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대표는 전당대회 때 허약하고 소극적인 웰빙정당으로 불리는 국민의힘을 환골탈태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세우면서 “(여당과) 싸워 반드시 이기겠다”고 핏대를 세웠다. 이에 당원들은 환호했고, 정치 경력이 1.5선(21대 국회 보궐선거 당선)에 불과한 장 대표를 제1야당 조타실에 앉혔다.
장 대표는 전당대회 결선에서 당선된 직후인 8월 2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집안 내부를 향한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그는 “단일대오로 뭉쳐서 제대로 싸우는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원내 107명이 하나로 뭉쳐가는 것이 최선이지만, 단일대오에 합류하지 못하는 분들과 당을 분열로 몰고 가는 분들에 대해선 결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 탄핵을 찬성했던 ‘찬탄파’를 겨냥해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보는 더불어민주당 주장에 동조하지 말라고 때리면서, 향후 당론을 지속해서 어길 경우 징계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8월 28일 인천국제공항공사 항공교육원에서 열린 국회의원 연찬회에선 인사말을 통해 “이번 연찬회가 이재명 정권과 싸우기 위해 전쟁터로 나가는 출정식이 되면 좋겠다. 저도 죽기를 각오하고 맨 앞에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초반 스탠스만 보면 국민의힘에 강력한 ‘장풍(張風)’이 몰아닥칠 것 같았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강경책뿐 아니라 유화책을 동반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당 핵심 요직인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 인선이 대표적 사례다. 중도 성향 인사를 중용, 통합 행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평가다.
국민의힘은 9월 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희용 사무총장을 임명했다. 같은날 오후 의원총회에서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보임했다. 계파색이 옅은 김도읍 의원을 발탁한 것 자체가 통합 의지를 보여준 것이란 분석이다. 김 의원은 친윤계와 친한계 간 계파 갈등 때 균형을 유지했다는 게 당내 인사들의 한목소리다.
장 대표는 9월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107명이 하나로 뭉쳐 싸우는 게 우선”이라며 “먹기 편한 초밥을 만들기보다 조금 큰 주먹밥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인선하겠다”고 말했다. ‘주먹밥’ 비유는 국민의힘 의원 전원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뒤 대여 투쟁에 나서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장 대표에 대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던 젊은 소장파 의원들까지 당직 인선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줬다. “예상 밖으로 잘한 인선(김용태 의원)” “극우 색채를 중화하려는 노력이 보인 인선(김재섭 의원)” 등의 평가가 나왔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직접 만나보면 장 대표가 초강성으로 보이지는 않고 대화와 타협형 정치인으로 인식된다”며 “선거 전략상 싸움닭 이미지를 보인 것이고 당선 이후에는 유연한 이미지와 통합 메시지를 곁들여야 당 내부 뿐만 아니라 보수 전체 지형을 장악해 일극체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몸 푸는 홍준표 한동훈 나경원
장 대표가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하면서 입지를 다지려 하는 가운데 보수 진영에선 유력 정치인들이 몸 풀기에 나섰다. 정치권 일각에선 장 대표를 견제하는 포석이 깔려 있다고 본다. ‘초보 대표’의 일극 체제가 구축되기 이전에 당내 지분을 확보해놓으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국민의힘 핵심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TK) 적자로 통하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선봉에 섰다. 그는 9월 3일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재판특별부 설치를 두고 “과유불급”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를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홍 전 시장은 “사법부 독립은 어떤 경우라도 지켜져야 한다. 내란을 징치하겠다고 하면서 똑같이 헌법질서를 짓밟는 것은 크게 잘못하는 것”이라며 “이재명 총통제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홍 전 시장은 9월 6일엔 자신의 유튜브 채널 ‘TV 홍카콜라’ 운영을 재개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직후인 8월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TV 홍카콜라 복귀 의사를 밝힌 그는 “비록 사기 경선 2번을 당하고 그 울분에 크게 실망하여 당과 정계를 떠났지만 제가 나머지 인생을 대한민국에 보은할 길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숙고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며 “곧 TV 홍카콜라를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탈락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한 홍 전 시장은 지난 5월 2일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는 영상을 끝으로 유튜브 활동을 중단했었다. 홍 전 시장 대선 경선 캠프에서 대변인을 맡은 바 있는 이성배 전 MBC 아나운서가 TV 홍카콜라에 합류하는데 유튜브 몸집 키우기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홍 전 시장이 본격적인 정치 활동 재개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친한계인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9월 2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 나와 한 전 대표 향후 행보와 관련, “한 전 대표가 9월, 10월쯤 본인의 정치적 일정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며 “이를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 ‘보수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해야 된다’는 조언을 듣고 있다”고 했다.
5선의 나경원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로 나서면서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유상범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8월 28일 인천국제공항공사 항공교육원에서 열린 의원 연찬회 원내 보고에서 나 의원의 간사 내정 사실을 알리면서 “어떻게 5선에, 원내대표를 지낸 분이 간사를 하느냐고 했는데 저희가 이젠 틀을 좀 깨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고 그 틀을 깨는 시작을 나 전 원내대표께서 해주셨다”며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여야가 가장 뜨겁게 격돌하게 되는 법사위의 위원장을 민주당 6선 추미애 의원이 맡은 상황에서 같은 다선 여성 의원인 나 의원을 간사로 내세워 대여 투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게 국민의힘 생각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설마’라고 얘기했지만 나 의원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추·나 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대로 간사 선임을 둘러싸고 추 위원장과 나 의원은 충돌했다. 간사 선임안이 법사위에 9월 2일 상정되지 않자 이날 추 위원장과 나 의원은 거세게 맞붙었고 법사위 여야 의원들도 이에 가세하면서 법사위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국민의힘 한 전직 중진 의원은 “정계은퇴를 번복한 뒤 일흔을 훌쩍 넘겨 정계에 복귀해 대권까지 거머쥔 김대중 전 대통령 사례를 보면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무시할 존재가 아니고 그보다 훨씬 젊은 나경원 의원이나 한동훈 전 대표도 여전히 미래가 있는 정치인”이라며 “장동혁 대표 앞길에 마냥 꽃길이 펼쳐지리라 단언할 수 없는 이유이며 3김 시대 이후 정치권은 다극체제가 일상화했다”고 했다.

장 대표로선 ‘전당대회 청구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장 대표는 전당대회 기간 강경한 목소리로 당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결선에 올랐던 김문수 전 장관이 통합을 외치자 당심은 급격히 장 대표에게 쏠렸고, 이는 이변을 낳았다.
장 대표의 ‘전투력’을 높이 샀던 당원들의 청구서가 쇄도할 경우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당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김민수 최고위원을 필두로 하는 강성 지도부 압박도 점점 거세지는 상황이다. 김 최고위원은 최근 “탄핵이 정당하지 않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기도 했다.
장 대표가 취임 초반 일찌감치 온건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이런 강성 목소리가 담긴 투쟁 청구서에 대한 사전 탕감 시도라는 전언도 나온다.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 씨에 대해 “당직 말고 외부에서 의병 역할을 맡기자”는 취지로 장 대표가 얘기한 것도 강성 노선만으로는 일극체제 달성이 힘들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근거로 꼽힌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전당대회 때의 강경 기조로만 당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후보 때와 대표는 엄연히 다르다. 장 대표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이라면서 “아직 50대인 장 대표는 아마 더 큰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극우 세력으로 분류되는 진영과는 점차 선을 그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