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과 같은 날 진행된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선 조선·원자력·항공·LNG·핵심광물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 모두 11건의 계약·MOU가 체결되는 성과가 있었다. 한국 기업들의 1500억 달러(약 207조 원) 규모 대미 투자 계획이 회담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특유의 ‘거래 외교’ 방식에 불확실성이 커, 언제든 예상 못한 청구서가 날아들 우려도 적지 않다. 회담에서 언급되지 않은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 개방 문제 등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한미동맹 현대화 이슈도 앞으로 양국이 다를 주요 의제로서 긴장감이 실리고 있다.
한일정상회담은 셔틀외교 복원과 17년 만의 공동합의문 채택 등 상징적 성과를 냈다. 저출산·고령화·재난안전 등 사회적 공동과제에 대한 협의체 구성도 합의했다.
국제관계 전문가로서 국립외교원장을 역임한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은 지난 28일 ‘일요신문i’와 인터뷰에서 이번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합의문 발표는 없었지만 협력의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일정상회담에 대해선 “과거사와 한일 협력을 분리해 접근한 것 같다”며 “신뢰 기반을 만든 것에선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한미정상회담 후 양국 기업 간 공동펀드 조성이나 MOU 체결 소식이 발표됐다. 이를 두고 ‘한국의 기술·자본이 미국 산업 재건에 투입되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외교가에선 협상을 ‘51 대 49의 예술’이라고 표현한다.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하나하나 따져보면 얻은 게 없는 것 같지만, 몽둥이 들고 협박하는 것 같은 트럼프 대통령식 협상을 고려하면 한미정상회담은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기엔 ‘무엇을 받아냈느냐’보다 ‘얼마나 덜 빼앗겼느냐’가 협상 성패의 기준이 된다. 합의문 발표도 마찬가지다. 합의문은 우리가 얻을 게 있을 땐 명문화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미국의 이익이 더 클 땐 나중에 빠져나갈 여지를 생각해 합의문이 없는 편이 더 낫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합의문에 얽매이기보다 필요할 때 더 요구할 수 있는 여지를 두려고 하는 것 같다.”
—국익 측면에서 한미정상회담으로 우리가 실질적으로 얻은 부분이 있다는 것인가.
“협력의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의미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이 ‘미국의 피를 빨았다. 이번에는 우리가 피를 빨 차례다’라고 표현한다. 앞으로 중요한 건 미국과 협력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트럼프식 ‘거래 외교’는 안보와 통상을 맞바꾸는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식 협상 방식 속에서 한국 정부가 어떤 대응 전략을 취할 수 있다고 보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안보 우산’을 (전 세계가) 무임승차하듯 이용했다며 ‘돈을 내놔라’한다. 여기서 요구한 돈이 관세(통상)다. 안보를 보면 △분담금 △국방비 △동맹 현대화 등 3가지를 두고 미국의 압박이 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는 분담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분담금을 두고 ‘돈을 내면 주한미군을 둘 것이고 안 그러면 빠지겠다’ 이런 방식이다. 우리 국가안보실은 통상과 안보를 묶는 ‘패키지딜’을 하겠다고 이야기해왔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에서 좀 더 주면 다른 데서 봐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본적인 생각이 깔려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과 안보를 분리하고 있다. 미국은 둘 다 제대로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통상과 안보를 적절히 분리하면서도 일정 부분 미국을 달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대미 투자가 누적될 경우 산업 경쟁력이나 무역구조가 ‘미국 편향’으로 재편될 우려는 없을지.
“우려가 있다. 대미 투자에서 우리가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관세를 피하기 위해 우리 기업의 현지 투자가 진행되는 건 맞지만, 미국의 속도에 우리가 모두 맞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모든 건 트럼프 대통령의 작전이다. 우리가 여기서 너무 미국 속도에만 맞추면 추후 미국으로의 일자리 쏠림 문제나 기술 유출 위험도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이 요구하니 곧바로 응한다’는 식의 속도전에 휩쓸려선 안 된다.”

