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는 옛말이다. 방송사는 이제 그럴싸한 명절 잔칫상을 차릴 여력이 없다. 미디어 시장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 주도권을 뺏긴 TV의 설날은 춥다.

MBC에는 ‘복면가왕’이 있다. 2015년 2월 설날 파일럿 방송으로 첫 선을 보였고, 걸그룹 EXID 솔지가 초대 가왕으로 등극했다. 이때부터 얼굴을 가린 채 오로지 가창력만으로 진검승부를 펼치는 경연 프로그램으로 높은 신뢰도를 쌓았다.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방송했고, 해외에도 포맷이 수출될 정도로 각광받았다.
이는 모두 10년 전 이야기다. 이제 명절 때 지상파 TV의 파일럿 프로그램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설 연휴가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방송사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추석에도 MBC가 ‘전국1등’을 신규 프로그램으로 내놓은 게 전부다.
올해 설 연휴에 딱히 지상파 TV의 파일럿 예능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예능도 줄이는 추세다. JTBC는 배우 이민정, 방송인 박경림, 작곡가 정재형 등이 출연할 예정이었던 예능 ‘동네한턱’의 제작을 중단했다. 다른 방송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설 연휴를 겨냥해 파일럿 프로그램을 제작할 여력조차 없는 셈이다.
OTT 플랫폼 등장 이후 미디어 패권은 바뀌었다. OTT의 영향력은 점차 넓어지는 반면, TV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투자가 감소하고, 그나마 제작하는 콘텐츠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특수’라 불렸던 명절 시장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디즈니플러스(+)는 배우 려운, 금새록, 성동일 주연의 ‘블러디 플라워’로 승부수를 띄운다. 모든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연쇄살인범 우겸(려운 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토종 OTT 티빙은 4년 만에 12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Mnet ‘쇼미더머니 12’의 온라인판인 ‘야차의 세계’를 방영 중이다. 설 연휴 기간 최종회를 볼 수 있다. 아울러 웨이브 ‘공양간의 셰프들’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로 주목받은 선재스님을 비롯해 사찰음식 명장이라 불리는 스님 6명의 이야기를 담는다.
TV도 돌파구를 찾아왔다. KBS는 명절마다 나훈아, 조용필, 임영웅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앞세운 특집쇼를 편성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추석 연휴에는 광복 80주년 대기획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를 편성했는데 시청률 15.7%를 기록하며 명절 기간을 통틀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올해 SBS는 2월 14일 ‘설 특집 콘서트 성시경’을 편성한다. 지난해 연말 열렸던 성시경의 단독 콘서트 실황을 안방으로 옮긴다. 명절을 겨냥해 독립적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이라 보기 어렵다는 면에서 한계가 느껴지지만, 그동안 TV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공연이라는 차별점도 갖는다.
대중은 ‘볼 만한 콘텐츠’는 본다. 최근에는 그런 콘텐츠가 TV가 아닌 OTT로 몰렸다. 볼 만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제작비가 투입돼야 하는데, 방송사의 현재 재정 상태로는 과감한 투자가 어렵다. 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기만 한다면 반등의 기회는 없다. 명절 때마다 따뜻한 밥상을 차려냈던 TV 시장이 찬밥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는 더 정밀한 기획을 바탕으로 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