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대표 단식을 중단시킨 것은 좀처럼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1월 22일 오전 장 대표를 찾아 “정치인으로서 옳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 목숨을 건 투쟁을 한 것, 이 점에 대해서 국민께서는 대표님의 진정성을 인정할 것”이라며 “이 자리에서 단식을 그만두겠다고 약속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장 대표는 묵묵히 두 손을 모으고 박 전 대통령의 얘기를 듣다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비록 장 대표께서 요구하신 통일교 관련 특검, 공천 비리에 대한 특검을 정부 여당이 받아주지 않아서 그럼 뭐 아무것도 얻지 못한 단식이 아니냐, 이렇게 진단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부·여당이 이렇게 대표님 단식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은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발언하면서 여권을 겨누기도 했다. 장 대표 투쟁에 힘을 싣는 발언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붉은 목도리에 검은 정장을 입고 왔다. 장 대표를 응원하기 위한 계산된 복장으로 보였다.
박 전 대통령 국회 공식 방문은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식 참석 이후 3년 8개월여 만이다. 보수 진영, 특히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장 대표를 찾아 단식 투쟁을 정리해준 것을 두고 정가에선 많은 해석이 나왔다. 장 대표 측은 “확실한 보수의 계승자로 자리매김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앞서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장 대표 단식 현장을 찾아 장 대표를 중심으로 한 보수 단합에 힘을 보태는 모습을 보였다. 유 전 의원은 1월 20일 장 대표의 손을 잡고 격려했다. 이후 기자들과 만난 유 전 의원은 “지금 우리 당이 가장 절실하게 해야 할 일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아서 보수를 재건하는 것”이라며 “일부 문제에 있어서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우리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보수로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 거기에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라고 했다.
실제 당내에선 장 대표 단식을 계기로 갈등을 멈추고 결집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그동안 장동혁 지도부와 각을 세워온 당내 소장파 초·재선 의원 모임 ‘대안과 미래’ 소속 이성권 엄태영 권영진 고동진 유용원 서범수 안상훈 의원도 1월 20일 국회에서 조찬 모임을 마친 뒤 단식 농성장을 찾아 장 대표를 응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해외 출장 귀국 일정을 앞당겨 장 대표의 단식 농성장을 찾은 장면은 보수 빅텐트 기대감을 키웠다. 이 대표는 1월 21일 새벽 귀국 직후 단식 중인 장 대표를 찾아가 “양당 공조를 강화하려면 대표님이 지휘관으로서 역할을 해주셔야 한다”며 “지금 대표님의 결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건강 먼저 챙기시라”고 말했다.
이에 장 대표는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께서 (2차 종합특검법을 반대하는) 필리버스터 1번 주자로 올라가셔서 최선을 다해주신 용기가 있었기에 저도 단식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며 공조에 감사를 표했다.
‘당원게시판 사건’ 징계 문제로 장 대표와 갈등을 빚은 한동훈 전 대표는 끝내 농성장을 찾지 않았다. 박근혜 유승민 이준석 등 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인은 물론, 장 대표와 겨뤘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까지 단식 농성장을 찾았고 일부 친한계 의원들도 단식 투쟁을 엄호했지만 한 대표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 고립이 심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이 여권을 향해 직격했듯이 단식 투쟁 현장을 찾지 않는 것은 최소한의 ‘정치 도의’도 상실한 막가는 태도라는 당원들의 성토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장 대표의 단식 투쟁은 쌍특검을 반드시 도입해 실체적 진실을 밝힌 뒤 주권자인 국민에게 알려드려야 한다는 법조인 출신 장 대표의 신념”이라며 “한 전 대표 제명 조치와 단식 투쟁을 연계하는 것은 전후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단식 농성장을 패싱한 한 전 대표는 당대표를 지낸 리더급 당원으로서 책임감 없는 행동을 했다”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한 전 대표를 가격했다. 이 대표는 1월 22일 CBS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서 한 전 대표에 대해 “정치하면서 풀어야 될 과제 중에서 아마 제일 하급인 과제인데 이런 거 하나 못 풀어가지고 어떻게 다른 정치적으로 중요한 현안들을 풀겠나”라고 비판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동료를 위로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 결행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정치적 과제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였다.