“불가능한 이야기다. 미국은 전 세계 128개 군사기지를 운영하고 있지만 단 한 곳의 부지도 직접 소유하고 있지 않다. 영토는 주권의 핵심으로 매각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같이 발언한 이유를 추측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임차료를 내기 싫다’는 부동산업자식 발상을 했을 가능성은 있다. 즉 일본·독일처럼 한국도 주한미군 기지 사용료를 받고 있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파나마·그린란드처럼 실제로 영토를 사고 싶다는 욕망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주한미군 부지 소유권 언급을 우리가 먼저 논의 테이블에 올릴 필요는 없다.”
—이번 한미정상회담 주요 의제 중 하나였던 한미동맹 현대화에 대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나아가 중국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는데.
“이번 회담에서 가장 우려됐던 부분이 바로 ‘한미동맹 현대화’ 논의였다. 이는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언급됐던 ‘전략적 유연성’의 연장선이다. 주한미군의 유연성을 가해 동북아 전체 지역을 지키는 군대로 유연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숨은 뜻은 중국 겨냥이다. 주한미군은 북한 억제를 위한 주둔이었는데 이제는 중국 견제를 위해 대만 유사시 활용하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한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화’를 절대 수용해선 안 된다고 본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표현하며 북한 문제를 다시 한미 의제로 끌어왔다. 이러한 외교적 설득 전략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고 보는지.
“효과가 있었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21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을 만났을 때, 한미정상회담 의제는 △관세 안정화 △동맹 현대화 △미래 협력으로 정리돼 있었다. 당초 세 번째 항목은 (미래 협력이 아닌) 북한 문제였다. 하지만 루비오 장관이 이를 다루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아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반중·반북 성향을 갖고 있어 북한 문제를 대화보다 압박 대상으로 보려는 인물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과 친하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왔다. 결국 이 대통령이 트럼프를 ‘피스메이커’로 띄우면서 북한 문제를 한미 의제에 올렸고, 이를 통해 루비오 장관 등 강경파의 요구를 일정 부분 잠재울 수 있었다. 우리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반중·반북 진영의 압박을 누그러뜨린 셈이다. 다만 북한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앞으로 중국 견제와 연계돼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한일 문제는 남북 문제와 구조가 유사하다. 북한에는 비핵화가, 한일에는 과거사가 있다. 이 같은 과제를 협상 과정에서 ‘입구에 두느냐, 출구에 두느냐’ 접근 방식의 차이다. 입구에 둘 경우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논의도 진전될 수 없지만, 출구에 두면 일단 협력을 시작한 뒤 나중에 과거사를 다루겠다는 의미다. 이번 회담은 과거사를 출구에 둔 셈이다. 한국사회 정서상 즉각적인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정부는 일본 내 정치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살아남아야 이후 과거사 문제도 풀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시바 총리는 자민당 내 소수파이지만 비교적 개혁적 인물이다. 만약 그가 선거에서 떨어지고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나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같은 우익 성향 인물이 총리가 된다면 한일관계는 교착 상태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국내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이시바 총리를 ‘살려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외교에 유리하다고 본 듯하다. 이시바 총리가 9월 선거에서 살아 남고 정치적 기반을 다지게 되면, 이후 한일정상회담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지금보다 더 진전된 수준에서 다룰 여지가 커질 것이다.”
—한일정상회담이 실용외교에 방점을 찍은 접근이 장기적으로 한일관계의 불신을 키우지는 않을지.
“불신이 사라지기는 어렵다. 독도, 신사 참배 문제 등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일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사와 실용 협력을 분리해 접근하고 있다. 과거사는 분명히 따지고, 협력은 협력대로 이어가는 방식이다.”
—한국과 일본은 외교·안보 현안 외 저출산·고령화, 재난안전 등 사회·경제 공통 과제 협력에도 합의했다. 이러한 협력이 독자적 동력을 가질 수 있을지.
“저출산·고령화, 수도권 집중, 재난안전 등은 양국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다. 이런 협력은 민감한 안보 현안과는 달리 장기적이고 독립적인 동력이 될 수 있다. 신뢰를 쌓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한일 관계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레드라인’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레드라인은 분명하다. 일본의 35년 식민지 지배와 강제성에 대한 불복·사과 요구는 결코 양보할 수 없다. 이 선을 지키는 것이 한국 외교의 최소 조건이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