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퍼렇게 젊은 20대, 남편이 세상을 떠나 살 길이 막막한데 오히려 ‘남자 잡아먹은 여자’라 손가락질당해야 하는 젊은 여인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폭싹 속았수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는 제주 방언이라는데 얼마나 멋진 문장인가. 우리가 고생한 이유가 바로 삶에 속았기 때문이니. 인생에 속고, 관계에 속고, 건강에 속고, 세월에 속고, 폭삭 속고 나서 마침내 세계관이 된 문장 ‘살면 살아진다’가 잿빛 속에서 빛나는 달관의 인생관이 될 수밖에.
속고 속아도 풀처럼 자라는 희망은 어쩔 수 없다, 사랑할 밖에. 죽은 남편으로 인해 생긴 너무나 똘망한 딸 애순이! 그 희망의 불씨를 볼 때만 표정이 생기는 엄마! 아, 한반도의 ‘어머니’다! 억척스런 엄마는 그 불씨를 키워주고자 하는데 여자아이라 갈 길이 멀다. 반장이 아니라 부반장, ‘부’자를 뗄 수 없는 제2의 성, 언제나 남자를 앞세워 뒤로 물러나 있지 않으면 돌을 맞는 그런 세상에서 어머니, 할머니들은 어찌 살았을까?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맛, 그 시절 그런 남자가 있었을까 싶지만 드라마 속엔 박보검 같은 남편이 있었다! 우직하고 순수한데 스윗하기까지 한, 언제나 내 편인 남편, 박보검 같은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그럭저럭 아름다운 인생이겠지만, 현실의 엄마들은 언제나 어머니 편, 시댁 편, 남의 편인 남편으로 인해 늘 명치끝이 아팠었다.
모두들 너무너무 연기도 잘하는데 염혜란, 그녀는 보물이었다. 그녀는 1960~1970년대 자식이 유일한 희망인 엄마, 자식 앞에서만 훈훈한 표정을 짓는 다부진 엄마, 죽어서도 죽지 못한 억척스런 엄마를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
‘나’를 낳고 길러준 어머니, 아버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심지가 아닐까. 주인공 애순은 삶의 순간순간마다 곳곳에 배어 있는 엄마의 흔적을 만난다. 애순이 엄마를 불러낸 것인지, 엄마가 그녀를 찾아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는 절대 죽지 않는 힘, 사랑의 다른 이름 같다. 엄마의 온기를 품고 엄마가 된 애순이 삶이 힘들어 툴툴거리는 딸을 달래는, 별 것도 없는 장면에서 그냥 눈시울이 뜨거워진 것은 어쩌면 내 안의 엄마의 온기 때문이었으리라.
장안의 화제인 ‘폭싹 속았수다’는 여성적 서사가 돋보이는 드라마다. 그것은 가난했던 시절 정으로 살아냈던 가까운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떠올려 준다.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고 지지해주고 사랑해준 사람들의 말과 표정과 몸짓 말이다. 힘들 때마다 우리를 버티게 해준 그 사랑으로 지금 우리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내 아버지는 정말 잘 웃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소리 내어 웃고, 촌스럽게 웃고, 환하게 웃었다. 어머니가 옆에서 그게 뭐 그렇게 웃을 일이냐고 핀잔을 주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나는 나를 보고 언제나 웃는 아버지가 좋았다. ‘폭싹 속았수다’의 금명의 아버지 양관식을 보며 먹먹해진 이유도 나를 짝사랑하기만 한 아버지가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니까 금명아, 아빠 보면 성내지 말고 살갑게 해줘라, 20년을 짝사랑했다.”
그리고 따라오는 금명의 독백, ‘그냥 미안하단 한마디가 하고 싶었는데 그 물컹한 덩이들이 입 밖으로 나가면 꼭 가시가 된다!’ 무슨 말을 덧붙일까, 아버지의 딸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데.
살면서 너무나 당연시해서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몰랐던 것들이 나중에 눈물과 함께 찾아든다. 사랑은 때론 너무 늦고 때론 너무 빠르다. 그래도 사랑이다! 그것을 깨닫게 되니 먹은 맘 없이 그저 기도해주는 내 사랑의 에너지를 알아주지 않고 귀찮아하거나 무심히 지나가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서 나도 그랬지, 하고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