정치권 원로들은 한국 정치사 명장면들을 소환하면서 단식 투쟁의 위력을 설명했다. 자칫 생명의 위협을 부르는 단식이지만 극단적 행위인 만큼 그 반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단식을 통해 판을 뒤집을 만큼의 변화를 일궈낸 가장 대표적인 정치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신민당 총재를 지낸 뒤 신군부에 의해 정치 참여를 봉쇄당한 그는 1983년 5월 18일부터 다음달 6월 9일까지 가택 연금 상태에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저항 표시로 23일간 단식 투쟁을 했다.
당시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가택 연금된 처지였던 김 전 대통령은 학생·종교인·지식인 석방 및 복학·복직, 언론 통폐합 백지화, 대통령 직선제 회복 등을 요구하며 단식을 벌였다. 신민당 총재를 지낸 거물급 정치인이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벌였지만 전두환 정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식에도 불구, 김 전 대통령 요구는 관철된 게 없었다.
단기적 성과는 전혀 없었고 야권에 대한 전두환 정권 탄압은 지속됐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 결기는 재야와 대학생들을 민주화세력으로 결집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단식 이듬해인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한 뒤 신한민주당 창당으로 이어갔고, 1985년 총선에서 야권 돌풍을 일으켰다. 신민당 바람은 민주화 폭풍으로 힘을 키웠고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의 밑바탕이 됐다.
장 대표의 단식 농성 현장을 바라봤던 보수 정가에서는 김성태라는 이름을 호명하기도 한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김성태 전 의원은 2018년 5월, 이른바 ‘드루킹(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 특검’ 도입을 촉구하며 9일간 단식 투쟁을 했다. 임기 초반 80%대 대통령 지지율을 기록하며 일방통행하던 문재인·민주당 정부였지만 제1야당 원내대표의 목숨 건 단식 투쟁이 벌어지자 손을 들었다.
당시 여권은 드루킹 특검을 받아들였고 문재인 전 대통령 복심으로 불렸던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법정에 서게 됐다. 법원은 김 전 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는 문재인·민주당 정부가 흔들리는 단초가 됐다.

장 대표 단식은 오랜만에 국민의힘을 단일대오로 만들었다. 1월 22일 장 대표 단식 중단이 결정된 이후 열린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더는 내홍이 없어야 하며 보수가 결집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자는 얘기가 주로 나왔다”고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장 대표가 꽃길을 걸을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우선 1야당 대표의 열흘 가까운 단식에도 불구, 여권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식의 명분인 ‘쌍특검’과 관련해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잠복해 있을 뿐 사실상 해결된 것이 없는 한동훈 전 대표 제명 파동도 다시 표면화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양향자 최고위원은 1월 22일 BBS라디오 ‘아침저널’에 출연해 “(단식이) 단결의 계기는 되는데 자동으로 통합을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 전 대표와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였다.
쌍특검에서는 분명하게 공조를 밝히고 있지만 빅텐트에 대해서는 온도차를 보이고 있는 개혁신당에 대한 접근법도 장 대표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난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한덕수 전 총리 등 내란·계엄 사건에 대한 선고가 줄줄이 나오고 있는 상황도 장 대표가 넘어야 할 걸림돌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장 대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여 투쟁은 지방선거 선전을 통해 효과를 보는 것이고 결국 지금 당장 넘어야 할 산은 한동훈 처리 방안인데 단식이라는 고난도 수단까지 불사한 것을 보면 장동혁 대표는 한 전 대표를 걸림돌로 보고 결국 쳐낼 걸로 보인다. 정치인의 행위는 모든 게 명분이다. 어떤 명분을 가져오느냐에 따라 한동훈 쳐내기 과정에서 향후 또 다른 위기를 부르느냐, 불을 완전히 끄느냐를 결정지을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병준 언론인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