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수의 측근들에 따르면 김문수 전 장관은 곧 열릴 전당대회에 당대표로 출마한다는 뜻을 굳혔다고 한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 선거관리위원회는 7월 14일 “전당대회를 8월 중순, 늦어도 하순까지는 연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밝힌 바 있다. 일정 확정 발표와 동시에 김 전 장관의 출마선언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장관은 당대표 도전 행보를 이미 시작했다. 김 전 장관은 그의 고향이자 국민의힘 최대 지지층인 대구를 연이어 찾았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당권 레이스 일환으로 바라본다. 김 전 장관은 7월 11일에 이어 16일에도 대구를 방문했다.
김 전 장관은 7월 16일 천주교 대구대교구를 찾아 조환길 대주교를 예방하고, 지역 언론인들과의 오찬 및 간담회 자리에 참석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보수 정치인들의 단골 방문지인 서문시장에 가 상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이후 대구 수성구 한영아트센터에서 ‘대한민국 위기와 대구 경북의 선택’을 주제로 강연을 펼치는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이날 대구에서의 기자간담회에서 김 전 장관은 당대표 출마 여부에 대해 “전당대회 날짜가 결정되는 것을 보고 판단하겠다”며 확답을 하지 않았지만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의 광폭 행보에서는 전당대회에서 최대한 표를 많이 확보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지는 메시지 발신도 곁들여지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당의 주류 입장을 상당 부분 품으면서도 개혁파의 혁신 목소리도 함께 내는 ‘안정 속 개혁’을 강조했다.
김 전 장관은 7월 15일 서울 여의도 한 중식당에서 국민의힘 서울지역 당협위원장 10여 명과 오찬을 한 후 기자들과 만나 “대표 출마를 바라는 목소리가 있었다”면서 당대표 출마 의사를 다시 내비친 뒤 당의 주류 세력인 친윤과 주파수를 맞췄다. 당 혁신위원회의 당헌·당규 사죄문 명시 추진에 대해 “저는 유세 과정에서 큰절로 계속 사과했다”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7월 16일 대구 방문에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에 분명하게 선을 긋는 태도를 보였다. 김 전 장관은 최근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윤 전 대통령과의 단절’을 1호 안건으로 올린 것에 대해 “저는 지금 일개 당원으로서 그것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잘못된 것은 단절해야 되지만 또 어떤 부분에선 잘한 것이 있는지 이런 것을 제대로 분류해서 판단해야지, ‘무조건 윤 전 대통령은 단절’ ‘무조건 윤석열 어게인’ 이건 어느 쪽도 아니라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윤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한국계 미국인 모스 탄 미국 리버티대 교수와 만남을 가지려고 했으나, 내란특검팀이 가족과 변호인 이외의 접견을 금지하면서 접견이 불발될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을 두고는 “아직까지 형이 확정되지 않았는데 (접견을) 불허하는 것은 인권 침해냐 아니냐 여러 가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당 일각의 기류와는 다른 메시지를 낸 것이다.
김 전 장관과 가깝고 자주 소통하다는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당대표 출마 확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출마할 것이고 수도권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지지세가 워낙 센 터라 무난하게 당권을 거머쥘 것”이라며 “강단이 있고 소신이 분명해 위기에 처한 국민의힘을 속도감 있게 개혁해나가면서 보수를 제대로 재건할 걸로 본다”고 했다.

김문수 전 장관 출마 명분에는 국민의힘이 걸어온 역사적 경로가 깔려 있다. 김 전 장관 측은 2017년 대선 패배 직후 당대표가 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 이보다 20년 전인 1997년 있었던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이듬해 제1야당의 수장으로 재기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사례를 거론한다.
낙선 후 정계를 떠나거나 한동안 은인자중하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지만 국민의힘 대선 패장들은 별다른 정치적 공백기를 갖지 않고 부활했다. 김 전 장관도 이 선행 사례를 소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회창 전 총재의 경우 1997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1.6%포인트 차로 분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시장, 종로 보궐선거, 전당대회 등 다양한 복귀 시나리오가 주변에서 떠돌았다. 당내에서 존재감을 유지하던 이 전 총재는 1998년 8월 전당대회에서 55.7%의 과반 득표로 신임 총재로 선출돼 2002년까지 당권을 지키며 차기 대선에 재도전할 수 있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2017년 5·9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곧장 당권에 도전, 당대표가 됐다. 대선에서 패자가 된 뒤 두 달 만인 그해 7월 3일 전당대회에서 제1야당 대표로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홍 전 시장은 당시 일찌감치 대세론을 만들었고 경쟁자인 신상진 원유철 후보를 누르고 압도적 표차로 당권을 거머쥐었다. 선거인단 투표와 일반 국민 대상 여론조사를 합산한 결과, 65.7%의 득표율로 홍 전 시장이 1위에 올랐다. 홍 전 시장은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72.7%, 여론조사에서는 49.4%의 지지를 각각 얻었다.
