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 전 대표가 정권과 싸우며 대권까지 거머쥔 ‘윤석열의 길’을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론이 높다. 당내 비토 기류가 여전하고, 정권 초반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있어 정권 대항마로서의 역할에 의문부호가 달리기 때문이다.

2026년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를 겨냥해 몸을 풀고 있었던 한동훈 전 대표는 대장동 재판 항소 포기 사태가 벌어지자 물 만난 고기처럼 이재명 정부를 겨눴다. 모든 스피커를 총동원해 맹공을 퍼붓고 있는 것은 물론, 싸움닭 기질을 발휘하며 자신의 의견에 대해 반론을 가하는 이들에게 융단 폭격을 방불케 하는 말 폭탄을 쏟아냈다.
한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11월 8일 0시 대한민국 검찰은 자살했다”면서 “권력 오더(명령)를 받고 개처럼 항소 포기해주는 이따위 검찰을 폐지하는데 국민이 반대해줘야 할 이유는 뭔가”라고 적었다. 그리고는 “이재명 한 사람을 위한 항소포기라는 더러운 불법지시를 한 대통령실, 법무부, 대검, 중앙지검 관련자들은 모두 감옥에 가야 한다”면서 “다 끝나고 나서야 징징대는 현 담당검사들도 처벌받아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한 전 대표는 11월 12일 문재인·이재명 정부 때의 전·현직 법무부 장관들을 대상으로 공개 토론을 제안하고 나섰다. 그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중 누구라도 대장동 일당에 대한 불법 항소 취소에 대해 국민 앞에서 공개 토론하자”고 밝혔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비대위원장이 페이스북 글을 통해 항소 포기와 관련, “이번 사건은 국가가 몰수·추징할 수 없는 사건이며, 피해자는 성남시와 성남도시개발공사”라며 “이재명 대통령은 항소 포기로 얻는 이익이 없다”고 한 전 대표를 정면으로 맞받았다. 한 전 대표는 “부패재산몰수법 제6조 제1항에 따르면 피해 회복이 어렵다고 인정될 경우 몰수·추징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조 전 위원장은 이에 대해 “한동훈 씨가 ‘무식한 티만 낸다’고 한 것에 대한 답은 이미 올린 변호사 글로 대신한다”며 “(그 변호사가) 한 전 대표와 1 대 1 TV 토론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한 전 대표는 “구질구질하게 누군지도 모르는 대타를 내세우고 도망가지 말고 본인이 토론에 나오라"고 맞받아쳤다.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도 한 전 대표를 향해 “한동훈은 윤석열 징계를 씻어주기 위해 법무부가 이긴 판결도 항소심에서 일부러 느슨하게 대응하며 패소를 만들었다”며 “항소 포기 비판으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한 전 대표는 “추미애는 5년 전 조국 사태보다 상태가 더 나빠진 것 같다. 한동훈이 상고를 포기했다는 거짓말, 추미애 헛소리하는 거야 일상이지만 그래도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법적 조치하겠다”며 “이런 항소 포기는 돈 먹었거나, 빽 받았거나, 미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 대표는 한집안 식구들에게까지 날을 세우면서 스피커 볼륨을 키웠다. 대장동 항소 취소 사태와 관련해 검찰을 맹비판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을 향해 11월 11일 페이스북에서 “이재명 정권에 겁먹고 탈당해 도망간 ‘탈영병 홍준표’는 입 좀 다물라”며 “지금 다들 싸우고 있는데, 이재명 정권에는 찍소리도 못하면서”라고 썼다.
한 전 대표가 비판한 홍 전 시장의 페이스북 글은 대장동 항소 취소 사태와 관련한 내용이다. 홍 전 시장은 페이스북에서 “검찰의 사명은 거악 척결인데, 거악의 인질이 돼 헤매다가 해체당하는 검찰은 도대체 뭐냐”며 “윤석열, 한동훈 같은 검찰을 망친 정치 검사들의 탓이 아닌가”라고 했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례에서 보듯, 이재명 대통령 사법리스크가 불거질수록 보수진영에서 한 전 대표 역할이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 전 대표는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내면서 이 대통령 사법 리스크에 대한 학습을 면밀히 했다.
장관 재직 시절이던 2023년 2월 27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사건 등 관련 체포동의안에 관해 국회에서 직접 설명했던 장면은 아직도 회자된다. 그는 이 대표의 범죄 혐의를 ‘휴대전화 판매’에 비유했다. 비록 체포동의안은 부결됐지만 한 전 대표의 비유적 설명은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를 낳았다.
