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코스피 지수는 개장 직후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였다. 전 거래일 대비 1.57% 상승한 4987.06으로 장을 시작한 코스피는 개장 직후 5000선을 돌파했고, 장중 한때 5019.54포인트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4월 비상계엄 사태와 미국의 관세 부과 여파로 2200선까지 주저앉았던 우리 증시가 불과 9개월여 만에 두 배 넘게 뛰어오른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종가는 차익 실현 매물이 일부 출회되며 4952.53으로 마감했으나, 장중 5000 돌파가 갖는 상징성은 시장을 흥분시켰다.
이번 상승장의 일등 공신은 단연 ‘반도체’였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9월 이후로 D램과 낸드 가격이 폭등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 추정치가 급격히 상향 조정됐다”며 “사실상 이 두 종목이 지수를 2000포인트 가까이 끌어올린 셈”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날 삼성전자는 장중 16만 원을 터치했고, SK하이닉스도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최초로 20조 원을 돌파하고, SK하이닉스 또한 역대 분기 최대 실적을 예고하는 등 반도체 투톱의 실적 호조가 지수 상승분의 약 70%를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대외 리스크 완화도 한몫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 관세 부과 방침을 철회하면서 무역 전쟁 공포가 잦아들었고, 전날 뉴욕증시 3대지수가 모두 강세로 마감해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그린란드와 북극 지역 전체에 대한 협정의 틀을 마련했다”며 “유럽에 2월 1일부터 시행될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새 정부의 강력한 증시 부양 정책도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상법 개정 추진을 통해 이사회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강도 높은 ‘밸류업’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 같은 정책 효과에 힘입어 코스피는 새 정부 취임 7개월 반 만에 저점 대비 85.98%(최고가 기준) 급등하며 글로벌 주요 증시 중 압도적인 수익률 1위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조·방·원(조선·방산·원전)’으로 불리는 주도주들의 실적 개선과 정부의 주주 환원 정책이 맞물려 매수세를 이끌어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상영 연구원은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지속과 이에 따른 MSCI 선진 지수 편입 기대감이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촉매제가 됐다”며 “AI 기술이 반도체를 넘어 현대차 등 제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으로 확산된 점도 긍정적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상승이 일시적 과열이 아닌 추세적 상승의 시작이라는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미 지난 12월 2026년 전망을 내놓을 때부터 코스피 5000 돌파를 예견했고, 현재 타깃은 5300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최근 기업들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 전망치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며 “지수가 급등했지만 실적이 워낙 좋아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여전히 10배 초반에 불과하다. 실적에 기반한 상승 추세라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스피 PER은 10.2배 수준이다. S&P500(20~22배)이나 일본의 니케이 225(15~17배), 대만 가권지수(16~18배) 등 글로벌 주요 증시와 비교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다만 장밋빛 전망 뒤에는 ‘반도체 착시’와 관련한 경계감도 자리하고 있다. 코스피가 반도체라는 특정 업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탓이다. 서상영 연구원은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사이클 산업이라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한다”며 “향후 반도체 업황 피크(정점)가 오면 기업 이익이 급감하고 지수도 곤두박질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5000포인트에 안착하고 그 이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도체 이외에 다른 제조업 분야에서 R&D(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상법 개정 등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시장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배구조 문제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미국은 횡령·배임 등 금융범죄를 저지르면 기업을 파산시키거나 연쇄살인범 수준의 강력한 처벌을 내리지만, 한국은 휠체어 타고 나오면 끝나는 구조”라며 “이재명 정부가 잘하고는 있지만,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금융범죄에 대해 미국 수준의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해야 진정한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장은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을 소화하는 과정이 예상된다. 이경민 연구원은 “워낙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에 단기 과열에 따른 매물 소화 과정은 불가피하다”며 “조정 시점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숨 고르기 장세가 나타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향후 코스피의 방향성을 결정지을 분수령은 오는 3월 주주총회 시즌이 될 전망이다. 개정된 상법과 밸류업 정책을 기업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행하느냐가 ‘코스피 5000’의 안착 여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이경민 연구원은 “3월 주주총회에서 기업들이 1~3차 상법 개정 내용을 얼마나 수용하고 실행하는지가 시장 재평가의 또 다른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최근의 코스피 상승세와 관련해 “인위적 부양이 아닌, 왜곡된 시장이 비로소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전날 미국 증시 급락에도 코스피가 선방한 흐름을 언급하며 “대기 매수세가 엄청나다는 방증이다. 우량주를 장기 보유하라”며 시장 체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