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의원이 6월 18일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 서문시장을 시작으로 전국을 누비는 민심 투어를 시작했을 때 언론은 일제히 그가 당권 행보를 시작했다고 썼다. 안 의원은 6월 25일 고향인 부산을 찾은 데 이어 6월 27일에는 대전을 방문했다. 전국 곳곳을 찾아 여론을 청취하는 일정은 누가 봐도 전당대회에서의 당권 획득을 겨냥한 것으로 비쳐졌다.
7월 2일 예상을 깨는 소식이 전해졌다. 7월 1일 시작된 ‘송언석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당의 쇄신 작업을 진두지휘할 당 혁신위원장에 4선의 안철수 의원을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송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당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진할 혁신안을 마련하겠다”며 “그 첫 단계로 안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모신다”고 밝혔다.
전당대회 출마가 확실시됐던 안 의원의 내정 소식이 나오자 당 내부에선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안 의원은 전당대회 불출마라는 배수진부터 치고 나왔다. 그는 7월 2일 국회에서 기자들의 전당대회 출마에 대한 질문에 “(혁신위 활동 기간이) 최소한 60일은 보장돼야 한다. 그러면 신임 대표와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전대는 지금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이어 ‘전대 불출마로 이해하면 되느냐’는 질문에 “네.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재확인했다. 혁신위 활동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안 의원의 혁신위원장 내정은 송 원내대표가 몇 주 동안 공을 들인 결과라는 전언이다. 가장 시급한 현안인 수도권 민심 회복에 있어서 안 의원만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게 송 원내대표 측 설명이다. 또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대선 후보 교체 논란 등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았던 사안에서 안 의원만큼 자유로운 원내 인사를 찾기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이 선택으로 이끌었다.
송 원내대표가 삼고초려를 했어도 안 의원 본인 결단 없이는 혁신위원장 수락 결심은 어려웠다. 정가에선 안 의원이 혁신위원장 카드를 통해 경쟁자들에 대한 기선제압을 하면서 보수정당 주류로 올라서려는 정치적 결단을 한 것으로 본다. 국민의당에서 ‘굴러온 돌’인 안 의원이 전당대회라는 정상 경로가 아니라, 비상 경로를 택했다는 해석이다.
의사 출신 안 의원은 “응급 환자에게는 응급 수술이 필요하다”면서 응급실론을 내세우면서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당권만 노리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라 선당후사라는 헌신을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혁신위원장 내정 직후 그가 쏟아낸 언급만 보더라도 이 같은 배경을 읽을 수 있다.
그는 혁신위원장 인선 발표 직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민의힘은 지금 사망 선고 직전의 코마(의식 불명) 상태에 놓여 있다. 이번 대선 패배는 정당으로서 가장 큰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한 뒤 “코마 상태인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 내겠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대선 패배에도 혁신 논의가 지지부진한 당내 상황에 대해 “악성 종양이 이미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여서 집도가 필요한데도, 여전히 자연치유를 믿고 있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저 안철수가 메스를 들겠다”며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냉정히 평가하겠다. 보수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 국민과 다시 호흡하는 정당, 정상 정당의 처방전을 만들겠다”고 각오를 내세웠다.
다소 과격한 의료 용어를 사용하면서 안 의원이 본인의 장점인 의사 이미지를 살리는 동시에 유약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강철수’로 거듭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권력 공백 상태에서는 그 빈 공간을 채워달라는 정치적 욕구가 나오는데 그 한복판에 자신이 서 보수정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달래보겠다는 계획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전당대회를 통한 통상적 형태의 지도부 참여보다는 지금은 혁신의 시기이고 여기에서 실적을 낸 뒤 더 이상 이방인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당의 새로운 원톱으로 인정받아 보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라며 “예상과는 다른 의외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송언석 비대위’는 8월로 예상되는 전대 개최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유력 주자였던 안 의원이 혁신위로 방향을 틀면서 전당대회는 일단 맥 빠진 분위기가 역력하다. 더욱이 이번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당대표는 지방선거 공천권을 갖는데, 국민의힘의 내년 지방선거 승산이 매우 낮다는 비관적 예측까지 일제히 쏟아지고 있다. 전당대회 당권주자들의 움직임이 더딘 것도 이 때문이다.
