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이민자는 늘어나는 영국 현실도 엿보였다. 패딩턴역 맥도날드에선 직원 대신 키오스크 7대가 주문을 받았다. 주방 안 직원은 3~4명에 불과했다. 히잡을 쓴 여성 직원도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영국은 2020년 ‘브렉시트’(유럽연합·EU 탈퇴) 이후 다른 유럽 국가보다 물가가 가파르게 치솟는 등 경제가 악화했다고 평가받는다. 경제 전문가들은 브렉시트 결정 전부터 예견한 수순이었다. 그런데도 브렉시트가 이뤄진 과정은 포퓰리즘(Populism)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보수당 소속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2015년 총선에서 브렉시트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보수당 지지율이 떨어지자 띄운 정치적 승부수였다. 그 결과 캐머런 전 총리는 재집권에 성공했다. 정작 그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경제적 타격 등을 이유로 브렉시트 반대를 호소했다. 캐머런 전 총리의 갈팡질팡 행보 속에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선 찬성표가 더 많이 나왔다.
최근 영국에선 또 다른 포퓰리즘이 확산하는 중이다. 이른바 ‘우파 포퓰리즘’ 정당으로 불리는 영국개혁당의 약진이다. 영국개혁당은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보수당이나 노동당이 아닌 제3 정당이 지지율 1위를 기록한 건 이례적이다. 영국 현지 전문가들은 오는 5월 1일 열리는 지방선거에서 영국개혁당이 가장 많은 표를 얻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다소 생소한 우파 포퓰리즘은 유럽과 미국 등 서양권에서 논란이 뜨겁다. 좌파 포퓰리즘은 엘리트층이 부를 독점하면서 여러 사회 문제가 발생했으니 부의 재분배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인기몰이를 한다. 반면 우파 포퓰리즘은 사회 문제 책임을 이민자에게 돌린다. 우파 포퓰리즘은 반이민 정책에서 시작해 극단적인 자국민 중심주의를 주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 등이 우파 포퓰리즘의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우리나라도 우파 포퓰리즘이 고개를 드는 중이다. 한국 내 중국인에 대한 반감이 점점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진영에선 중국을 부정선거 배후로 지목한다. 친중 세력이 부정선거로 권력을 잡아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음모론이다. 중국인이 우리나라 복지 시스템에 무임승차해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는다.
일요신문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생소한 우파 포퓰리즘을 들여다보고자 영국으로 향했다. 영국 현지 전문가들은 정치 불신, 경제 불안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대중이 동요하면서 포퓰리즘이 확산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포퓰리즘이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한국 상황이 겹쳐 보이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우파 포퓰리즘의 반이민 구호는 감정적 선동에 가깝다. 이민으로 인해 경제 위기가 생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재정연구소(IFS) 칼 애머슨 부국장은 “대중은 가뜩이나 경제 상황이 안 좋은데 이민자까지 와서 본인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이민자는 고령층이나 아동이 적고 대부분 노동 연령층이라 공공재정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애머슨 부국장은 “공공재정이 어려워진 건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노동 인구가 줄었기 때문이다. 이민으로 인해 노동 인구는 오히려 늘었다”며 “대중이 공공재정 혜택을 더 받고 싶다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그런데 영국은 지난 50년 동안 다른 세율은 올려도 기본 소득세율은 그대로였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크릭은 “중산층 숫자가 줄어든 것도 문제다. 전통적으로 보수당과 노동당은 중산층 표를 얻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그렇게 중간에 소외된 사람들의 표를 영국개혁당이 가져가고 있다”고 영국개혁당 약진 배경을 설명했다.
마이클 크릭은 “포퓰리즘 정치인은 굉장히 기회주의적이다. 다른 정당 정책을 베껴서 본인 이득만 생각한다”며 “영국개혁당 내부에서 이민자 추방 정책 추진 여부를 두고 찬반 논쟁이 있다. 선거에서 최대한 표를 받는 게 목표인데 실제로 이민자를 추방하면 잃게 되는 표도 있어서 그렇다”고 꼬집었다.
마이클 크릭은 “소셜미디어(SNS)가 대중의 정치적 성향을 양극화시켰다. 소셜미디어에서 사람들은 의견을 너무 쉽게 퍼뜨린다”며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의견을 그대로 따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게으른 민주주의 세상이 됐다”고 걱정했다.

크리스겔로스 교수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현상으로 사법부 불신을 손꼽았다. 그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대중이 선출한 정부가 하는 일이 법에 위배되면 제지할 수 있는 법원이 있다. 그런데 포퓰리즘 사고방식에서 법원은 국민이 원하는 일을 차단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국면에서 사법부 불신이 강하게 표출된 점을 이야기하자 크리스겔로스 교수는 “한국 상황은 잘 모른다”며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사법부에 대한 믿음이 망가졌다면 포퓰리즘이 정치적 현상으로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우려했다.
크리스겔로스 교수는 “포퓰리즘이 왜 일어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정치 시스템 어딘가에 문제가 있을 때 포퓰리즘이 발생한다. 포퓰리즘은 대중이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는 “포퓰리즘 정치인은 본인 이익을 위해 대중의 감정을 자극한다. 현실적으로 해결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크리소겔로스 교수는 포퓰리즘이 확산하는 요인 중 하나로 세계화를 지목했다. 그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개별 국가는 주체적인 결정을 내리기 매우 어려워졌다. 이민도 세계화와 연관된 문제”라며 “서양 국가들은 본인들이 더 이상 세계의 지배자가 아닐 것이라는 불안감이 크다. 그 안에서 포퓰리즘이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찰리 베켓 교수는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는 포퓰리즘 정치인이다. 기회주의자이기 때문”이라며 “원래 패라지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굉장히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정책 등으로 영국에서 신임을 잃으니까 이제 트럼프 대통령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찰리 베켓 교수는 “포퓰리즘 확산은 예상보다 훨씬 더 영국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며 “영국 사람들은 브렉시트를 너무 이상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소원을 빌듯 영국이 과거처럼 부흥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한 투표로 브렉시트가 돼서 영국이 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언 교수는 “포퓰리즘은 대중의 분노를 악용한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대중의 마음을 이해한다며 해결해주겠다고 다독이면서 사실은 분노를 일정 정도 유지되도록 한다”며 “사회 문제를 해결해서 분노가 사라지면 그 정치인이 힘을 잃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정치는 대중의 분노를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코언 교수는 “민주주의에서는 다른 의견을 가진 여러 사람이 공존하면서 좋은 방향을 이끌어내려고 한다”며 “반면 포퓰리즘에서는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적으로 여긴다. 민주주의에는 적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영국=남경식 기자 ngs@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