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상파는 다양한 방식으로 몸집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투자 비용을 아끼다 보니 신작 공급은 줄어들고 콘텐츠 질적 저하도 막기 어렵다. 여기에 요즘은 ‘재방송’으로 편성표를 채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재방송 편성이 지상파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궁여지책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지상파의 추락을 더욱 부추길 것이란 우려 섞인 분석도 나온다.

이 같은 시도를 반복하자 MBC 내부에서도 반발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지난 4월 MBC 드라마국 PD 등 53명은 ‘MBC 드라마본부의 동의 없는 ‘카지노’ 편성 강행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드라마 라인업은 드라마본부의 독단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협의 없는 일방적 통보도 중대한 문제지만 이 결정은 당초 제작 예정이던 드라마를 내년으로 미루는 방식으로, 올해 예산의 흑자를 인위적으로 달성하려는 의도이기에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렇게 재방송 편성된 ‘카지노’의 시청률이 꽤 준수하다는 것이다. 1, 2회 시청률은 각각 4.5%, 3.6%였다. 이는 동시간대 편성된 SBS 드라마 ‘우리영화’의 3.6%, 3.3%보다 높다. ‘우리영화’는 시청률 보증수표라 불리는 배우 남궁민이 주연을 맡은 신작이다. 이런 상황에 SBS는 당연히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다. 저조한 시청률을 질타하는 보도에 남궁민은 “5회까지 지켜봐달라”고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10부까지 방송된 현재 시청률은 여전히 3%대다. 게다가 ‘카지노’에도 밀리며 자존심을 구겼다.
그렇다면 MBC는 웃고 있을까. 눈앞의 성적은 흡족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왜일까? 지상파에서 최소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여 새로 만든 작품이 수년 전 공개된 재방송 드라마보다 선택받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상파라는 플랫폼의 몰락으로 읽히는 동시에 지상파 드라마의 퀄리티가 OTT 드라마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번 승부에서는 ‘MBC의 재방송’이 ‘SBS의 본방송’을 이겼지만, SBS가 똑같은 전략을 구사한다면 MBC 역시 굴욕적인 결과를 받을 수 있다.

한때 재방송은 케이블채널이나 종합편성채널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편성 시간대는 많은데 신규 프로그램을 제작할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사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틀거나, 다른 플랫폼에서 만든 콘텐츠를 저렴하게 구매해 편성표를 메우는 식이었다. 이때 지상파는 콘텐츠 공급자로서 이미 방송을 마친 콘텐츠를 팔며 쏠쏠한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정반대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광고 수입 등이 급감한 지상파는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솟은 드라마 만들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방송법상 각 영역별 편성 비율을 맞추기 위해 드라마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결국은 싼값에 구매해 편성할 수 있는 콘텐츠로 손이 가고, 그 결과 드라마 재탕 편성으로 귀결되는 상황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상황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당장의 적자는 줄일 수 있다지만 향후 지상파의 영향력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지상파에서 성장한 고급 인력들의 유출 역시 불가피하다. 그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줄 수도 없고, 지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빙’에 이어 ‘카지노’를 편성하는 자충수를 두고 방송가에서 “MBC가 독이 든 성배를 마셨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