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적인 우승 과정이었다. 대회 출발은 불안했던 T1이다. 국내 리그에서 4위를 기록, 턱걸이(4시드)로 롤드컵에 진출했다. 이에 대회에서의 첫 경기는 '외나무다리'에서 펼쳐졌다. 중국 리그 소속의 인빅터스 게이밍과의 맞대결에서 패배하면 대회에서 곧장 탈락하는 플레이-인 스테이지를 거쳐야 했다.
이어진 스위스 스테이지에서의 여정도 험난했다. 2라운드와 3라운드에서 패배를 기록하며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가까스로 '막차'를 타고 녹아웃 스테이지로 향했다. 최종 단계에서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애니원스 레전드, 탑 이스포츠 등 중국 팀들을 8강과 4강에서 연파했다. 결승에서는 같은 리그 소속의 KT 롤스터를 만나 3-2 역전 우승을 거뒀다.
e스포츠, 특히 리그오브레전드 종목은 팀의 전력을 장기간 유지하기 어려운 종목이다. 선수들의 커리어가 전통 스포츠에 비해 짧다. 장기 계약이 드문 환경에서 선수들의 이적도 잦다. 하지만 T1은 주전 멤버 5명 중 4명이 롤드컵 3연패를 합작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번 대회 T1 우승의 중심에는 원거리 딜러 포지션의 '구마유시' 이민형이 있었다. 대회에서의 위기마다 맹활약으로 팀을 구해냈다. 결승전에서도 압도적인 모습으로 생애 최초 월드 챔피언십 결승 MVP에 등극했다. 시즌 중 주전에서 밀리는 등 어려움을 겪었던 이민형은 결국 시즌 최종전에서 보상받게 됐다.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페이커' 이상혁 역시 우승 커리어를 추가했다. 지난 7월, T1과의 4년 재계약 발표로 팬들의 환호를 이끈 바 있다. 29세 선수로서 4년 재계약은 예상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이에 더해 또 한 번의 우승 경력으로 최고령 우승, 최다 우승(6회) 기록 등을 경신했다.
T1이 대회에서 높은 단계로 올라가며 자연스레 관심도 커졌다. 종목을 막론하고 스포츠에서 3연패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다수의 스포츠팬들은 대회 3연패를 달성한 팀에 '왕조'라는 별칭을 붙여준다. 단기간에 '반짝'하는 활약을 보인 것이 아니라 '시대를 지배했다'는 평가가 뒤따르게 된다.

3시즌간 우승을 독식해 왕조로 불리는 스포츠 구단들은 시대를 지배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회자된다. 일부에선 '독주'라며 견제를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많은 팬들을 끌어모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번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에서도 T1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는 유독 우렁찼다. 대회 개최지가 중국이었으나 중국 구단을 상대로 연승을 거두는 과정에서도 중국 현지 팬들은 야유보다는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스포츠에서 왕조의 대명사 격으로 불리는 팀은 미국 NBA의 시카고 불스다. 1990년대만 두 번에 걸쳐 3연패를 달성했다. 이 같은 왕조 시대 이후 좀처럼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 못하지만 불스는 여전히 NBA 최고 인기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시카고 왕조의 '황제'는 마이클 조던이 단연 첫손에 꼽힌다. 도합 여섯 번의 우승에서 확고부동한 팀의 중심으로 활약했다. 여섯 번의 파이널, 여섯 번의 MVP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두 번의 왕조 건설에 의심의 여지없는 핵심 선수였던 마이클 조던은 농구 종목 자체에서 이른바 ‘GOAT(역대 최고의 선수·Greatest Of All Time)’로 불린다.
샐러리캡, 드래프트 등으로 전력 평준화를 추구하는 미국 스포츠와 달리, 유럽 축구는 한 팀이 '장기 집권'을 하는 경우가 잦다.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유벤투스, 독일 바이에른 뮌헨 등은 모두 3연패 이상의 기록을 남긴 구단이다. 특히 뮌헨은 2023년까지 11년 연속 우승 기록을 세웠고 레알 마드리드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의 3연패로 유럽의 왕조로 남기도 했다.

