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든 유권자든 '포퓰리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는 구도이기도 하다. 심지어 포퓰리즘이 한국 정치에 고착화할 우려도 나온다. 한국이 포퓰리즘 등장을 유발하는 환경에 근접한 까닭에서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이익 대신 장기적 책임성을 갖는 정책을 만들 수 있는 메커니즘을 논의할 단계”라고 진단한다.

“기존 주 5일 근무 체제를 유지하되, 유연한 시간 배분을 통한 주 4.5일제가 실질적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효과를 가져오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14일 한 말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8시간 기본 근무시간 외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에는 4시간만 일하고 퇴근하는 형태의 '주 4.5일제'를 대선공약으로 검토하겠단 선언이다.
국민의힘은 최근까지 주 4.5일제를 궤변으로 치부해왔다. 올 3월 21일 권성동 원내대표가 발간한 '이재명 망언집'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의 "첨단기술사회로 가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 근무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옛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했다.
그랬던 국민의힘이 돌연 주 4.5일제를 돌연 꺼내든 배경은 '선거용 선심성' 공약, 즉 '포퓰리즘'으로 지목된다. 그간 논의도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나온 발표이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을 향한 포퓰리즘 비판도 만만치는 않다. 민주당은 주 4일제를 내걸었다. 경영계 입장에서나 사회적으로나 심도 깊은 논의 없이 나온 공약이긴 마찬가지다.
양당을 둘러싼 포퓰리즘 논란은 이 밖에도 여럿이다. 국민의힘은 '정년 유연화 및 계속 고용제 도입'(관련기사 국민의힘 너마저…6·3 대선 '포퓰리즘'으로 쓸려가나), 민주당은 이재명 예비후보를 중심으로 한 '선택적 모병제 도입' 등을 약속했는데, 두 당은 서로를 겨냥해 포퓰리즘이라며 공세를 펴고 있다.

포퓰리즘 출현은 어느 정도 예상된 전개다. 갑자기 맞닥트린 조기 대선이므로 짧은 시간에 표심을 끌어 모으려면 불가피한 수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색한 장면이 아니다. 한국 정치에서 포퓰리즘 논란은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국내 포퓰리즘이 본격 등장한 때는 김대중(DJ) 정부 시절인 2000년도 전후라는 분석이 많다. DJ정부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극복을 시도하면서도, '생산적 복지' 개념에 기초한 재분배 정책을 폈다. 이를 두고 당시 야당이 '포퓰리즘' 공세를 본격화한 게 시초로 알려졌다.
뒤이어 출범한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에서 포퓰리즘 비판은 더 확산했다. '노사모'(노무현을사랑하는모임)가 정책 주도권을 쥐었다는 논란이 정점이었다.
포퓰리즘 논란은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그 후 취임한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우다 임기 중반쯤 살짝 궤도를 틀어 '친서민'과 '영세상인 배려'를 기치로 삼고,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등을 막았다. 박근혜 정부는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우기)로 대표되는 정책을 강조하면서도, '한국형 복지국가'(기초노령연금 20만 원, 무상복지 등)를 외쳐 대통령에 취임했다.
도묘연 계명대 국제학연구소 교수가 2020년 낸 '한국 포퓰리즘의 변화 추이와 영향 요인' 논문에 따르면, DJ정부 당시 포퓰리즘을 지적한 신문기사는 136건이었다. 참여정부는 807건, 이명박 정부는 4736건, 박근혜 정부는 2454건이었다.
문재인 정부 땐 유난히 포퓰리즘 비판이 뜨거웠다. 소득주도성장론에 따른 최저임금 대폭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이 급속도로 이뤄졌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는 포퓰리즘 전형으로 꼽혔다.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요원 등 2143명이 갑자기 정규직으로 전환한 일이다. 물론 정규직을 꼭 필기시험 등으로만 뽑는 게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갑작스런 정규직 전환은 포퓰리즘은 물론 '불공정' 이슈가 사회 문제로 새로 떠오른 계기가 됐다.

