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AI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미국의 대규모 언어모델(LLM) 개발사 앤트로픽은 1월 말 ‘클로드 코워크’를 선보인 데 이어, 2월 첫째 주 전문가용 ‘클로드 오퍼스 4.6’과 셋째 주 중급 모델 ‘클로드 소넷 4.6’을 2주 간격으로 연달아 출시했다. 특히 코딩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별도의 개발 소프트웨어를 구독하지 않고 AI와의 대화만으로 애플리케이션과 홈페이지를 제작해 수익을 창출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이 회사가 최근 몇 주 사이 발표한 AI 모델들로 인해 소프트웨어 업계 주가는 연일 하락세다.
구글 딥마인드 역시 지난 1월 29일(현지시각) 생성형 AI 모델 ‘지니 3’의 실험적 프로토타입인 ‘프로젝트 지니’를 공개하며 글로벌 게임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텍스트나 이미지 프롬프트(명령어)만으로 사용자가 실시간 조작 가능한 3D 가상 환경을 구축하는 기술이 공개되자, 유니티와 로블록스 등 기존 게임 엔진 및 플랫폼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특히 지니 3는 단순 영상 생성을 넘어 물리 법칙을 학습한 ‘월드 모델’을 기반으로 작동하며 이를 통해 가상 세계뿐만 아니라 실제 로봇과 같은 물리적 AI(피지컬 AI)와의 연계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딥시크 공개로 충격을 안겼던 중국도 2월 12일 바이트댄스가 공개한 동영상 생성 AI ‘시댄스 2.0’ 출시해 주목을 받았다. 단 몇 줄의 명령어만으로 실사에 가까운 고품질 영상을 구현해내는 성능에 미국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앞다퉈 ‘진짜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드러냈다. 미국의 주요 AI 모델들이 소스 코드를 비공개로 전환한 가운데 중국은 AI 모델들을 누구나 수정·배포할 수 있는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개발자들의 협업 데이터를 빠르게 흡수하며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근소하게 좁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 ‘G2’가 앞다퉈 시장을 선도하는 AI를 내놓으며 각축전을 벌이는 와중에 최근 국내 AI 개발 역량도 주목을 받고 있다. 하정우 대통령비서실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은 지난 1월 24일 글로벌 성능 지표인 AAII(Artificial Analysis Intelligence Index)를 인용하며 한국이 ‘명확한 AI 3위 국가’로 평가받았다고 밝혔다.
AAII는 AI 모델의 추론 능력, 에이전트 활용도, 지시 이행력 등 고난도 성능을 종합 분석해 글로벌 프런티어 모델과의 기술 근접도를 수치화한 지표다. 측정 결과에 따라 30점 이상은 세계 최상위 수준의 ‘글로벌 프런티어’, 20점대 초중반은 국가대표급 모델로 분류된다.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를 통해 발탁된 LG AI연구원의 ‘K-엑사원’이 32점을 기록하며 글로벌 프런티어 최상위권에 진입했고, 업스테이지와 SK텔레콤 역시 정예팀으로서 기술력을 입증했다. 여기에 독자 모델 사업 밖에서도 KT의 ‘믿음 K’ 등이 국가대표급 점수를 획득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한국형 소버린 AI의 ‘G3’ 도약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기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AI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속도다. 현 정권이 들어선 지 반 년이 조금 넘었고 AI 관련 투자를 적극적으로 집행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판을 바꾸고 있는 것”이라며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에는 ‘G3’ 진입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같은 기대가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준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은 “선도국들은 기존에 없던 독자적인 기술과 패러다임을 새롭게 창조하며 시장을 이끄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들이 개척한 길을 벤치마킹하며 따라가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아직 G2와의 격차도 큰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지켜봐야 할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진형 카이스트 명예교수 또한 “1, 2위인 미국·중국과의 격차가 워낙 압도적인 탓에 국가 간 순위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 단순한 모델 개발 경쟁보다는 실제 생산성과 경제적 이익을 끌어낼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AI 산업은 크게 원천기술과 응용 서비스로 나뉜다. 서버·데이터센터로 대변되는 인프라와 FM이라는 원천기술이 확보돼야 비로소 다양한 응용 서비스 구현이 가능한 구조다. 특히 고성능 FM 개발에는 막대한 컴퓨팅 자원이 필수적인 만큼, 정부는 K-LLM 기업을 위한 GPU 임차 지원과 국가 AI 컴퓨팅 센터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통해 5만 장 이상의 GPU를 확보하는 로드맵을 발표했고 지난 2025년 경주 APEC 행사에서는 엔비디아로부터 향후 26만 장의 GPU를 우선 공급받기로 확약받는 등 국가 차원의 AI 원천기술 기반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의 경우 반도체 역량과 더불어 자동차, 조선, 디스플레이 등 제조 기반의 강력한 하드웨어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가상 세계를 넘어 실제 물리적 환경에 AI를 결합하는 ‘피지컬 AI’ 구현에 유리한 고지에 있다. 메모리·스토리지 분야의 압도적 경쟁력 역시 강점이다. 고성능 GPU의 연산 속도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데이터 처리 능력을 갖춘 메모리가 필수적인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분야에서 사실상 독점에 가까운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강점에도 불구하고 ‘AI 칩 자립’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 AI연구원 연구교수는 “구글이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연산 칩인 TPU를 개발해 성공시킨 것처럼 진정한 AI 주권을 확보하려면 우리만의 NPU(신경망처리장치) 성공 사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 그러면 엔비디아에 끊임없이 종속되고 비용을 낮출 수가 없게 된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 중국 모두 독자적인 추론 칩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너무 초입 단계”라고 지적했다.
특히 AI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지을 핵심 변수로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인프라가 꼽히는데, 국내 대응 역량은 여전히 취약한 상태라는 진단이 나온다. 컴퓨팅 인프라를 뒷받침하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데이터센터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최병호 교수는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수준의 에너지를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 인프라부터 다시 세팅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미국조차 전력 부족으로 데이터센터 가동에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 우리가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엔비디아의 최신 기종들을 감당하려면 수조 원 규모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의 투자가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점도 약점이다. 이경전 UCAI 포럼 연구원장은 “2025년 8월 국가데이터센터 사업이 두 차례 유찰된 것은 민간이 리스크를 피하려 한다는 방증이다. 지방 발전소들이 데이터센터와 협력하려 해도 정작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전력이 남아도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막연한 인프라 확충에 앞서 민간이 확신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명확한 AI 비즈니스 모델 정립과 이를 유도하는 정부의 정책적 역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재식 카이스트 김재철AI대학원 교수 또한 “최근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던 오픈소스 모델 시장에 한국이 진입하면서 실질적으로 경쟁력이 생긴 부분은 긍정적인 측면이 맞다”면서도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한 국산화가 아니다. 사용자들이 최상위 모델만을 선택하는 시장 구조상 결국 향후 글로벌 1위로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본질적인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