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만 사람이고, 우리는 국민 아니에요?”
오전 10시 30분. 한 중년 남성이 헌법재판소 인근 골목을 봉쇄하고 있는 경찰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였다. 경찰은 신분증이 있는 기자나 경찰이 아니면 통과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찰은 새벽 0시부터 ‘갑호비상’을 발령하고 헌재 인근을 봉쇄했다. 갑호비상은 가용 경력 100%를 동원할 수 있는 비상근무 체제다. 검은색 진압복을 입은 기동대가 골목을 지켰다. 성벽만큼 높은 폴리스라인이 설치됐다.
이 남성과 일행 3명은 투덜거리며 돌아섰다. 이들은 헌재나 정치권에 대한 불만 섞인 말을 내뱉었다. 헌재는 불공정했고, 선관위는 부정선거를 했으며, 정치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버렸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행인들을 향해 ‘탄핵 반대’라고 외쳤다.
10분 뒤 이들은 안국역 5번 출구에 있는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 도착했다. 국민의힘이 설치한 붉은색 천막이 있었다. 천막 근처에는 붉은색 모자를 쓴 해병대 전우회 회원들이 서 있었다. 어느 시민은 대형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성조기를 흔들었다. 몇몇 시민들은 헬멧과 방탄조끼를 입고 얼굴을 두건으로 가렸다. 대학교 학과 외투를 입은 청년들도 있었다. 은박 담요를 두른 한 남성은 밤을 지새우며 현장을 지켰다고 전했다.
폴리스라인 앞에는 해병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은 붉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해병대 옷을 입은 한 중년 여성이 ‘탄핵 각하’라는 구호를 확성기로 선창하면 다른 참석자들이 복창했다. 참석자들은 ‘사기탄핵 각하, 더불어민주당 해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구국일념으로 탄핵 각하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 팻말을 높이 들었다.
가방에 만화 캐릭터 ‘페페 더 프로그’의 얼굴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문구를 붙인 남성은 열성적으로 탄핵 각하 구호를 외쳤다. 그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반국가 세력이라고 했다. 이 대표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핵 선고 10분 전인 오전 10시 50분. 집회 현장은 고요해졌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탄핵 선고 생중계를 시청했다. 탄핵 각하 구호를 선창하던 중년 여성은 스마트폰에 확성기를 대고 탄핵 선고를 생중계했다. 확성기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들었다. 한 30대 남성은 “탄핵 인용이 반반일 거로 생각한다. 초조하다. 1분 남았다. 탄핵되면 어쩌죠?”라고 말했다.
오전 11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결정문을 낭독했다. 헌법재판관들은 윤 전 대통령 측 방어 논리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의 얼굴은 굳어졌다. 한 중년 여성은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곳곳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해병대 옷을 입은 고령의 남성은 “문형배를 죽여라”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 권한대행이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전원일치 파면이래요”라며 울먹이는 목소리와 “어떻게 한 사람도 (기각·각하가) 안 나오냐고”라며 탄식이 나왔다. 집회 현장이 격앙되기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확성기로 욕설과 항의의 말을 퍼부었다. “전광훈이는 뭐 하는 거야” “국민의힘 당사 가서 국회의원 다 사퇴하라고 해” “날리러 갑시다” 같은 날 선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한 여성은 폴리스라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울부짖었다. 다른 중년 여성도 폴리스라인으로 걸어갔다. 태극기로 얼굴을 감쌌다. 그는 “내 새끼들이 어떻게 살라고”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민주주의가 승리했다”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 3분 거리인 탄핵 찬성 집회(안국역 6번 출구 인근)에서도 울음을 터뜨리는 시민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비상계엄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됐고,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의 표현이라고 했다. 눈물과 미소가 함께 번진 한 참석자는 “어휴 이렇게 힘들게 (선고를) 뜸 들였냐”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시민들은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수의 시민이 밤새 현장을 지킨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도 이천시에서 온 김 아무개 씨(28)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계속 집회에 나왔다고 했다. 이날 집회 현장에는 밤새도록 있었다고 전했다. 탄핵 인용을 확신했다는 김 씨는 “(비상계엄 이후) 밥을 먹을 때도, 술을 먹을 때도 계속 그것밖에 걱정을 안 했다. 그래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8 대 0 탄핵 인용’을 확신했다는 김도연 씨(39)는 비상계엄 당일 인천 자택에서 국회로 향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국회 인근에서 군대 후배인 계엄군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이후 매일 집회 현장을 지켰다고 했다. 김 씨는 “이렇게 후진적인 행태가 나타나는 것은 법과 제도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입법을 잘했으면 좋겠다”며 “다시는 시위를 안 했으면 좋겠다. 안심하고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장 한편에서는 사물놀이 공연이 벌어졌다. 공연자들은 꽹과리를 치며 흥을 돋웠다. 다른 곳에서는 윤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촬영이 이뤄졌다. 여러 사람들이 곳곳에서 환호하며 방방 뛰었다.
12시 정각에 행진이 시작됐다. 이들은 광화문을 향해 걸었다. 참석자들은 ‘우리가 이겼다’ ‘국힘당(국민의힘)을 해체하라’ ‘축하합니다’ ‘봄이 찾아왔습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임을 향한 행진곡’, 걸그룹 에스파의 ‘위플래시’ 등 음악에 맞춰 흥얼거렸다. 진행자는 “윤석열을 감옥에 넣고 드러나지 않은 죄목도 밝혀내고 공범들도 밝혀내자”라고 외쳤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행진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광화문에 관광을 온 외국인들도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었다. 유모차에 있던 한 외국인 어린이도 연신 손을 흔들었다. 호주에서 왔다는 부부는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손 팻말을 들고 웃었다. 부부는 “근처 호텔에 묵고 있는데, 그냥 집회가 신기해서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광화문에 도착한 뒤 집회는 마무리됐다. 시민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장을 떠났다.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한 중년 여성은 “내일 동생들하고 파티하기로 했다. 제가 쏘기로 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