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의 상승세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이유는 장기간의 '암흑기' 탓이다. 야구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알 만큼 장기간의 부진을 겪었다. 2007년 이후 17시즌 동안 포스트시즌을 경험한 때는 2018년 단 한 시즌뿐이다. 한때 'FA 큰손'으로 불리며 대형 투자에 나섰고 김응용, 김성근 등 '우승 청부사'들이 팀을 맡기도 했다. 그럼에도 뚜렷한 반등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2020시즌부터 2022시즌까지는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무르는 치욕을 경험했다. 이듬해의 최종 성적도 리그 9위로 저조했다.
이 시기, 한화의 부진은 유난히도 뼈아팠다. 2018시즌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로 희망을 선보였던 한용덕 감독은 구단 역사상 최다인 14연패를 기록하며 2020시즌 도중 자진 사퇴로 물러났다.
이후 구단은 전면적인 리빌딩을 선언했다. 구단의 상징이었던 김태균이 은퇴했고 이후 송창식, 안영명, 윤규진, 이용규, 최진행 등 베테랑들이 잇달아 팀을 떠났다. 리빌딩의 중책은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맡았다.
하지만 그 역시 하위권 성적을 피해가진 못했다. 2021시즌부터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고 2023시즌 초반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이후 3년 계약을 맺었던 최원호 감독도 불과 1년 만에 팀과 결별했다. 2024시즌 초반, 선두 등극으로 기세를 올렸으나 이내 순위는 하위권으로 처졌다.
#잠에서 깨어난 타선
그럼에도 2025시즌 개막 이전 한화를 향한 기대감은 남달랐다. 당초 구단이 계획했던 반등의 시즌은 이번 시즌이었다. 리빌딩 작업 당시 구단 단장을 맡았던 정민철 해설위원은 개막 이전 "2025시즌을 바라보고 '빌드업'을 진행했었다"면서 "신구장이 지어지고 류현진이 복귀하는 시기로 봤다. 장기간 육성한 유망주들이 잠재력을 드러낼 시점이기도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적극적인 투자가 이어지기도 했다. 비FA 다년계약으로 대형 FA가 탄생하기 어려운 시장 상황 속에서도 한화는 선발 자원 엄상백과 유격수 심우준을 잇달아 영입해 의지를 보였다. 이들에 들인 지출 금액만 최대 128억 원이었다.
신축 구장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개장과 함께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했으나 초반 흐름은 좋지 못했다. 개막 이전부터 우려되던 타선이 발목을 잡았다. 개막 이후 팀 타율이 1할대에 그칠 정도로 타자들이 단체로 부진했다.
특히 신입 외국인 타자 에스테반 플로리얼의 부진은 심각했다. 개막 이후 6경기 동안 1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타율을 기록했을 정도다. 빅리그에서도 최고 명문으로 불리는 뉴욕 양키스에서 유망주 랭킹 1위에 올랐던 것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운 성적이었다.
하지만 4월 초를 지나며 플로리얼의 타격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4월 5일 첫 멀티히트를 기록한 이래 23일까지 안타를 생산하지 못한 경기는 단 한 경기뿐이다. 4월 타율은 0.355로 3월(0.143)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막 초기부터 '구단이 대체자를 알아보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은 쏙 들어갔다.
이외에도 한화 타선은 플로리얼과 더불어 단체로 각성한 모습이다. 노시환은 홈런 8개로 리그 선두권을 형성 중이다. 내야수 문현빈은 3할 타율(0.304)로 팀의 타선을 이끈다. 최재훈, 채은성 등 베테랑들도 분발하고 있다. 덩달아 압도적 최하위에 머물던 각종 팀 타격 지표도 중위권까지 올랐다.
야수들이 타석에서만 힘을 냈던 것은 아니다. 최근 한화의 8연승 기간 내 실책은 단 3개에 불과했다. 이전까지 13개의 실책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이번 시즌 다수의 전문가들로부터 한화는 '5강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배경에는 안정적인 선발진이 있다. 외인 2명에 그 어느 외인보다도 빅리그 커리어가 좋은 류현진, 신인왕 출신 문동주, 총액 78억 원 FA 영입생 엄상백이 선발 로테이션에 자리했다. 선발 자원만큼은 그 어느 팀에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실제 개막 이후 한화 선발진은 좋은 성적을 냈다. 최근의 8연승도 모두 선발투수 승리가 동반됐다. 가장 두드러지는 쪽은 폰세다. 최고 시속 157km의 강속구를 뿌리며 무더기 삼진을 잡아낸다. 등판한 6경기에서 삼진 56개를 기록, 독보적인 리그 1위에 올라 있다. 홀로 불안함을 노출하던 엄상백마저 4월 18일 승리를 챙기며 팀의 연승을 이어갔다.
한화는 불펜마저 단단함을 더해가고 있다. 그 선두에는 데뷔 3년 차 김서현이 자리했다. 김서현은 개막시리즈 2경기에서 무실점 피칭을 선보인 이후 김경문 감독으로부터 팀의 마무리 투수로 낙점을 받았다. 이후 김서현은 6개의 세이브를 잡아내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시즌 11.2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실점이 없다. 리그 내 유일한 '무실점 마무리 투수'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감을 찾은 김서현은 신인드래프트 전체 1번 출신으로서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또 다른 '1라운더' 정우주도 불펜에서 힘을 보탠다. 시범경기부터 3경기 무실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개막전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고 현재까지 10경기에 등판, 2홀드 평균자책점 3.72를 기록 중이다. 16개의 탈삼진은 한화 불펜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이외에도 한승혁과 박상원이 각각 4홀드와 3홀드로 필승조의 한 축을 맡고 있다. 이들은 시즌 초에만 각각 2패를 적립했을 뿐 최근에는 팀의 상승세에 힘을 보탰다. 데뷔 2년 차 조동욱도 좋은 투구 내용을 보이며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대부분의 불펜진이 우완인데 조동욱은 좌완이라는 점에서도 쓰임새가 많다.
한화의 초반 기세는 지난 시즌에도 한 차례 선보인 바 있다. 관건은 꾸준함이다. 시즌 초반 이상하리만치 타선이 터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반등했으나 연승 기간 동안 필요 이상으로 터진 면도 있었다. 야수들의 타격감이 평균으로 돌아가서도 승리를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변수가 없는 것은 한화 연고지 대전 팬들의 열기다. 이번 시즌 열 한 번의 홈경기에서 여덟 번의 매진(1만 7000명)을 기록했다. 관중 숫자가 15000명 이하로 떨어진 경기는 단 한 경기도 없다. 신구장이 지어지기 전인 지난 시즌에도 대전은 리그 전체에서 가장 많은 매진이 나온 곳이었다. 이처럼 뜨거운 열기에 한화 구단이 성적으로 보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