2017년 현역 의원이었던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대선 직후에는 패배 충격으로 당의 혼란이 굉장히 크다”며 “쇄신만 앞세운 급격한 변화는 당을 깨뜨릴 수 있는 만큼 우리 당 역사를 볼 때 당을 가장 잘 아는 대선 후보가 당을 추스르는 역할을 맡아 왔다”고 했다.

김문수 전 장관 대세론을 무너뜨릴 수 있는 후보는 한동훈 전 대표가 꼽힌다. 하지만 한 전 대표 출마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한 전 대표 측근들은 이번에 당대표로 나서는 게 큰 실익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한 전 대표 역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신지호 국민의힘 전 전략기획부총장은 7월 14일 동아일보 유튜브 ‘정치를 부탁해’에 출연, 한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를 두고 ‘신중론’을 강하게 피력했다. 신 전 부총장은 “한동훈만 나오면 닥치고 반 한동훈 분위기가 형성되는 게 현실”이라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 집회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밉지만 한동훈 (전 대표) 그 놈이 더 밉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한다”며 “진영 논리보다 한 전 대표에 대한 혐오가 증오가 더 상위 가치인 것”이라고 했다. 또 한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나오면 ‘반탄(탄핵 반대)’파와 ‘찬탄(탄핵 찬성)’파가 다시 맞붙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한 전 대표를 도와주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보면 7 대 3, 8 대 2 정도로 안 나갔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 전 대표 출마를 말리는 친한계는 한 전 대표가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했다가 패한다면 정치적 재기가 쉽지 않다고 본다. 설사 당대표가 된다 하더라도 실익이 없다는 ‘당대표 무용론’도 내세운다. 내년 지방선거를 책임져야 하는데 선거 전망이 밝지 않아 또다시 중도 사퇴가 점쳐진다는 것이다.
친한계로 인식되는 조경태 의원이 이미 당대표 출사표를 던진 점도 한 전 대표의 불출마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대목이다. 조 의원이 한 전 대표를 대신해 새 지도부에서 직접적 역할을 맡고 한 전 대표는 한 박자 쉬어간다는 시나리오다.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을 맡았다가 당 지도부의 인적 쇄신 거부와 합의 없는 혁신위원 인선에 반발하며 사퇴한 뒤 당대표 도전으로 전격 유턴한 것도 ‘한동훈 불출마’와 연결돼 있다는 당 내부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안 의원으로부터 인적 쇄신 대상으로 지목됐던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7월 8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급작스럽게 벌어진 ‘철수 작전’의 배경은 이미 여러 경로에서 드러나고 있다”며 “안 의원 주변에서 ‘한동훈 전 대표의 출마 가능성이 낮다’는 기대를 심어주며 안 의원의 욕심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또 “소위 ‘쌍권’을 표적 삼아 인적 청산을 외치면 당대표 당선에 유리하다는 무책임한 제안이 이어졌고 안 의원은 결국 자리 욕심에 매몰돼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했다.
김문수 대세론을 흔들 수 있는 또 하나의 변수는 당 주류인 친윤의 스탠스다. 친윤계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김 전 장관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후보 단일화를 앞두고 말을 바꿨다는 입장이다. 김 전 장관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의 성격을 볼 때 좌충우돌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어 김 전 장관 불가론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친윤계가 ‘김문수 대항마’ 카드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안철수 의원, 장성민 전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 양향자 전 의원이 일찌감치 당권 도전 의사를 밝혔지만 김 전 장관을 상대하기는 버거울 것이란 게 공통된 전망이다.
친윤계가 장동혁 의원을 밀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지만 인지도 면에서 김 전 장관을 능가하느냐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나경원 의원은 “김문수 나오면 안 나간다”는 뜻을 측근들에게 밝힌 것으로 전해져 김문수 대세론에 힘을 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보수정당의 움직임은 전통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은데 앞선 선례가 대부분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의 당권 획득이었다”며 “여전히 연대감이 큰 주류 세력인 친윤이 정서적으로 꺼리는 김문수 전 장관을 견제할 수 있는 대항마를 구하기 어려운데다 자칫 엉뚱한 후보를 내세웠다가 한 전 대표에게 어부지리를 허용할 수 있다는 걱정도 하고 있어 김문수 대세론이 꽤 강하게 형성된 형편”이라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