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예선 일정을 마치고 '완전체'로 나선 첫 친선전이었던 지난 9월 미국 원정은 오랜만에 대표팀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미국과 멕시코 모두 강호로 분류되고, 대표팀에 비해 피파랭킹 역시 높은 국가였다. 대표팀은 이들을 상대로 각각 2골씩을 넣으며 1승 1무를 기록했다.
이에 10월 A매치를 앞두고 대표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대표팀은 첫 상대 브라질에게 0 대 5 대패를 당했다. 최근 감독 교체를 단행하는 등 부침이 이어지던 브라질이었기에 아쉬움은 더했다.
과거의 위용을 잃었다지만 브라질은 분명 부담스러운 상대다. 2019년부터 지난 세 번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모두 3실점 이상을 기록하며 완패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번 평가전은 가장 점수 격차가 큰 경기였기에 비판이 뒤따랐다.
스코어에서만 밀린 것이 아니었다. 대표팀은 최전방의 손흥민까지 하프라인 아래쪽에 위치하는 등 내려앉는 수비로 대응에 나섰다. 그럼에도 전반 15분을 넘기지 못하고 빠르게 실점을 내줬다. 브라질의 날카로운 패스와 움직임은 대표팀 수비진을 손쉽게 뚫어냈다. 이에 더해 수비진에서 나온 실수가 어려움을 자초하기도 했다.
공격에서도 답답함을 자아냈다. 수비 라인을 내려 공격 시작점이 낮았기에 최전방까지 연결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상대의 적극적인 압박에 대응하지도 못했다. 5골을 내주면서 이렇다 할 공격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이강인이 이따금씩 2~3명의 수비수를 벗겨내며 분투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파라과이와의 일전 또한 좋은 경기력은 아니었다. 전반에 터진 첫 골은 상대 실수에 의해 나온 행운의 골이었다. 브라질전과 달리 대표팀이 공을 잡고 있는 시간이 길었으나 날카로움이 부족했다. 후반에는 상대 공세를 억제하지 못했다. 수비진에서 다시 큰 실수가 나왔으나 파라과이가 이를 골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행운도 따랐다.
두 경기 결과는 1승 1패였으나 내용면에서는 낙제점을 받았다. 원정을 떠났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던 9월에 비해서도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1개월 전의 호평이 무색해진 것이다.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 예선 일정이 끝난 이후 지속적으로 중앙 수비수 3명을 배치하는 백3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첫 시도는 지난 7월 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이었다. 당시 국내파를 위주로 구성된 팀이었기에 '일시적인 실험'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홍 감독은 이후로도 유사한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유럽파가 소집된 이후로도 중앙 수비수 세 명을 배치하고 최전방에는 전형적인 중앙 공격수 유형 대신 손흥민을 기용한다. 최근 4경기 모두 같은 포메이션 형태로 임하자 축구계 일각에서는 '월드컵 무대에서 이 전술을 사용할 것'이라는 전망 나오기도 했다.
홍 감독의 백3 전술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동안의 행보와 달랐기 때문이다. 수비수 출신 홍 감독은 선수시절 내내 백3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영원한 리베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반면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는 내내 백4를 고집해왔다. 각급 대표팀과 프로팀을 이끌며 대부분의 경기에서 수비수 4명에 미드필더 2명을 배치하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해왔다.
이전까지 약 300경기에서 백4 전술을 사용하던 홍 감독으로선 최근의 시도가 파격적인 결단이었다. 이전까지 치르던 월드컵 예선과 달리 본선에서 만날 세계적 강팀을 대비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홍 감독 역시 '플랜B'라는 설명을 지속했다.
미국과 멕시코를 만났을 당시와 달리 브라질에게는 성과가 없었던 홍 감독의 플랜B였다. 1개월 전에는 적절한 롱패스로 빠르게 공격을 전개하며 결과를 냈다. 전방 압박이 더 강하고 수준 높은 수비진을 보유한 브라질을 상대로는 대표팀이 준비한 부분이 통하지 않았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대표팀의 방향성을 이제 와서 바꾸기는 어렵다고 본다. 감독은 상황에 따라 플랜A와 B를 섞어서 쓰고 싶을 것"이라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그 플랜을 다듬는 것이다. 선수비 후역습을 선택한다면 팀으로서 수비를 강화해야한다. 공격 작업에서도 더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파라과이전에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오히려 그라운드 밖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경기, 김민재, 손흥민, 이강인 등 스타들이 모두 소집된 대표팀이 치르는 경기임에도 절반 이상 비어 있는 관중석이 눈에 띄었다. 후반전에 발표된 관중 숫자는 2만 2206명에 불과했다.
최근 A매치는 장기간 매진 사례를 이어왔다. 2018년 월드컵 독일전의 극적인 승리,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대표팀의 인기는 다시 한 번 탄력을 받았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A매치 관중 규모가 움츠러들었으나 2022년을 기점으로 다시 A매치의 인기가 폭발했다. 경기장이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는 평이 이어졌다.
이번 A매치 기간을 둘러싼 분위기는 달랐다. 비니시우스(레알 마드리드), 카세미루(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가브리엘 마갈량이스(아스널) 등 세계적 스타들이 즐비한 브라질과의 경기임에도 매진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어진 파라과이전에서는 경기장 수용인원의 약 30%만을 채웠다. A매치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2022년부터 한동안 예매에 수십만 명이 몰리고 예매 창구 서버가 마비되는 상황은 옛말이 됐다.
이는 대한축구협회의 신뢰 하락이 배경으로 풀이된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며 찬사를 받았으나 이후 승부조작범 사면,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과 경질, 올림픽 예선 탈락,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논란 등으로 축구협회에 대한 지지는 줄어만 갔다.
급기야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2024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축구협회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해 해명에 나서야 했다. 그럼에도 이어진 축구협회장 선거에서 정 회장은 4선에 성공했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축구협회를 압박하기 위해 '관중석을 비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실제 이는 현실로 이어지는 추세다.
국가대표팀은 8개월 뒤 월드컵 본선이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있다. 월드컵은 감독과 선수만의 힘으로 싸우는 무대가 아니다. 축구협회의 행정력, 축구 문화, 팬들의 지지가 모두 더해져 그 나라의 '축구 파워'를 겨루는 장이다. 축구협회로선 대표팀 경기력 제고 외에도 '신뢰 회복'이라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