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에 반대하던 국민의힘과 재계에선 성토와 불만이 쏟아졌다. 일요신문은 9월 4일 노란봉투법 입법을 주도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법안 통과 과정, 향후 과제 등을 물었다.

“IMF를 거치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사회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비정규직 이슈가 한국 사회의 주요한 화두로 제기됐다. 그때부터 비정규직 문제라든지 노동권의 형해화 문제 등이 제기됐다. 심지어 손해배상 폭탄이라고까지 이야기할 정도로 극악한 손해배상 청구로 인해서 노동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굉장한 피해를 보았다. 극단적 선택도 하고, 가정이 파탄 나기도 했다. 재계에서도 ‘과한 면이 좀 있다’고 자인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이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문제를 손 봐야 하겠다는 인식이 자리 잡혔다. 개인적으로도 2000년대 초반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현장에서 근무했다. 이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목소리를 냈다. 20년이 좀 넘었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까지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에서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있었다. 1년 반 이상을 로펌 사무실이 아니라 거리에서 살다시피 했다.”
—하청업체 노동자 시절에 부당한 일을 겪은 건가.
“하청 노동자들은 인격적인 모독과 하류 인간 취급을 받았다.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2000년대 초반에는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등이 (기업의) 손해배상 가압류 문제를 폭로하면서 유서를 남기고 돌아가셨다. 제가 현장에 있었던 시기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됐다. 이런 열악한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구해야 하는데 통로 자체가 막혀 있었다. 하청업체 사장들은 ‘우리는 힘이 없고, 돈이 없고, 우리하고 대화하고 교섭해 봐야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원청에 가면 ‘당신들은 우리하고 근로계약 체결 대상이 아닌데 왜 우리한테 요구하냐’고 한다. 중간에 갈 길 없는 미아 신세가 된 꼴이었다. 심지어 국회에서 토론회를 하는데, 20년 전 토론회 주제가 (20년째) 똑같은 내용이었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 사태다. 그 이슈가 한국 사회에 울림을 줬다. 당시 (유최안 씨가) 0.3평 감옥을 만들고 직접 들어가서 51일 동안 투쟁을 했다. 그분은 국민한테 죄송하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을 절절하게 호소했다. 그러고 나서 여론조사 기관에서 이례적으로 노동 이슈를 진행했는데, 원청 사용자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30% 이상 높게 나왔다. 그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20여 년 동안 우리가 제기했던 문제가 드디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가는 것 아니냐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큰 성과물이 없었다. 그래서 시민사회에 모이자고 제안서를 돌렸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다.”
—원내에 들어오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2024년) 노란봉투법이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고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를 넘어서 본회의까지 통과됐다. 그런데 거부권 한 방으로 무산돼 버렸다. 길게 보면 20년의 싸움이 윤석열의 무도한 거부권 행사로 한 번에 물거품이 됐다. 무력해지더라. 그때 인재 영입 제안을 받았다. 당시 여야 가리지 않고 설명하고 설득했다. 의원실 문이 닳도록 찾아다녔다. 이때 법안이 발의되고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 그리고 거부권 이후 재의결까지 1년의 사이클을 다 봤다. 국회에 들어가서 제대로 해볼까 하는 생각에 (영입 제안을) 수락했다.”
—당시 이재명 의원도 관심을 가졌나.
“그랬다. 대선 토론회 때 ‘이거 해야 됩니다’라고 이야기해 버렸다. ‘국제 기준을 안 따라가는 방식으로 우리가 기업 경영을 해야 하는 거냐, 한국의 경제 수준이나 기업 경영 수준이 반석에 올랐고 선진국 대열에 올랐는데 왜 노동기준만 이렇게 동떨어져 가야 하는 거냐’라고 했다. 저는 이 말이 핵심이라고 본다.”
—국민의힘과의 협상 과정은 어땠나.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만나고, 대한상의도 찾아가고, 경제 6단체도 만났다. 환노위 법안 소위 시작할 때는 김형동 국민의힘 간사한테 말했다. 오늘 정말 밤을 새워서라도 접점을 찾아봅시다. 한 발씩 양보하면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분명히 토론하면 접점 찾아진다. 제 첫 발언이었다. 실제로 그날 오전 내내 토론해서 3조 합의점을 찾았다.”
