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이 진행되는 동안 연예 활동 역시 전면 중단됐었기에 '4세대 최상위 걸그룹'의 귀환을 두고 기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동시에 달가워하지 않는 시선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뚜렷하다. K-팝 업계에서 유례 없었던, 스스로도 '혁명'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도전이 실패하면서 뉴진스는 복귀에 앞서 이처럼 1년 사이 변화한 대중들의 부정적인 시선도 함께 넘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뉴진스의 '혁명 혹은 반란'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다. 어도어 경영권을 놓고 '찬탈' 의혹이 불거졌던 민 전 대표는 2024년 4월 25일 첫 번째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모회사인 하이브(HYBE)에 반기를 든 이유와 이로 인해 '불법 감사'를 당하게 된 경위를 밝혔다. 여기서 근거로 삼은 것은 △르세라핌으로 인한 '하이브 첫 번째 걸그룹 데뷔' 무산 △쏘스뮤직(르세라핌의 소속사) 등 하이브 산하 타 레이블에 의한 업무방해 △빌리프랩(하이브 레이블) 소속 걸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콘셉트 카피 등이었다. 이 가운데 하이브에게 직접적으로 항의하게 된 '기폭제'는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민 전 대표의 이 같은 주장은 뉴진스의 계약해지 분쟁에도 고스란히 활용됐다. 뉴진스 측은 민 전 대표의 주장에 더해 데뷔부터 활동까지 하이브와 타 레이블로부터 극심한 방해를 받았음에도 그 기간 동안 '어도어'가 자신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며 신뢰 관계 파탄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또 하이브의 음반 사재기 의혹과 이로 인한 뉴진스의 직·간접적 피해 등 민 전 대표가 기자회견 외에 하이브, 쏘스뮤직, 빌리프랩 등과의 소송에서 언급한 주장도 그대로 계약 해지 사유로 활용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뉴진스의 주장을 배척하면서 재판부는 이들이 언급한 신뢰관계 파탄의 주된 '발생 시점'이 민 전 대표가 아직 어도어 대표 또는 임원으로 재임 중일 때라는 점을 짚었다. 특히 이번 사태의 기폭제가 된 아일릿의 카피 의혹에 대응할 때(2024년 3월 말 경) 민 전 대표 역시 하이브에 항의성 이메일만 보냈을 뿐 별다른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대표직에서 해임되고 나서야 "어도어가 이 사안에 대해 특정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뉴진스에 대한 보호 및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신뢰관계 파탄을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기도 했다.
민 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주장한 것처럼 뉴진스 역시 하이브의 민 전 대표에 대한 '부당한 불법 감사'를 신뢰 관계 파탄에 따른 계약 해지의 또 다른 이유로 들었었다.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어도어 또는 뉴진스의 독립을 계획한 민 전 대표가 기자회견 직전까지 멤버들의 부모를 이용해 하이브를 압박하려 한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가 증거로 채택되면서 이마저도 설득력을 잃어버렸다. 뉴진스의 계약 해지 주장은 사실상 대부분 민 전 대표의 발언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라도 허위이거나 해지 사유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 주장의 신빙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멤버들의 민 전 대표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결국 소송 패소로 이어진 셈이다.
한편 민 전 대표는 11월 13일 입장문을 내고 멤버들의 어도어 복귀를 존중하고 지지한다고 밝혀 왔다. 그러면서 "저와 하이브 간의 소송은 뉴진스와 전혀 관계 없는 별개의 소송"이라며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임하고 있으니 진실이 규명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K-팝계 세기의 기자회견'이라 불리며 2024년 가장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과 그해 11월 28일 뉴진스의 전속계약 해지 기자회견까지만 해도 이들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지금처럼 냉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성년자를 포함한 어린 멤버들이 거대 기업 하이브를 상대로 직접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모습에 "용기 있다", "아이돌 산업의 불공정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소송이 본격화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법적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뉴진스가 'NJZ(엔제이지)'라는 새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점, 일부 해외 무대 참여 계획이 알려진 점 등이 "법원 결정을 무시한 성급한 움직임"이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특히 민 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르세라핌, 아일릿 등 타 걸그룹들이 뉴진스의 이름과 함께 도마에 오르면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해당 그룹들이 뉴진스의 소송 과정에서 '비교 대상' 또는 '하이브의 수혜자이자 뉴진스의 가해자'로 언급되며 이미지를 크게 훼손당했고, 뉴진스가 민 전 대표의 주장만을 근거로 타 그룹의 평판에 상처를 입혔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졌다.
일부 팬은 온라인상에서 타 걸그룹을 향한 공격적인 언행을 이어가며 뉴진스 팬층 전체에 대한 인식까지 악화시켰다. 분쟁 기간 동안 비슷한 일이 계속 이어지자 "정당한 목소리를 낸 용기 있는 아이돌"로 평가받던 뉴진스는 어느새 "타 아티스트를 깎아내리며 자신들의 명분을 쌓은 집단"으로 비춰지게 됐다. 실제로 11월 12일 항소 포기와 복귀 사실을 알린 뉴진스에 대해 소셜미디어(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피해를 입은 다른 아티스트에게 사과가 먼저"라는 비판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소속사와 아티스트 간의 법정 공방에서 끝나지 않고 동료 아티스트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본격적인 활동 개시 전까지 이 점을 먼저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등 돌린 대중을 설득시킬 수 있을 지라도 뉴진스가 다시 예전의 성공 궤도를 그대로 밟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대표 프로듀서 민희진을 비롯해 뮤직비디오 제작을 맡았던 광고·영화제작사 돌고래유괴단, 'Attention'(어텐션), 'Hype Boy'(하입 보이), 'Ditto'(디토), 'ETA' 등 대표곡을 작사·작곡한 BANA 소속 프로듀서까지 그동안 뉴진스 특유의 감각적인 콘셉트와 음악, 영상미를 이끌어온 '민희진 사단'의 핵심 인물들이 모두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계약 분쟁이 일단락된 상황에서 활동 복귀를 앞두고 어도어가 어떤 방식으로 뉴진스의 고유한 색을 복원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뉴진스는 자체적인 정체성보다 '민희진 걸그룹'으로 먼저 대중들의 뇌리에 박힌 그룹이다. 민 전 대표가 기획하고 연출했던 독특한 비주얼 콘셉트와 서정적인 스토리텔링, 2000년대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브랜딩이 뉴진스의 인기를 견인해 왔다는 점에서 이런 감각적인 정체성이 사라질 경우 시장의 반응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민희진 식 감성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뉴진스의 브랜드 그 자체"라며 "대중이나 팬들에게 익숙했던 이 색깔을 그대로 이어나갈 것인지, 아니면 민희진과의 완전한 결별의 상징처럼 파격적인 변화를 보여줄 것인지 어도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다만 그 결과로 팬덤의 결속력과 해외 시장 중 어느 한쪽은 약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뉴진스의 향후 성공 여부는 '민희진 없는 뉴진스'가 어떤 새로운 서사를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어도어가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를 넘어 뉴진스만의 독자적 방향성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 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