당시 한 전 대표는 “영업사원이 100만 원짜리 휴대폰을 주인 몰래 아는 사람에게 미리 짜고 10만 원에 판 것”이라며 “여기서 주인은 90만 원의 피해를 본 것이지 ‘10만 원이라도 벌어준 것 아니냐’는 변명이 통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장동 이익 9606억 원 중 성남시가 가져간 돈은 1830억 원에 불과해 성남시가 일은 다 해놓고 이익은 이재명 당시 시장 측과 유착된 김만배 일당이 독식하게 한 것이 이 범죄의 본질”이라고도 덧붙였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장동혁 대표의 캐치프레이즈인 싸우는 야당에 걸맞은 행동을 한 전 대표가 앞장서 해내면서 한 전 대표에 대한 당내 견제가 줄어들고 있다”며 “한 전 대표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뚝심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달변을 합친 수준의 전투 모드를 보여주면서 항소 포기 사태를 기회로 삼아 사실상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고 평했다.

한 전 대표 모델은 역설적으로 자신과 등을 돌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한 전 대표가 지금 처한 상황과는 다소 다르지만 윤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때 검찰총장으로 재임하면서 정권 실세들과 맞섰고, 결국 ‘별의 순간’을 잡아냈다. 윤 전 대통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입시비리 혐의 등을 수사했다가 정권에 찍혀 징계 등 날벼락을 맞았다. 그렇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정권 핵심은 물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정면 대결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정권에 대놓고 맞서면서 할 말을 다하는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차기 주자군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그는 검찰총장 사퇴 하루 전인 2021년 3월 3일 대구고검 방문을 명분으로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를 전격적으로 찾아 사실상의 정계 출정식을 열었다. 이날 대구에서 포토라인에 선 윤 총장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치게 된다)”이라며 집권세력을 비판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21년 3월 4일 대검찰청 청사 현관 앞에서 검찰총장 사퇴를 공표하면서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상식·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검찰총장직을 내던진 윤 전 대통령은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로서 지지율이 급등했다. 검찰총장 사퇴 직전 대구 방문에서 윤 전 대통령이 큰 환대를 받자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특검의 일원으로서 보수 궤멸에 앞장선 정권의 사냥개라는 보수 정치권의 우려조차 불식시켜버렸다.
한 전 대표로서도 ‘윤석열의 길’이 최상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정치적 기반이 없던 윤 전 대통령을 국민의힘 대권주자로까지 만든 것은 정권 실세들과의 치열한 싸움 덕분이었다. 윤 전 대통령에게 태생적으로 따라붙었던 ‘박근혜 구속’ 꼬리표도 뗄 수 있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욕하면서 닮는다고 윤 전 대통령이 걸었던 길처럼 한 전 대표는 자신이 전문가 수준으로 잘 알고 있는 대장동 사건에 대해 다시 파고들면서 불의와 싸우는 헌법 가치 수호자로서의 이미지를 쌓으려하고 있다”며 “그와 동시에 정권에 맹렬히 맞서는 보수 투사로서 역할을 재정립하면서 윤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보수 지지층으로부터의 배신자 낙인도 지워 나가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낙관보다 비관론 높아
국민의힘에선 한 전 대표가 이재명 정부와 잘 싸우고 있다는 총론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지금 당내에서 한 전 대표처럼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이른바 ‘윤 어게인’은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전 대표의 전선 투입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이유다.
윤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임기 3년차인 2019년 후반기 ‘조국 사태’ 때 정권 대항마로 등판했다. 한때 80%에 이르는 지지율을 기록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피로감이 조금씩 생겨날 무렵이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 불과 5개월여 만에 ‘싸우는 야당’ 선봉에 섰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아무리 명분이 있더라도 상대의 힘이 너무 강하면 이겨내기가 힘든데 전통적으로 대통령제 하에서 현직 대통령 임기 초반이 그러하다”며 “보수 정당의 대표를 지내면서 한 전 대표가 대장동 사건 재판 항소 포기를 기회로 삼아 대여 투쟁의 선봉대 자리와 배신자 프레임 탈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집권세력의 예봉을 꺾는 역할을 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역부족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한 전 대표의 ‘배신자’ 프레임은 윤 전 대통령과는 성질이 다르다는 점에서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 전 대표는 보수진영에서 ‘우리가 뽑은 대통령 등에 칼을 꽂은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다. 윤 전 대통령이 검사로서 박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의미인데, 이는 한 전 대표가 보수진영 차기주자로 올라서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될 전망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