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부터 공개 중인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친애하는 X’는 유년기 학대의 피해를 겪은 주인공이 남들이 우러러보는 곳까지 올라가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처절하게 짓밟는 이야기다. 아역 배우로 출발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두루 거치면서 성공적인 행보를 걷는 김유정이 악녀로 불리는 소시오패스 주인공 ‘백아진’을 연기해 화제다.

잔혹한 범죄를 만드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주로 장르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 캐릭터로 익숙하다. 드라마에서도 간혹 빌런으로 출연했지만 최근에는 작품을 이끄는 주인공인 여성 캐릭터로 자주 활용돼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를 상대하는 드라마가 늘면서 캐릭터나 소재의 표현 수위가 높아진 영향이다. 상상력을 마음껏 발현하는 기획의 증가에 힘입어 과감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들의 움직임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유정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가 된다”
김유정의 파격 변신에 이목이 쏠린 ‘친애하는 X’는 인기 웹툰이 원작이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과 부모의 부재 속에 왜곡된 성향을 갖고 성장한 백아진이 성공을 위해 주변의 장애물을 가차 없이 처단하면서 벌이는 이야기다. 백아진은 아름다운 외모로 인기를 얻은 톱스타이지만, 내면은 잔혹한 악녀다.

김유정이 소시오패스 역할에 도전할 수 있던 배경에는 연출자인 이응복 감독의 존재도 결정적이다. ‘태양의 후예’부터 ‘미스터 션샤인’,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까지 히트작을 두루 연출한 이 감독은 김유정을 만나 “백아진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밝혔다. 역할이 비현실적인 만큼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지 모를 가능성을 감안해 김유정을 보호하겠다는 연출자로서의 약속이었다.
#김고은과 수지의 선택도 사이코패스
톱배우들이 선택한 극단적인 성향의 캐릭터들은 단순히 범죄를 일삼는 악당이 아닌, 나름의 서사를 가진 입체적인 인물들로 표현된다. 수지가 배우 김우빈과 호흡을 맞춘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연기한 가영이라는 인물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그는 어릴 때부터 개구리를 잔인하게 해부하는 것에 집착하는 등 공격성을 지녔다. 이를 간파한 할머니와 동네 어른들은 가영의 성향이 발현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길들였고, ‘학습된 사이코패스’로 성장했다.

수지는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지만 어릴 때부터 사랑에 의해 학습되기에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느낌으로 연기하지 않으려 했다”며 “입력하면 출력되는 로봇처럼 재미없게 살다 보니 삶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기 때문에 본성을 깨닫기도 전에 스스로 나쁘고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수지가 표현한 사이코패스는 좋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김고은이 새 주연작 ‘자백의 대가’에서 연기한 모은은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이자, 더 끔찍한 일을 설계하는 인물이다. 상대를 꿰뚫어 보면서 심리를 파악하는 섬뜩한 능력을 지녀, 교도소 재소자들 사이에서 마녀로 통한다. 드라마는 모은이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미술 교사 윤수에게 대신 자백을 해주는 대가로 비밀스러운 제안을 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윤수는 배우 전도연이 맡아 김고은과 연기 대결을 벌인다.
최근 영화 ‘파묘’부터 ‘은중과 상연’까지 변화무쌍한 도전을 거듭하는 김고은에게도 이번 ‘자백의 대가’의 모은은 데뷔 이후 가장 파격적인 역할이다. 의중을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인물로 악의 편에 선 역할을 위해 김고은은 ‘삭발’까지 단행하면서 이미지 변화를 시도했다. 작품과 캐릭터에 갖는 특별한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선택이다. 배우들의 도전 덕분에 볼거리도 풍성해지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