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2부(재판장 조형우)는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에서 배임 혐의를 인정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징역 8년에 벌금 4억 원을 선고하고 8억 1000만 원 추징을 명령했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에게는 징역 8년에 추징금 428억 원을 선고했다.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이었던 정민용 변호사는 징역 6년에 벌금 38억 원을 선고받았고, 37억 2200만 원 추징을 명령받았다. 천화동인 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징역 4년, 정영학 회계사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전원 법정구속됐다.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 성남시장은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판결문에는 이 대통령 이름이 390여 차례 등장한다. 이 대통령은 공공개발 방침을 밝히며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을 추진했다. 성남시 등은 결합개발 구상을 승인해 공공개발에 민간참여를 허용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2015년 초과이익 환수조항이 삭제되며 확정이익인 1822억 원만 공사에 귀속됐다. 2015년 설립된 화천대유는 자산관리 등을 이유로 배당금을 수령했다. 2015~2020년 김만배·남욱·정영학 등은 자신들이 실소유한 천화동인을 통해 배당금을 수령했다. 천화동인은 화천대유 주주다.
법원은 유동규 전 본부장 등과 민간개발업자들이 유착해 이 같은 사업구조를 만들었고, 그 결과 성남시에 손해를 입혔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공모 때 화천대유가 선정될 수 있도록 했고, 민간이익이 과도해 보이지 않도록 실제 분석치보다 낮은 평단가를 책정했다고 봤다.
판결문에는 이 대통령에게 불리한 대목이 나온다. 이 대통령 등 성남시 수뇌부 관여 인정, 민간업자 시장 재선 지원 및 대장동 사업 참여 의사 인지, 대장동 민간업자 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정진상과의 친밀한 관계 인정 등이다.

이어 법원은 “이재명·정진상 등 성남시 수뇌부는 피고인 유동규로부터 피고인 남욱·정영학 등 민간업자들이 환지방식으로 진행하면서 자신들이 대장동 개발사업 시행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과, 피고인 김만배가 피고인 남욱·정영학을 돕는 사실, 그리고 피고인 김만배·남욱·정영학 등 민간업자들이 이재명 시장 재선을 도와준 사례 등을 모두 보고받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유 전 본부장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진상 전 실장과 이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성남시 직원들은 이재명에게 보고하는 모든 문건에 대해 사전에 정진상의 결재를 받아야 했고, 성남시 공무원들은 정진상의 말을 곧 이재명의 말이라고 여길 정도로 둘 사이가 매우 친밀한 관계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며 “민간업자들 또한 정진상이 이재명의 측근으로 성남시의 유력인사라는 점을 충분히 알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대장동 개발사업이 수월하게 진행되게끔 되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정진상에게 접대를 하는 등 유착관계를 형성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직접적인 금품 수수 및 접대 증거 없음, 대장동 사업에 대한 행정권자로서의 재량 인정 등은 이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행정적·정책적 책임만 있을 뿐 형사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재명은 피고인 유동규 등이 민간업자들로부터 금품 내지 접대를 받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유동규·정진상 등과 민간업자들의 유착관계가 어느 정도로 형성됐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수용방식으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원은 이 대통령이 민간업자들이 시장 재선 때 도움을 준 것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수용방식 결정 시기까지 이들로부터 금품이나 접대를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고 덧붙였다.
‘428억 원 분배 약정’의 당사자는 이 대통령이라는 주장은 배척됐다. 법원은 “정진상이 이재명에게 피고인 김만배의 지분 중 일부를 받기로 했다는 등의 내용을 전달했는지는 피고인 유동규의 진술로는 입증되지 않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며 “나중에 이재명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지분을 받기로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상 이재명이 이를 약속받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정청래 ‘급발진’ 제지한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대장동 일당이 중형을 받았다는 점과 ‘성남시 수뇌부 승인’을 근거로 이 대통령의 배임을 사법부가 사실상 확인했다고 보고 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11월 1일 페이스북에 “윗선의 개입 여지를 열어뒀다는 것”이라며 “즉 윗선인 이재명 대통령과 정진상 실장이 사실상 주범임을 가리키고 있다”고 적었다.
11월 3일 장동혁 대표는 “이 대통령은 12개 혐의로 기소돼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그중 공직선거법 사건이 이미 대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됐다”며 “내일이라도 재판을 다시 시작하면 올해가 가기 전에 이재명은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이재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11월 2일 ‘재판중지법’ 추진을 시사했다. 재판중지법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 재판을 중지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이다. 민주당은 ‘재판 재개는 이론적으론 가능하다’는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 직후 재판중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에게 불리한 대목이 있는 대장동 일당 판결 직후 재판중지법 처리를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재판중지법을 ‘국정안정법’이라고 부르며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재판중지법 추진 입장을 번복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당 지도부가 간담회를 통해 ‘국정안정법’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며 “관세 협상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과 홍보 등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처럼 불협화음이 나오자 이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의 불화설이 다시 불거졌다. 그동안 두 사람은 상반되는 행보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야권과의 협치를 강조했지만, 정 대표는 강경 투쟁과 신속한 검찰·사법 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두고 당내에서조차 정 대표가 ‘자기정치’를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정 대표가 ‘당정’ 역할분담을 수행하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번 정청래 지도부의 강성 행보는 대통령실에 부담이 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APEC, 한미·한중 정상회담, 코스피 상승 등의 성과를 홍보해야 하는데, ‘사법리스크’만 부각되는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중지법 추진도 지도부가 대통령실과 소통하지 않은 결과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홍근 의원도 11월 3일 페이스북에 “민주당 내의 다소 성급하고 오락가락한 대응 과정 또한 세련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진석 수석원내운영부대표는 11월 4일 KBS ‘전격시사’에서 “대통령의 뜻은 자신과 관련된 그런 법을 올리는 것은 정쟁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자제해달라 이런 취지의 말씀을 전달했다고 한다”며 “당에서 이걸 가지고 불필요하게 논의되는 것 자체가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재선을 위해 지방선거를 이겨야 하는 정 대표 입장에서는 외부에 사법부라는 적을 만들어서 강성 지지층의 단일대오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재판 재개 가능성이 낮고, 여러 국정 성과가 부각돼야 하는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 대표의) 행보가 자기정치로 보였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불필요하게 사법부를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