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키우려고?” 한강 지나는 구간서 방화

서울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43분 “마포역 열차 안에서 옷가지에 불을 질렀다”는 내용의 신고가 접수됐다. 방화 사건으로 판단한 경찰은 사건 발생 약 1시간 만인 9시 45분쯤 여의나루역에서 도주하던 60대 남성 방화 피의자 A 씨를 현행범 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아내와의 이혼 소송 결과에 불만이 있다”고 범행 이유를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6월 2일 법원은 현존전차방화치상 혐의를 받는 A 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일각에서는 A 씨가 의도적으로 시민들의 탈출이 어려운 지하철 구간을 선택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024년 11월 서울교통공사가 제공한 역사심도정보에 따르면, 5호선 여의나루역 승강장은 277개 지하철 승강장 중 7번째로 깊으며 지하 5층, 35.98m에 위치해 있다. 한강 건너의 마포역 승강장 역시 지하 5층, 29.81m 깊이로 20번째로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교통공사는 여의나루역과 마포역이 한강 하저터널과 연결됨에 따라 깊어졌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승강장 깊이가 깊으면 화재와 같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대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여의나루역은 야외로 대피를 완료하는데 8분 19초가 걸렸다. 심지어 A 씨가 불을 낸 시점은 열차가 여의나루역 승강장을 막 떠났을 때로, 400여 명의 시민들은 대피를 위해 길이 1km가 넘는 하저터널을 이용했어야 했다.
#‘불연성’ 내장재 덕분에 소화기로 진화 끝나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5분 방화범 김대한(당시 56세)이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열차 안에서 불을 질러 저질러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쳤다. 처음 바닥에 떨어진 휘발유 통에서 시작된 불은 수 초 만에 전동차 6개 칸에 번졌다. 2003년 2월 18일자 연합뉴스 기사는 “스프링클러 시설이 없어 삽시간에 불길이 번져 객차에는 유독성 검은 연기가 가득 찼으며, 승객들의 고함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섞이는 아비규환 상태가 됐다”고 묘사했다.
당시 불이 빠르게 번졌던 이유는 열차 내 내장재가 대부분 가연 소재였기 때문이다. 2003년 3월 20일자 문화일보 기사에서는 “현재 국내 지하철의 경우, 전동차 내부에 화재가 발생하면 곧바로 독가스실로 변해버린다. 내장재나 마감재 모두 화재 시 치명적 유독가스를 내뿜는 물질들이기 때문”이라면서 “천장·벽·장판 등의 마감재는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바닥재는 염화비닐, 의자쿠션은 폴리우레탄폼”이라고 지적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도시 철도 차량 안전 기준에 관한 규칙 등이 개정돼 열차 내부에서는 불연성·난연성 재료를 쓰는 것이 의무화됐다. 스프링클러와 제연경계벽도 역내에 설치됐다. 김진철 마포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은 “현재 운행하는 열차는 불연재료가 많이 사용돼 옷 한두 벌만 불에 탔다”면서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 기관사와 일부 승객이 소화기로 자체 진화했다. 진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불이 꺼진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딱 보였던’ 비상 개폐 장치도 승객 탈출 열쇠

심지어 1080호 열차 기관사가 출입문을 개방한 뒤 마스터키를 뽑아 피신하는 바람에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 2003년 3월 21일 국민일보 기사는 “사고 직후 1080호 기관사가 피신하면서 전동차 운행 및 출입구 개폐를 작동시키는 ‘마스터컨트롤키’를 빼가 출입문이 닫히는 바람에 승객들이 대피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대구지하철 관계자에 따르면 마스터키를 뺄 경우 전력 공급이 차단돼 열렸던 출입문도 다시 닫히게 된다.
이번 사고에서 승객들은 객실 내 비상 통화 장치를 통해 기관사에게 사고 사실을 신속하게 알렸다. 연락을 받은 기관사 B 씨는 곧바로 관제실에 상황을 보고한 뒤 승객들에게 “5호차에 화재가 난 것 같으니 신속히 이동해 주시고 대피해 달라”는 내용의 안내 방송을 했다. 대구 참사 이후 승객이 비상 통화 장치를 사용하는 순간 그 내용은 관제실에도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이 시스템 덕분에 관제실은 뒤따라오는 열차를 곧바로 멈출 수 있었다.
대구 참사 당시 일부 승객들은 전력 공급 차단으로 인해 전동차에 갇혔고, 수동 개폐 장치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 2003년 2월 19일 한국경제 기사는 “대형 참사의 또 다른 원인은 승객들이 전동차의 문을 수동으로 열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수동 레버는 의자 밑에 있지만 승객들이 긴급 상황에 허둥대다가 문을 열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당시 소방당국은 “시신 상당수가 닫힌 열차 문 앞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반면 이번 사고에서 승객들은 좌석 아래쪽에 있는 비상 개폐 장치를 이용해 스스로 문을 열고 질서 있게 사고 현장을 벗어났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5호선 사고 발생 열차 출입문 64개 중 60%를 승객들이 직접 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긴박한 상황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할 것을 대비해, 서울교통공사는 비상개폐장치를 빨간색으로 칠해 눈에 띄게 만들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