당권 주자로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 대선 경선에서 마지막까지 김 전 후보와 경쟁했던 한동훈 전 대표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김 전 후보의 경우 대선 패배 책임이 있는 만큼 바로 당권 도전에 나서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주위에서 출마 권유가 잇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후보는 공식 석상에서 “당대표에 아무 욕심 없다”며 표면상 당권에 거리를 두는 모습이지만 대선 이후 당내 분란상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장면이 목격됐다는 점에서 “내심은 다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 개혁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면서 당권 도전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관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전 대표는 대선 후 당원 가입 운동을 펼치고 현안 관련 메시지를 쏟아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이어가는 한 전 대표는 6월 29일 유튜브 채널에 ‘한동훈의 고민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을 예고했다. 국민·당원과 소통을 늘리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읽힌다. 전당대회를 염두에 두고 지지층 확대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원내에서는 나경원 의원이 당권 도전에 나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 의원은 대여 투쟁의 선봉장으로 나서며 거대 여당을 상대해야 하는 수장의 면모를 부각하는 모습이다. 나 의원은 6월 27일부터 7월 3일까지 국회 본청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와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 반환을 촉구하는 농성을 벌였다.
안 의원이 빠지면서 이번 전당대회는 당내 각 계파 리더가 아닌, 대리인들이 출마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안 의원에 이어 한동훈 전 대표 역시 불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친한동훈계인 신지호 전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은 7월 1일 KBS라디오에 나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오는 8월 열릴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에 대해 “최근까지의 분위기로 봐서는 (출마) 신중론이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 결정을 한 건 아니지만’이란 단서를 달긴 했지만 한 전 대표의 불출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전당대회 당권 도전이라는 정공법이 아니라 혁신위원장 수용이라는 속공법을 택한 안철수 의원이 도박을 하고 있다는 정치권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이 띄운 혁신위원회가 성공한 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안 의원이 길을 잘못 선택했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그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당 위기 상황에서 출범시킨 혁신기구들은 대부분 용두사미라는 평가를 받으며 실질적인 혁신과 쇄신을 달성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 내부는 물론, 심지어 외부 위원장과 위원 영입으로 진정성을 홍보하며 거창하게 닻을 올렸지만, 당 지도부나 혁신 대상인 현역 의원 등 기득권의 반발에 동력을 잃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금과 똑같은 국면이었던 2017년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후 출범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류석춘 혁신위는 혁신의 칼을 휘둘렀지만 성공했다는 평을 듣지 못했다. 류석춘 혁신위는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친박(친박근혜)계를 향해 탈당을 제안했고, 이는 박 전 대통령의 출당 조치로 이어지는 등 바람을 일으켰으나 류 위원장의 각종 설화 논란과 함께 막을 내렸다.
이준석 대표 시절인 2022년 6월 출범한 국민의힘 최재형 혁신위도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 당 내부의 대체적인 평가다. 최재형 혁신위는 위기 극복을 위해 출범한 과거 혁신위와 달리 대선에 지방선거까지 연달아 승리한 뒤 출범한 혁신위라 주목받았지만, 이준석 전 대표 징계로 주호영·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 등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활동을 끝내게 됐다.
국민의힘이 2023년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당을 전면 쇄신하겠다며 닻을 올린 ‘인요한 혁신위’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42일 만에 활동을 마쳤다. 국민의힘 전직 중진 의원은 이렇게 점쳤다.
“안 의원이 위원장으로서 혁신을 하려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대선 후보 교체 파동 등 당내 계파 간 이해가 갈리는 사안을 대상으로 쾌도난마식으로 정리를 해나가야 할 텐데 당내 주류의 반발을 꺾기가 쉽지 않아 도박이라는 평이 나온다. 어려운 관문을 만났을 때 여러 차례 철수를 해왔던 기억을 뒤로하고 강철수로 변모하는 한편, 우호 여론을 등에 업고 의원들을 아우르는 기술까지 보여줘야 이번 판에서 보수정당 원톱으로 올라서는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