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악연’에서 박해수는 ‘목격남’, 그리고 ‘김범준’을 연기했다. 극 초반에는 뺑소니 사망 사건의 목격자로 사건의 피의자인 ‘안경남’(이광수 분)으로부터 살해의 위협까지 받는 불운한 남성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서사가 진행되면서 이 불쌍한 목격남은 실제로는 사건을 계획한 설계자이자 작품의 ‘최종 보스’라는 점이 드러난다. 극 중 등장하는 모든 ‘악인’들과 우연이든 필연이든 연결돼 있는 인물로, 이 같은 목격남의 반전은 시청자들로부터 ‘악연’이 큰 호평을 받게 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설정으로 꼽히기도 했다.
“목격남의 반전 모습을 연기할 때 내가 어떤 변신을 한다거나, 아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저 범준이 어떤 상황을 대면하면서 변화해야 하는 순간을 잘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다행히 저는 ‘악연’ 속의 악인 다섯 명을 모두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황 속에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형성됐던 것 같아요. 특히 이광수 배우가 연기한 안경남을 만났을 때(웃음). (이)광수 씨가 가진 에너지가 정말 엄청나다 보니 제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앞에서 주눅 든 캐릭터로 완성되더라고요(웃음).”

“육교 신을 촬영할 때 날씨가 정말 추웠어요. 또 촬영도 카메라가 제 곁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져서 찍었기 때문에 그 당시엔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내려왔는지 기억조차 없었고요(웃음). 시신을 육교에서 떨어뜨린 뒤 달려오는 차에 맞추는 신인데, 사람은 볼링을 할 때도 스트라이크로 들어갔을 때 순간의 짜릿한 표정을 짓잖아요. 그런데 그 무거운 걸 던졌을 때 정확하게 떨어진다면 또 얼마나 기뻤겠어요. 실제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 순간이, 그 쾌감이 어떨지 상상을 많이 하고 연기했는데 찍힌 장면을 보고 저도 소름 끼치더라고요. ‘나한테 저런 표정이’(웃음)?”
목격남에서 김범준으로의 반전을 이룬 뒤 박해수는 ‘박재영’이라는 세 번째 모습으로 서사를 이어나간다. 자신의 범행이 들키자 ‘악연’ 속 다섯 악인 가운데 한 명이었던 진짜 박재영(이희준 분)을 죽이고 그의 인생을 대신 살기로 한 것. 범행 현장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 탓에 온몸에 화상을 입은 것을 역으로 이용해 ‘완전한 변신’을 꾀하지만, 문제는 그가 입원한 병원의 의사 주연(신민아 분)에게 있어 박재영이 철천지원수였다는 점이다. 작품의 제목처럼 ‘악연’으로 이어진 이 둘의 관계를 ‘박재영 아닌 박재영’으로서 풀어나가는 것은 박해수에게 있어서는 무겁지만 즐거운 숙제이자 도전이었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의 조상우로 시작해 이번 ‘악연’으로도 국내외에서 뜨거운 호평을 받은 박해수는 그의 별명인 ‘넷플릭스 공무원’다운 행보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영화 ‘대홍수’, ‘굿뉴스’에 이어 오리지널 시리즈 ‘자백의 대가’까지 넷플릭스 작품으로만 2025년의 하반기가 쭉 채워진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꾸준히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오는 작품을 찾아 모조리 섭렵하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이 많기 때문에 공무원(?)으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게 아닐까. 별명이 언급되는 순간부터 쑥스러운 웃음을 지은 그는 “많은 분들이 부족한 저를 너무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솔직하게, 왜 저를 좋아해주시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웃음). 그런 사랑을 받기엔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늘 제게서 허점을 보거든요. 그냥 제가 연기한 캐릭터가 가진 변화의 간극이 커서 연기도 좋게 봐주신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저 역시도 이런 캐릭터를 좋아하고, 이런 연기에 도전하는 것에도 큰 흥미를 느끼고 있거든요. 단층적인 캐릭터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흔들어 놓으려고 하죠. 물 위에 둥둥 떠서 가만히 있는 배가 아니라 강에서 계속 흘러넘치는 캐릭터가 되길 원하는 게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