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승 예상됐던 챔피언결정전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으로 우승컵을 거머쥔 김연경. 하지만 그 과정은 역시나 순탄치 않았다. 준우승팀 정관장의 저항이 유난히도 거셌다.
앞서 김연경 소속팀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챔피언결정전 대진이 정해진 뒤 흥국생명의 우승을 점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그간 약점으로 꼽히던 리베로와 세터진을 보강했다. 이전의 시즌들과 달리 외국인 선수와 아시아 쿼터 쪽에서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이에 흥국생명은 5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정규시즌 우승을 조기에 확정 지었다. 그만큼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다.
정규리그 우승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이미 진출해있었던 흥국생명은 숨 고르기에 돌입했다. 주축 자원들에게 휴식을 주며 체력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시즌 막판 은퇴투어와 같은 행사를 이어갔음에도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을 정도로 챔피언결정전에 집중했다.
정관장도 시즌 막판 체력관리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정규리그 4위의 성적이 좋지 못해 준플레이오프 개최 가능성이 낮아지며 2위의 이점이 크지 않았다. 이에 정관장은 2위 싸움에 적극 나서기보다 일부 몸 상태가 좋지 못한 선수들에게 휴식을 부여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들이 플레이오프 혈전을 피할 수 없었다. 시리즈를 일찍 끝내지 못하고 현대건설과 1승씩을 주고받으며 3차전까지 경기를 치렀다. 플레이오프 과정에서는 일부 선수들의 부상도 발생했다. 체력적으로 흥국생명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정규시즌 상대전적에서도 흥국생명이 정관장에 4승 2패로 앞섰다. 6라운드에서 흥국생명의 패배는 이미 우승을 확정 지은 이후 주전이 빠진 경기이기도 했다.

세간의 예상대로 챔피언결정전은 흥국생명의 낙승으로 끝나는 듯했다. 인천 홈에서 열린 1, 2차전을 흥국생명이 모두 가져갔다.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두게 됐다.
3차전을 앞두고 고희진 정관장 감독은 '김연경의 은퇴를 1경기 미루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럼에도 흥국생명은 3차전 1, 2세트를 먼저 가져갔다. 2세트는 듀스가 이어지며 36-34에 이르는 접전이었다. 흥국생명은 한 세트만 더 따내면 우승컵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정관장의 저항이 거셌다. 이들은 이후 세 세트를 내리 따내며 1승을 챙겼다. 정관장이 자랑하는 메가-부키리치 쌍포는 각각 40점과 31점을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4차전에도 5세트까지 풀세트 접전이 이어졌다. 3차전과 같이 듀스가 이어져 3세트는 36-34 스코어의 혈투가 벌어졌다. 정관장은 4차전까지 가져가며 시리즈를 5차전으로 이어갔다. 이번에도 고 감독은 "김연경 선수 홈(인천)에서 은퇴할 수 있도록 하겠다"던 자신의 말을 지켰다.
결국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두고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끝장전'이 벌어졌다. 앞서 벌어진 네 경기 혈투로 흥국생명의 체력 이점은 의미가 없어졌다. 오히려 기세는 1, 2차전을 내주고도 3, 4차전을 따라 붙은 정관장이 거셌다.
승부는 역시나 치열했다. 1세트부터 3세트까지 모두 듀스가 나왔다. 1, 2세트를 흥국생명이 선점했으나 3, 4세트를 정관장이 가져갔다. 5차전 역시 풀세트 접전이었다.
마지막에 웃은 쪽은 흥국생명이었다. 김연경은 블로킹 7개, 서브에이스 1개 포함, 34득점을 쓸어 담으며 우승을 이끌었다. 챔피언결정전 5경기 중 가장 많은 득점을 5차전에 기록했다. 시리즈 MVP 역시 김연경의 차지였다.
#준우승 트라우마 극복
김연경과 흥국생명으로선 염원하던 챔피언결정전 트로피다. 손에 잡힐 듯한 트로피와 수년째 인연이 없었다. 김연경의 프로 초년 시절, 4시즌 동안 3회 우승에 성공한 당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김연경과 흥국생명은 2020-2021시즌부터 손을 잡고 우승 도전에 나섰다. 당시 국가대표급 선수진이 즐비해 '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 사태가 터지며 전력이 약화됐고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에 그쳤다.
다음 시즌 김연경은 중국 무대에 재진출했다. 공교롭게도 그 시즌 V리그는 코로나19 여파로 정규시즌이 중단됐고 챔피언결정전이 열리지 않았다.
김연경은 재차 V리그로 복귀한 이후로도 흥국생명과 함께 준우승을 반복했다. 2023년과 2024년 봄, 2년 연속으로 상대팀의 우승 세리머니를 눈앞에서 지켜봤다. 특히 한국도로공사를 상대했던 2022-2023시즌은 챔피언결정전에서 2승을 먼저 해놓고도 내리 3패로 우승을 내줬다. 단기전에서 2승을 올리고도 우승에 실패한 것은 V리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번 시즌에도 2승 2패 상황이 이어지자 흥국생명 팬들은 '역스윕 트라우마'에 떨어야 했다.
V리그 챔피언결정전 네 번째 도전에서야 비로소 김연경은 염원하던 우승컵을 들었다. 그간 은퇴를 언급하기도 했으나 우승에 대한 아쉬움에 선수 생활을 이어왔다.
김연경 개인으로선 그간 우승이 더욱 간절했다. 국내 복귀 이전 2018-2019시즌 터키 엑자시바시와 2017-2018시즌 중국 상하이에서도 연속으로 리그 준우승에 머무른 바 있었다. 마치 준우승 망령이 든 듯 오랜 기간 우승을 눈앞에 두고 패배를 겪었다. 데뷔와 동시에 우승, MVP를 석권하고 유럽에서도 밥 먹듯 우승했던 그였기에 패하는 모습은 팬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준우승에 좌절할 법했으나 결국 김연경은 마지막 기회에서 트로피를 안았다.
비록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됐지만 김연경은 여전히 흥국생명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 그는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 높은 득점 비중(16득점-22득점-29득점-32득점-34득점)을 보였다.
흥국생명으로선 김연경의 활약은 '상수'였다. 그간 우승에 실패하며 '김연경의 조력자가 부족하다'는 꼬리표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선 투트쿠와 피치를 비롯, 정윤주, 이고은 등이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우승을 결정지은 5차전에서는 김다은이 9득점을 기록하며 깜짝 활약을 펼쳤다. 또한 주전 리베로 신연경이 갑작스레 부상으로 쓰러져 위기를 맞았으나 백업 리베로 도수빈이 공백을 메우며 우승에 힘을 보탰다.
'여제'로 불리던 김연경은 결국 우승컵을 거머쥐며 코트를 떠나게 됐다. 선수 생활 막바지 거듭된 좌절 속에서도 최후에는 목표를 이뤄내며 또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