포퓰리즘 등장에는 일종의 공식이 있다. DJ부터 문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포퓰리즘 논란이 일었던 배경과 시기를 보면 '초접전 선거' '여소야대' '정치 위기'로 정리된다.
DJ의 경우 생산적 복지를 꺼낸 이유가 IMF 구조조정 사태 속 노동계 반발이 컸기 때문이었다. DJ정부는 '기업 구조조정 목표는 새 일자리 창출, 노동자는 직업훈련 등을 통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지원하겠다'며 달래기를 시도했다.
참여정부는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지지층 여론마저 악화한 경험이 있다. 2003년 중반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 기업구조조정, 자본시장 개방 등에 나서면서다. 결국 참여정부는 2006년 초반 양극화를 주요 의제로 삼으며 각종 분배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2006년 6월 지방선거용이란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 밖에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파동' 대규모 촛불집회, 박근혜 정부는 문재인 후보와 18대 대선 '초박빙' 및 임기 말 '여소야대' 국면 때마다 복지정책 카드를 꺼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인국공 사태 등은 '재벌개혁'과 '적폐청산' 요구를 충실히 수행해 지지층 여론을 공고히 하려는 조치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한국의 포퓰리즘은 그 속성이 남미나 유럽 등지 형태와 조금 다른 편이다. 우선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이란 특징이 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요구가 있기도 전에 정치권이 먼저 선거용 선심성 공약을 남발한다는 뜻이다.
도묘연 교수는 "원래 포퓰리즘은 대의민주주의에서 소외된 시민이 중심이 돼 기존 정당과 엘리트에 대한 적대감을 바탕으로 한 운동에서 출발했다"며 "그러나 한국 포퓰리즘은 시민이 아니라 기득권 정당 등이 스스로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온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포퓰리즘이 단순 정치 구호에 불과하단 시각도 있다. 엄밀히 말해 한국 포퓰리즘이 진짜 포퓰리즘에 해당하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참여정부 때 노사모의 정치 참여가 포퓰리즘이란 비판에는 이견이 많다. 노사모는 사회 전체에서 '소수'에 속하는데, '소수를 중심으로 한 포퓰리즘'이란 게 존재 가능하냐는 물음이다.
또 한국에서는 복지 확대를 일단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 양상도 뚜렷하다. 1998년 IMF 구제금융 사태 후 세대·지역·성별·고용형태 등에 따른 격차 해소는 늘 중요한 사회 과제로 대두돼 왔지만, 정작 복지 확대는 포퓰리즘으로 간주해 왔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2011년 낸 '포퓰리즘 논쟁과 한국 정치의 선진화 방안' 보고서에서 "국내 포퓰리즘 논란이 매우 뜨겁지만 선거 등 경쟁에서 지지자를 결속시키려는 시도를 포퓰리즘으로 말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이어 "각종 격차 해소가 중요한 사회적 숙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데, 정치인들이 '힘들어도 참아라' '복지 확대는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긴 사실상 불가능"이라며 "정당은 정책 실현을 위해 선거에 이기려는 게 아니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책을 마련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앞으로다. 해외 사례를 보면 포퓰리즘은 난민 등 특정 집단을 배척 및 혐오하는 현상이 뚜렷해질 때 덩달아 선명해지는 특징이 있다. 또 포퓰리즘이 횡행한 국가에서는 정치나 사법기관을 향한 불신이 높다는 특성도 공통분모다.
최근 한국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정치권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물론, 진보와 보수가 편을 갈라 상대 진영을 혐오하고 배척하려는 분위기가 심해지고 있다. 유럽처럼 난민 등 외부세력이 아닌 한 국가 내부세력 사이 배타성이 짙어졌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사태를 암시하는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특히 한국은 대선후보가 정당에서 육성된 인물 대신 외부에서 영입된 인물이 많아 포퓰리즘 등장 가능성을 키운다는 지적도 크다.
강원택 교수는 2011년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정치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해 선거 때가 되면 정치권이 외부의 인사를 들여와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곤 한다"며 "하지만 이는 정치적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그저 이미지에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해 포퓰리스트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실제 학계에선 윤석열 정부 출범 자체를 포퓰리즘 한 단면으로 진단한 논문이 나왔다. 조석주 경희대 정경대학 교수는 2023년 '포퓰리즘과 테크노크라시-윤석열 정부 평가' 논문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수사를 맡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으로 권력에 굴하지 않는 '이미지'로 대통령에 직행했다"며 "정치 양극화가 심해진 실태도 그의 당선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도 긍정적 효과 대부분이 모호한 예측에 기반한 추상적인 요소들이었다"며 "반면 청와대 포기는 안보 관점에서나 예산 측면에서나 상당한 비용을 수반했다"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이 또한 책임 있는 정책 결정과 거리가 먼 포퓰리즘 한 단면"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엄격한 검증과 책임을 담보하는 메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강원택 교수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요즘 정치는 2010년대에 비해 상호 배타성이 훨씬 심해져 특정 진영을 대변하는 포퓰리즘 등장 가능성이 높아진 게 사실"이라며 "각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논의 절차를 검증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석주 교수 역시 "단기적 이익이 아닌 책임 있는 정책 수립이 시민 지지로 이어질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당을 중심으로 갈등 세력이 화합할 수 있는 정치 과정이 더 활성화돼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대의민주주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에 목적을 두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신문 창간 33주년 특집 시리즈]
① "포퓰리즘+정치부패" 그리스 국가부도 진짜 이유와 후유증
② "돌아올 생각 없다" '국가부도' 후 15년, 그리스 청년들의 아우성
③ '우파 포퓰리즘' 횡행하는 영국 "민주주의 위기"
④ "브렉시트가 영국 망쳐" 노동당 의원이 바라본 포퓰리즘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