국내 스포츠에도 왕조는 존재했다. KBO리그에서 해태 타이거즈(현 KIA,1986~1989)와 삼성 라이온즈(2011~2014)는 리그를 대표하는 왕조로 통한다. 해태는 KBO리그가 창설된 1982년부터 1997년까지 16년간 9회 우승을 달성한 최강팀이다. 또 다른 강팀 삼성은 2000년대 중반 이후 4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K리그에서는 일화(현 성남 FC), 전북 현대, 울산 HD가 3연패 이상의 성적을 냈다. 고 문선명 통일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로 성장한 일화 구단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두 번의 3연패를 달성하며 K리그 최강으로 군림했다. 이후 5연패의 전북 현대(2017~2021), 3연패의 울산 HD(2022~2024)가 뒤를 잇는다.
농구에서는 농구대잔치 시절 '허동택 트리오(허재-강동희-김유택)'으로 불리던 기아자동차가 5연패를 달성하며 왕조로 군림했다. KBL 출범 이후로는 기아자동차의 후신 울산 현대모비스가 유일한 3연패 구단이었다. WKBL에서는 안산 연고 시절의 신한은행(2007~2012)과 아산 우리은행(2013~2018)이 장기간 리그를 지배했다.
남자 배구 대전 삼성화재는 국내 스포츠에서 가장 압도적인 왕조로 군림했다. 실업 시절 8연패로 리그를 압도했고 V리그 출범 이후로도 한국 프로스포츠 역대 최다인 7연패를 달성했다. 반면 '배구 여제'로 불리는 김연경은 데뷔와 동시에 우승을 거머쥐는 등 선풍적인 활약을 펼쳤으나 부상 문제로 3연패 달성은 실패했다. 커리어 말미에도 지속적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지만 1회 우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이 중 KBO리그는 유독 왕조와 관련된 논쟁이 자주 발생한다. 해태와 삼성 이외에 3연패 달성에는 실패했으나 강력한 인상을 남긴, 한 시대를 풍미한 강팀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첫손에 꼽히는 팀은 해체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대 유니콘스다. 1996시즌부터 리그에 합류한 이들은 12시즌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4회 우승을 달성해 영광의 시대를 보냈다. 2000년대 후반 '야신' 김성근 감독이 이끌던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도 리그 역사에 남을 강팀으로 평가 받는다. 2연속 우승 포함 총 3회 우승을 기록했다. 2010년대에는 두산 베어스 역시 강력함을 자랑했다. 2015시즌, 14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오르며 2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두 차례 준우승에 머무르다 2019시즌 다시 트로피를 들었다.
현대와 SK, 두산 모두 때때로 왕조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단순 우승 기록 이외에도 당시 상대팀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강력함을 자랑했다. 하지만 논란 역시 뒤따른다. '3연패 기록이 없이도 왕조로 불릴 수 있는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태와 삼성 모두 3연패를 넘어 4연패까지도 도달했던 팀들이다. 현대와 SK, 두산의 연속 우승은 2연패에 머물렀기에 이들을 같은 선상에 놓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냉정하게 선을 긋는 쪽에서는 3연속 우승을 '왕조의 기준'으로 두자는 주장이 우세해졌다. 각 팀들의 강력했던 시절을 표현하며 왕조라는 수식어가 쓰이기도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 현대, SK, 두산의 경우는 이를 인정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해외 역시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왕조의 기준은 3연패로 통한다. NBA에서의 마지막 왕조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2000~2002년 3연패)로 불린다.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호흡을 맞추던 팀이다. 이후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등이 당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지만 2연패 달성 이후 3연패 도전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이는 이들을 평가할 때 조던 등과 달리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도 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