 씨의 성폭행 사건을 전남지방경찰청으로 이첩하여 철저히 보강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전남지방경찰청에서는 성폭행 사건 전문가로 구성된 8명의 조사팀을 전주에 파견하여 보강수사를 시작했다.
전남지방경찰청의 보강수사가 시작되기 전날인 지난 10일 안 씨는 심경의 변화를 많이 느꼈다고 한다. 이 씨는 “막상 사건이 크게 부각되고 수사가 다시 시작되자 아내는 나이든 어머니가 불쌍하다며 많이 힘들어 했다”며 “그래서 내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했다는 말을 들으면 여기서 다 접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안 씨는 A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씨의 전화를 계속 피하는 어머니와 어렵게 연결이 닿았지만 A 씨는 끝까지 “난 너에게 할 말이 없다. 내가 무슨 사과를 하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A 씨에게 안 원장과의 녹취를 들어보라고도 했지만 “나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화를 냈다고 한다.
사건을 전부 알고 있는 둘째 오빠와 셋째 오빠 역시 안 씨의 전화를 피하고 사건을 덮으려고 하고 있다. 다음 아고라를 통해 사건이 불거지고 안 원장의 신원이 인터넷에 공개되었고, 안 원장은 월요일부터 자신이 운영하던 병원 문을 닫고 있었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 원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 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후 안 원장은 지난 14일 병원 사무장을 통해 “‘여동생을 성폭행했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안 씨의 정신과 치료를 맡고 있는 B 의사는 “안 씨는 아직도 자살 징후를 보이고 있다”며 “조금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상담 결과 과거 성폭력에 노출됐다는 개연성이 충분해 보인다”고 밝혔다.
자살충동으로 고통받고 있는 안 씨가 성폭력 피해 지원센터와 정신과 진료실을 차례로 방문했다.
안 씨는 “아고라에 글을 올리고 참 많은 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며 “그런데 더 놀랍고도 가슴 아팠던 건 나에게 메일을 보내온 분들 중에 나와 같은 근친 성폭행을 당한 분이 많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기자와의 대화 말미에 안 씨는 “법적 처벌, 돈을 다 떠나서 나한테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오빠에게 물어보고 싶다”며 “어머니와 오빠에게 거짓말이라도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를 듣고 싶다”고 눈물을 보였다.
전남지방경찰청으로 사건이 넘어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맡은 안 씨의 성폭행 사건. 안 씨가 안 원장에게 마지막 강간을 당한 건 2006년이다. 강간 사건의 공소시효가 7년인 것을 생각하면 안 씨의 성폭행 사건의 공소시효는 이제 1년 남아있는 상황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