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10년간으로만 좁혀봤을 때 국민의힘은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시 36세의 이준석 후보가 선출됐다. 헌정사에서 집권여당 또는 제1야당에서 30대가 정당 간판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내로라하는 중진들과의 대결이었다는 점에서 이준석 전 대표 승리는 국민의힘뿐 아니라 정치권 전반에 충격을 안겼다. 그는 일반국민 여론조사와 당원투표 결과를 합쳐 9만 3392표(전체 대비 43.8%)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나경원(7만 9151표, 37.1%) 주호영(2만 9883표, 14.0%) 조경태(5988표, 2.8%) 홍문표(4721표, 2.2%) 후보 순이었다.
이 전 대표는 반영 비율이 70%로 높아진 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만 37.4%로 나경원 의원(40.9%)에게 뒤졌다. 그러나 일반국민 여론조사의 압도적 승리(58.8%)에 힘입어 당권을 차지했다.
당시 이 전 대표가 출마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이 전 대표 본인조차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는 측근들 전언도 나왔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TK(대구·경북) 맹주 자격으로 나온 주호영 의원은 가소롭다는 듯 대놓고 이 전 대표를 때렸다. 그는 “에베레스트를 원정하려면 동네 뒷산만 다녀서는 안 되고,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 중간 산도 다녀보고 원정대장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정치적 경륜이 짧아 대선을 앞둔 당 대표에 적합하지 않다고 일갈한 것이다.
그러자 이 전 대표는 발끈하면서 “팔공산만 다니던 분들은 수락산과 북한산, 관악산 아래에서 치열하게 산에 도전하는 후배들 마음을 이해 못 합니다”라고 응수했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대구에서만 당선된 주 의원과 달리, 자신은 험지인 서울 노원에서 도전을 거듭해왔다는 것을 내세웠다.
당내에서 “발칙하다” “무례하다” “위아래도 모른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 전 대표는 당대표 후보 8명 중 5명을 가려내는 예비경선(컷오프)에서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선관위가 컷오프 때 후보별 득표율과 순위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 전 대표가 1위(41%)를 기록한 것으로 복수의 언론 취재 결과 확인됐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그때 선거결과로 인해 중진 의원들이 굉장히 쇼크를 먹었다”며 “이준석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순식간에 바람이 쌩 불어오더니 그 바람이 태풍으로 변신했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가 승리했던 2024년 7·23 전당대회 역시 이변이었다. 당시 한 전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가 ‘1호 당원’ 윤 전 대통령과 당의 주류 친윤의 강력한 저지를 뚫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경쟁자들은 한 대표의 총선 패배 책임론을 제기했고,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거론하며 ‘배신자 프레임’을 씌웠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과반을 훌쩍 뛰어넘는 62.74%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원희룡(18.85%) 나경원(14.58%) 등 중진들을 돌려세웠다.
시곗바늘을 좀 더 멀리 돌려보면 박근혜 정부 출범 2년 차에 열린 2014년 7·14 전당대회에서도 이변이 나왔다. 당시 비주류의 ‘구심점’이었던 김무성 전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됐다. ‘친박 핵심’ 서청원 전 의원의 박빙 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김 전 의원의 압도적 표차 승리였다. 선거인단 투표(70%)와 국민여론조사(30%)를 합쳐 표로 환산한 전체 유효투표 17만 8225표 중 김 전 의원은 5만 2706표를 얻어 3만 8293표를 얻은 서 전 의원을 1만 4400표차 이상 제쳤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 만에 치러진 2023년 3·8 전당대회에서 ‘친윤’을 등에 업었던 김기현 의원은 대세론을 만들어 당권을 거머쥐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대선 후보 단일화, 그리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까지 지낸 안철수 의원이 맹추격을 벌였지만 김기현 대세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김기현 체제’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24년 봄 총선을 불과 넉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김 의원은 2023년 12월 사퇴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에다 그 이후의 당 쇄신 작업조차 차질을 빚는 지리멸렬한 상황이 계속되자 김 의원은 버티지 못했다. 태생적 한계 탓에 용산의 눈치를 보고 쓴소리를 못 한다는 비판이 임기 내내 쏟아졌다.
2019년 자유한국당(옛 국민의힘) 2·27 전당대회에선 일찌감치 대세론을 형성한 황교안 전 총리가 승리했다. 정치초보였지만 50.0%라는 과반을 획득했고,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31.1%)을 큰 격차로 따돌렸다. 황 전 대표 역시 이듬해 총선 참패로 물러나야 했다. 본인이 서울 종로로 출마하는 과정에서 왔다갔다 행보를 보였고 공천 과정 역시 매끄럽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더불어민주당에 대참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총선 직후 사퇴했다.
2017년 전당대회 과정을 지켜봤던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2017년 대선 패배 직후 전당대회에서도 대선 패장 홍준표 대세론이 일어났고 홍 전 대구시장이 당권을 잡았다”며 “하지만 홍 전 시장도 그 이듬해 지방선거 대참패로 물러났는데 치열한 경쟁 없는 전당대회는 결국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는 징크스가 우리 당에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도 “김문수 대세론으로 전당대회를 치른다면 당의 미래는 없다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또 출마한 나머지 후보들 역시 지금의 국민의힘을 구해내기 어렵다는 비판도 크다”면서 “그럼에도 누가 되건, 정말 치열하게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 그래야 우리로부터 멀어진 국민들의 시선을 되찾아올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일단 대진표는 확정됐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비롯해 조경태 안철수 장동혁 주진우 의원 등 5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권에선 김 전 장관이 가장 앞서 달리는 것으로 평가한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도 김 전 장관 우세가 확인된다. 김문수 후보는 당심에서 앞서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후보들 중 인지도가 가장 높고, 당원이 가장 많이 분포돼 있는 TK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김 전 장관과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장동혁 의원이 다크호스로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찮다. 당 주류인 친윤계는 김 전 장관이 지난 대선 때 단일화를 약속하고도 오락가락했다는 점 때문에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친윤계가 김 전 장관이 아닌, 장 의원을 조직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친윤계가 분화 상태로 접어든 정황이 속속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 전 장관에 대한 견제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7월 2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대선 후보 교체 파문의 가장 큰 책임이 김문수 전 후보에게 있다며 전당대회 불출마를 요구하기도 했다.
앞서의 김 전 장관과 장 의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선택적 관계 정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에 비해 안철수 조경태 의원은 ‘절연’을 주장하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에선 둘을 ‘반길파’라고도 부른다.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의 입당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김문수 장동혁은 전 씨 입당에 찬성하고 있어 ‘친길파’로 통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놓고 갈리고 있는 판세가 전 씨를 통해 본격화하는 양상인 셈이다.
친길파가 반길파에 비해 유리한 지형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앞서 거론했던 ‘이변’도 배제하기 어렵다. 당을 겨누고 있는 특검 수사가 빨라질수록 친길파가 불리할 것이란 관측도 뒤를 잇는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대세론 얘기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안갯속이라는 게 더 정답에 가깝다”며 “민주당이 역대 가장 강력한 여당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전당대회에서 치열한 경쟁이 펼쳐져야 새 당대표가 더욱 응집된 힘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