—야당과 재계는 일방통행이라고 주장한다.
“합의된 3조는 재계나 국민의힘이 이야기 안 한다. 2조는 국민의힘이 다음에 처리하자고 했다. 분리 처리론을 주장했다. 그래서 저는 ‘3조처럼 치열하게 토론해보자. 왜 논의 자체를 거부하냐. 하다 보면 접점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계속 분리 처리론 주장만 하면서 퇴장했다. 논의 자체를 거부하던 국민의힘이 전체회의에 와서 일방적 처리, 강행 처리 이야기를 한 것이다. 심지어 제가 답답해서 손경식 회장한테 전화까지 했다. 3조 합의 때처럼 국민의힘하고 소통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손 회장이) 전화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상황들에 대해서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국민의힘은 안 움직였다.”
—왜 2조는 합의가 안 된 건가.
“2조에서 문제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사용자와 노동쟁의 범위다. 재계 관계자들과 이야기 나눠보면, ‘사용자 정의 개정은 대세인 것 같다. 우리도 자포자기했다’는 식의 이야기까지 했다. 이미 중앙노동위원회, 법원, 학계 등 모든 유권해석 기관들이 이미 현행 노조법의 사용자 정의를 노란봉투법의 것처럼 보고 있다. 그 해석을 명문화하는 것이 노란봉투법이다. 사용자 정의 확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부정확한 말이다.”
“(3조의) 개별 책임 조항을 연대 책임 조항으로 해야 한다는 재계의 요구가 컸다. 그 요구를 수용했다. 노동계 처지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조항을 뺏겼고, 민주당은 2024년에 통과시킨 법안에서 한발 물러나 재계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그러면 재계도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2조의 경우 사용자 범위는 이미 (노란봉투법처럼) 법 해석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면 남는 것은 노동 쟁의다. 그런데 이것도 물러달라고 하면 완전히 재계 입장으로 가자는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나.”

“법안 논의 과정을 왜곡하지 말고, 국민을 선동하지 말고, 이 법안의 의미와 예상되는 상황들을 정확하게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5일제 도입 때 경제 5단체가 중앙 일간지 1면 광고를 냈다. ‘삶의 질을 높이려다 삶의 터전을 잃습니다’라고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망하고, 다 해외로 빠져나간다고 했다. 익숙한 레퍼토리 아닌가. 2024년 경제 6단체는 1면 광고를 실었다. 기업 경영 망하고 해외로 다 유출된다고 했다. 주 5일제 통과 때 기업 경영 망했나. 해외로 유출됐나. 돌이켜 보면 악선전을 한 것이다. 올바른 법 개정 논의를 하려면 경제단체나 책임 있는 정당에서 그런 방식으로 호도하면 안 된다.”
—원청이 수백 개 하청과 교섭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있다.
“작년 국회 노동포럼 출범식을 하면서 손경식 회장님을 모셨다. 그때 경총 관계자를 붙잡고 물어봤다. 교섭이 난발되고, 하청업체별로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렇진 않다고 하더라. 왜 그렇게 주장을 하냐고 했다. 단체 입장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더라. 앞으로도 뜨거운 의제가 많다. 그런데 계속 왜곡된 프레임을 씌워서 하면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번에도 2조에 대해서 국민의힘도 재계도 대안을 안 내다보니 민주당이 책임 있게 결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면 더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
—후속 조치는 어떻게 되고 있나.
“고용노동부가 현장 지원단을 꾸렸다.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추진한다. 첫째, 노동계와 재계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현장 의견을 들으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한다. 둘째, 개정안 내용 설명도 하고 컨설팅도 하고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 셋째, 법 시행 과정에서 노사 양측의 불법적 행태를 모니터링하고 시정한다. 노사 조정 절차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담당한다. 중노위도 조정 판단 기준 등에 대해 노동부와 협의하면서 준비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6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재계든 노동계든 시행을 전제로 해서 준비하고 대비하는 시간으로 6개월을 보냈으면 좋겠다. 국민의힘도 노사에게, 특히 재계에 헛된 희망 고문하지 말아야 한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