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천동 아파트 방화 사건이 발생하고 가장 유사한 사건으로 주목받은 사건은 2019년 4월 17일 새벽 4시경에 벌어진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남성 안인득은 4층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게다가 화재로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무차별로 흉기를 휘둘렀다. 5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당해 모두 2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24년 12월에 개봉한 영화 ‘소방관’의 모티브가 된 ‘홍제동 방화 사건’은 2001년 3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다가구 주택에서 발생했다. 집주인 아들인 30대 남성의 방화로 인한 화재였는데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 과정에서 소방관 6명이 순직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숙박업소나 고시원에서 발생하는 방화사건은 유난히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다. 특히 오래된 건물에 위치한 숙박업소의 경우 스프링클러조차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내부 구조가 복잡해 대피로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에 벌어진 ‘논현동 묻지마 방화 살인사건’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의 한 고시원에서 발생했다. 고시원 3층에 거주했던 20대 남성 정 아무개 씨는 자신의 방에 불을 지른 뒤 화재 소식에 놀라 복도로 뛰어나오던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6명을 살해하고 7명을 다치게 만들었다. 결국 정 씨는 사형이 확정돼 현재 미집행 사형수로 복역 중이다.

2019년 12월에는 광주 북구 두암동 소재의 한 모텔에서 ‘광주 모텔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30대 남성 김 아무개 씨는 3층 객실에서 라이터로 베개에 불을 붙여 방화한 뒤 달아났다. 이 사건으로 3명이 사망하고 31명이 부상을 입었다. 재판 과정에서 김 씨는 조현병 등으로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인정받았음에도 징역 25년 형을 선고 받았다.
이외에도 2020년 11월에 발생한 ‘서울 마포 모텔 방화 사건’으로 3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을 입었고, 2024년 9월 충청북도 청주 소재의 한 여관에서 발생한 ‘청주 여관 화재 사건’으로도 3명이 사망했다.
유흥업소에서 벌어진 방화 사건 역시 사상자를 다수 발생시킨다. 1991년 10월 대구 서구 비산동 소재의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진 ‘거성관 방화 사건’으로 16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 방화 당시 거성관에는 150여 명이 있었다. 방화범은 20대 남성 김 아무개 씨로 고향 친구 2명 2차로 거성관을 찾았지만 종업원들은 드레스 코드를 운운하며 김 씨의 출입을 막았다.
거성관에 들어가지 못한 김 씨는 다른 술집을 찾아 홀로 술을 마시다 술기운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해 거성관 뒷문으로 들어가 불을 지른 뒤 도주했다. 나이트클럽 바닥이 카펫이라 유독가스가 대량 발생한 데다 나이트클럽 직원들은 누전에 인한 화재로 오인해 전원까지 차단해 버렸다. 유독가스가 가득한 지하1층 나이트클럽에 불까지 꺼지자 출구를 찾지 못한 이들이 우왕좌왕하며 다수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향후 김 씨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2018년 6월에는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소재의 한 라이브카페에서 ‘군산 유흥주점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도 분노에 의한 방화 사건이었는데 방화범인 50대 남성은 전날 외상값이 10만 원인데 라이브카페 여주인이 20만 원을 요구하자 분노해 불을 질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로 인해 5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 사망자 가운데에는 KBS 공채 8기로 데뷔한 개그맨 김태호도 포함돼 있었다.
#숭례문이 불타고 사찰까지 미친 방화 사건
아무래도 전 국민을 가장 충격에 몰아넣은 방화 사건은 2008년 2월에 벌어진 ‘숭례문 방화 사건’이다. 국보 1호 숭례문은 어이없게도 토지 보상액에 불만을 품은 70대 남성의 방화로 불타 버렸다. 소방차 32대와 소방관 128명이 현장에 출동해 진화 작업을 벌였고, 국보 1호 문화재가 불에 타는 모습을 전 국민이 생방송으로 가슴 아프게 지켜봐야만 했다.

