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계엔 속설이 있다. 영화 흥행은 세상이 심심해야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이다. 속설에 따르면 지금은 영화 흥행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세상이 드라마틱하고 하루하루 앞일을 예측할 수 없다면, 사람들 관심은 온통 정치에 쏠릴 수밖에 없다. 요즘 영화인들에게 경쟁 상대는 할리우드가 아니다. 하루하루 격변하는 한국 정치상황이 영화의 최대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오늘 탄핵선고가 날까, 아니면 다음 주에 날까. 탄핵선고가 난다면 인용일까 기각일까. 야당 대표 2심이 먼저일까, 아니면 대통령의 탄핵선고가 먼저일까. 야당 대표 2심도 유죄 판결이 난다면 과연 야당 대표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할까. 만일 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헌법 제84조에 의거해 모든 재판은 정지될까, 아니면 계속될까. 대통령 구속취소는 합당한 걸까.
왜 검찰총장은 즉시항고를 하지 않았을까. 검찰총장은 혼자서 결정한 것이 아니고 고위검사장들과 협의를 거쳐 위헌의 소지가 있어서 더 큰 문제가 생길까봐 대통령의 구속취소를 실행한 것이라는데 과연 그것이 옳은 판단이었을까.
대통령 구속은 취소됐는데 그러면 취소 결정이 헌재의 탄핵선고에 영향을 미칠까. 8명이 있는 헌재재판관들은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선고 당시처럼 국론분열 없게 만장일치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이번에는 소수의견(기각이든 인용이든)을 밝히게 할까.
1000만 영화를 쓴 모든 작가들을 모아 놓은들, 온 국민의 저녁 귀가시간을 앞당긴 방송작가들을 다 한 자리에 모아 방송대본을, 영화각본을 쓰게 한들 지금 우리 정치상황처럼 드라마틱한 각본은 쓸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도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드라마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얼마 전 대한민국의 영화계를 한 단계 올려준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영화가 개봉했다. 칸 영화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과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까지 휩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다. 게다가 세계에서 최초로 한국 개봉을 하는 작품이다. 많은 관객의 관심을 끌어 모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한 것 같다.
물론 관심을 기대만큼 못 받은 것이 지금의 정치 상황이나 시대 상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영향이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여겨진다.
얼마 전 서비스를 시작한 한 드라마도 시작과 동시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다. 더 조명 받고 더 회자돼야 함에도 지금 국내 정치상황에 밀려 기대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다.
점심때마다 20~30분쯤 줄을 서야 하는 맛집이 있다. 요즘엔 그 맛집 앞에서 5~10분만 기다리면, 어렵지 않게 식사를 하게 되는 상황이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확실히 손님이 예전만큼 많지 않다고 한다.
몇 주 전 아내와 같이 여행한 동해안의 한 도시 맛집에서도 예년의 활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단골집 사장님의 걱정 어린 푸념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국민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가고 있다. 정치권은 이런 국민의 고통을 헤아리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국민은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게 되면 ‘세상이 심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이 심심해야 우리는 나라 걱정을 안 하면서 맛집을 더 자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심심해야 주말에 어디로 여행을 갈까 고민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지루하고 심심해야 국민은 영화를 예매하고 공연을 관람할 것이다.
정치는 세상을 심심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논다. 국민이 정치를 믿고, 놀 수 있게 해야 한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