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봉 감독의 데뷔작이 ‘플란다스의 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상업영화로 멋지게 데뷔한 봉 감독의 첫 작품 전국 관객수는 5만 명 안팎이라고 한다. ‘기생충’으로 천만 영화를 달성한 감독의 데뷔작 관객 수가 5만 명이다. 일일관객이 아니라 영화 총 관객 수다.

상업영화 현장에선 전작이 실패를 넘어 ‘폭망’한 감독이 다음 기회를 얻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처참한 흥행 실패를 한 데뷔작을 뒤로하고 3년 후 ‘두 번째 기회’를 얻어냈다. 그렇게 탄생한 명작이 ‘살인의 추억’이다. 뒤이어 그는 ‘괴물’이라는 영화를 통해 천만 영화 감독 반열에 올랐다. 그 뒤로도 ‘설국열차’ 등을 통해 존재감을 부각했다. 그리고 나서 한국 영화 위상을 드높인 수작 ‘기생충’이 세상에 공개됐다.
봉준호 감독과 더불어 한국 영화의 또 다른 신기원을 개척한 박찬욱 감독은 ‘두 번째 기회’보다 얻기 더 어려운 ‘세 번째 기회’를 얻어낸 사람이다. 박찬욱 감독 데뷔작인 ‘달은 해가 꾸는 꿈’은 1992년 개봉해 전국관객 1만 명 안팎 스코어를 기록했다. 상업영화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보면, ‘폭망’을 넘어선 ‘대참사’ 수준 성적이었다.
이 정도의 성적이면, 영화 업계에서 다시 활동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데 박 감독은 5년 후 두 번째 기회를 받았다. 당대 최고 인기 배우 김민종과 이경영을 투톱으로 내세운 ‘3인조’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도 전국 관객 3만 5000명 안팎 흥행 실패를 기록했다. 두 번째 기회까지 날려버린 박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을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절치부심하던 그에게 당대최고의 제작사였던 ‘명필름’이 송강호, 이병헌, 이영애가 캐스팅돼 있는 작품을 박 감독에게 맡겼다. 세 번째 기회였다. 그 작품이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였다. 모두가 우려했지만, 박 감독은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전국관객 580만 명을 영화관으로 불러 모았다.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다. 그 뒤로 박 감독은 ‘올드보이’와 ‘박쥐’라는 영화 두 편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두 차례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두 사람은 ‘설국열차’라는 작품에서 만났다. 이 작품 제작자는 박찬욱이었고, 감독은 봉준호였다. 처참한 실패를 딛고 거장이 된 두 감독의 인연은 앞으로도 이어질 거라 본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실패에 대해 공포심을 갖기도 한다. 이 험난한 세상에 한 번만 실패를 한다면, 어쩌면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무언가를 해볼 엄두도 못 낼지 모른다. 실패를 딛고 와신상담해 재기를 해낸 감독의 의지는 ‘성공의 열쇠’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실패를 겪은 이들을 내치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준 투자자, 제작자, 산업이 어쩌면 더 훌륭한 일을 했는지 모른다.
데뷔작이 망했다고 봉준호를 버렸다면, 두 번 연속 상업영화를 말아먹었다고 박찬욱을 버렸다면, 한국 영화가 지금의 위상을 가질 수 있었을까.
젊은 후배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다. 기성세대와 결정권자들이 실패한 후배들을 재기불능의 사람이라고 규정짓지 않는 것이다. 젊은 친구들이 재기할 수 있고, 멋지게 성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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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