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존중해서 인지도도 없이 민심을 얻은 정치인이 있다. 지금 각종 여론조사에서 만만찮은 힘을 보여주고 있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다. 대통령이 그를 띄웠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누가 띄운다고 뜨는 것이 아님을.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어려웠던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성동구청장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희망이다. 희망인 사람은 귀가 열려 있는 사람이다. 경청할 줄 아는 사람,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면 이념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가진 것이 달라도 괜찮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다 다르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복수성(Plurality)을 말하고 있는 것도 인간들의 이질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화하고 설득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설파하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개념 중에 재미있는 것은 ‘정치망각’이다.
그 개념은 하이데거의 ‘존재망각’을 패러디한 것이다. 하이데거의 제자였던 아렌트에게 중요했던 것은 ‘존재망각’이 아니라 ‘정치망각’이었다. 그녀는 아테네 민주정치가 이루어졌던 아고라광장으로 우리를 불러낸다. 공동체가 직면한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곳.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어도, 이해관계가 달라도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서민이면 어떤가, 중산층이면 어떤가, 세대가 다르면 어떤가. 정치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죽여야 하는 전쟁이 아니라 어떻게든 공동의 선을 찾아 함께 살아야 하는 살림인데. 한나 아렌트는 그 공공의 영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와 설득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이혜훈 전 의원을 지명했다. 나라의 곳간열쇠를 국민의힘에서 잔뼈가 굵은 보수인사에게 맡긴 것이다. 기존의 정치문법을 깨는 파격 인사다. 이미 송미령 농림부 장관에 놀랐고, 권오을 장관에 놀랐지만, 이번에 더 놀란 것은 그녀가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유명한 보수인사라는 점이다.
한 번도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정치인에게 함께 해보자고 손을 내미는 일은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물론 이 대통령이 정말 정책 스펙트럼을 넓일 수 있는 묘안만을 고민해서 이 후보자를 지명했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표명한 대로 운동장을 넓게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치를 한 것이었다. 누구에게? 그것은 야당에게가 아니라 국민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그런데 야당은? 국민의힘은 바로 요란스럽게 반응했다. 3시간 만에 이 후보자를 제명처리 한 것이다. 거기서 국민은 무엇을 봤을까? 국정에 참여한 것이 해당행위라면 그들에게 국정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적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입을 열 때마다 공격적인 언어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그만큼 경직되어 있는 것이고, 자신감이 없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왜 그렇게 중도층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한지, 한 언론이 ‘빈집털이’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 예견할 정도로 사람들이 왜 자꾸 빠져나가게 되는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반이재명 정서가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있어 보이지 않는 그들의 곳간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배신’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배신’하지 못하게 스크럼만 짜고 있을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발굴해야 한다. 사람을 대접해야 한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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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