2021년 3월에는 전라북도 정읍에서 ‘내장사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636년 창건된 천년고찰이 내장사 대웅전이 전소됐는데 방화범은 50대 승려였다. 직접 경찰에 자수한 승려는 석 달 전부터 수행을 위해 내장사에 머물렀는데 함께 생활하던 스님들이 서운하게 해 술을 마시고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2020년 10월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에서 ‘수진사 방화 사건’이 벌어졌다. 방화범은 여성 개신교도 40대 여성 장 아무개 씨였다. 장 씨는 서울에 거주하며 수진사 인근 기도원을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2019년부터 사찰을 찾아와 “할렐루야” “예수를 믿으라” 등을 외치며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이미 장 씨는 2020년 1월 사찰 주변 방화마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지만 검찰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아 지명수배 상태였다.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상황에서 정 씨는 결국 수진사에서 방화 사건을 벌였는데 당시 모습이 CCTV에 담겨 경찰에 체포됐다.
종교를 둘러싼 갈등으로 벌어진 방화 사건으로는 1992년 강원도 원주에서 벌어진 ‘원주 왕국회관 화재 사건’도 있다. 방화범은 30대 남성 원 아무개 씨로 1991년부터 아내가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해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주 부부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결국 원 씨는 원주 왕국회관을 찾아가 불을 질렀는데 이로 인해 15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었다.
#대형 참사 가능성이 높은 지하철 방화 사건
사망자 192명, 실종자 6명에 부상자는 151명. 방화 사건의 수준을 뛰어 넘어 참사로 기록된 ‘대구 지하철 참사’는 2003년 2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했다. 전 세계 지하철 사고 가운데 사망자 수가 2위를 기록했을 만큼 역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분류되는 대형 참사다.

불은 급속도로 번졌고 김대한은 열차 밖으로 탈출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당시만 해도 일반 승객인 것처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당시 상황을 목격한 다른 승객의 신고로 체포됐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대한은 2004년 8월 수감생활 중에 사망했다.
이런 대참사가 벌어지면서 지하철에서의 방화 사건을 방지하고, 방화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지하철 방화 사건은 이후에도 몇 차례 벌어졌다.
2005년 1월 3일 오전, 새해 첫 출근 시간대에 서울 지하철 7호선 철산역 부근에서 도봉산발 온수행 전동차 객실에서 방화사건이 벌어졌다. 50대 남성이 전동차 안에서 미리 준비한 시너로 광고전단지에 불을 붙여 객차에 던져 화재를 일으킨 사건이다. 화재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60대 여성이 화상을 입었지만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직원이 소화기로 초동 진압에 나섰고, 승객들은 철산역에서 하차해 모두 대피했다.
방화범은 사건 발생 45일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방화범인 50대 남성 강 아무개 씨는 1997년 외환위기로 실직한 뒤 주식투자 실패로 2억여 원을 날렸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자살을 결심한 뒤 지하철에서 방화 사건을 저지른 것이다. 도주 이후 자살을 시도했다 포기하고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결국 경찰에 검거됐다.
2014년 5월에는 ‘도곡역 열차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지하철 3호선 도곡역에 막 진입하던 오금 방면 전동차 객실에서 70대 남성이 가방에 들어 있던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당시 불이 난 객실에는 50여 명, 열차 전체에는 370여 명이 탑승하고 있어 또 다시 대형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부상자 1명으로 마무리됐다. 부상자 역시 화상이 아닌 대피를 위해 열차에서 내린 뒤 선로를 걸어가다 발목을 삐끗한 것이었다.
우연히 사고 객실 타고 있던 서울메트로 역무원이 빠르게 초동 대처에 임했고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전동차 내장재를 불연성 또는 난연성 소재로 교체해 화재가 크게 번지지 않았다. 방화범은 바로 도주해 피해자인 척 구급차에 올라탔지만 결국 30여 분 만에 검거됐다. 건물주와 10여 년을 이어온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배상금이 기대 이하였던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 자살 자살…자 살자 살자’ 유독 많은 자살 시도 방화범
방화 사건의 상당수는 방화범이 자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앞서 소개한 방화 사건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많다. 이런 부분에서 2007년 2월 7일 창원지법 315호 법정에서 열린 형사 재판이 다시 눈길을 끈다. 여관방에서 방화를 시도했다 체포돼 기소된 피고인에게 판사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열 번 연이어 외쳐보세요”라고 주문했다. 피고인이 “자살 자살 자살 자…”이렇게 열 번을 말하자 재판장은 “피고인이 외친 ‘자살’이 우리에겐 ‘살자’로 들립니다”라고 말했다. “자 살자 살자 살자…”이렇게 들린다는 의미다.
전과가 없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참작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판사는 피고인에게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당시의 판사가 최근 퇴임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헌법재판소장 대행)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