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초고가 아파트 시장의 상승세가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 매물이 늘면서 호가는 내려가고 있지만 매수자들은 추가 하락 가능성을 점치며 관망세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일요신문이 만난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대단지 가격이 5~10% 정도 빠졌다. 고가 주택은 그보다 더 많이 조정된 곳도 있다”고 전했다.
송파구 잠실 일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송파구 대장아파트로 꼽히는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마제) 단지 인근 상가의 한 공인중개사는 “33평 기준으로 예전에는 34억~36억 원 수준이던 물건이 지금은 30억~31억 원까지 내려온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매도자들이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를 의식해 더 급해진 반면 매수자들은 한두 달 더 지켜보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지금은 일시적으로 매수자 우위 시장이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시점을 앞두고 매도 압박이 커졌다는 점을 하락의 배경으로 지목했다. 토지거래허가 절차에만 20일 안팎이 소요돼 5월 9일 전까지 계약서를 써야 하는 만큼 매도자들로서는 시간이 촉박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다주택자는 시세차익의 최대 82.5% 수준의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만큼, 아파트값이 크게 오른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세 부담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거래는 급매 위주로 드문드문 이어질 뿐 부진한 실정이다. 거래 부진은 단순히 가격 문제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 반응이다. 기존 주택을 보유한 상태로는 새 아파트 매수가 사실상 막혀 있어 갈아타기 수요조차 움직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센츠 인근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계약서만 쓴 상태로는 안 되고 잔금까지 다 받고 기존 집을 완전히 처분해 무주택 상태가 돼야 갈아탈 수 있다”며 “그럼 이 사람은 어디서 사냐. 다주택자들이 오피스텔도 다 팔고 있어 전세로도 못 들어간다. 현실적으로 집을 다 팔고 현금을 들고 대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만큼 급매가 나와도 쉽게 소진되지 않고 거래량도 기대만큼 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저가 아파트 시장도 기대만큼 거래가 살아난 분위기는 아니었다. 노원구 상계주공9·10단지 인근 중개업소들은 문의 자체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 지역은 바로 입주하려는 실거주 수요가 중심인 곳이어서 이미 거주 중인 세입자를 낀 채로는 거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상계주공아파트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다주택자 중과세 부과 발표 직후인 1~2월에 문의도 거래도 엄청 많았지만 2월 말까지 급매가 다 소진되면서 다 끝났다”며 “정부가 세입자를 낀 거래를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이러면 실거주 수요자는 당장 입주할 수 없고 또 대출도 쉽지 않아 못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과거 시장을 주도했던 중장년층의 투자 수요가 주춤한 대신 실거주 목적의 30대와 40대 유입이 늘어났다는 점은 변화로 꼽힌다.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활용하려는 젊은층 유입도 늘었지만 실제 대출 가능 금액이 크지 않아 시장을 떠받칠 정도의 매수세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지역에서는 24평형 기준 6억 원 미만 매물이 사실상 자취를 감춘 점도 수요 위축의 배경으로 꼽혔다. 급매가 나와도 6억 6000만~6억 8000만 원 수준인데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금 대출 한도가 6억 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대출에 의존해야 하는 젊은 실수요자들로서도 접근이 쉽지 않은 구조다.
도봉구 창동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장에 따르면 다주택자 매물이 일부 나오고는 있지만 가격을 크게 낮춘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10억 원짜리 매물이라도 2000만~3000만 원가량 낮춘 수준이어서 수요가 따라붙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지역 한 공인중개사는 “급매로 나온 물건들이 있지만 지금은 안 팔리고 그대로 있다”며 “갈 곳 찾기 쉽지 않은 세입자 분들도 협조적이지 않다. 집을 보여주지 않고 버티거나 퇴거 시점을 확답할 수 없다고 하는 경우도 나와 조율도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마찬가지로 세입자를 끼고 거래하기 때문에 교착상태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12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보완책을 내놓으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임대 중인 주택의 실거주 의무를 한시적으로 유예하기로 했다. 3월 3일에는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분과 묵시적 갱신 계약까지 유예 대상에 포함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앞서의 창동 지역 공인중개사는 “현실적으로 대부분 대출을 받아 매수하는데 주택담보대출은 등기 이전한 뒤 3개월 이내에는 신청해야 하고 6개월 내 전입신고 의무도 따라붙는다. 시기를 놓치면 사실상 1억 원 한도의 생활안정자금 대출밖에 나오지 않아서 결국 현금 여력이 충분한 매수자가 아니면 접근이 어렵다”며 “이런 구조에서는 거래가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다주택자 중과세 유예 일몰 발표 이후 오피스텔 거래량이 반등한 것으로 집계됐지만 현장 분위기는 통계와 온도차가 뚜렷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1월 전국 오피스텔 거래량은 개인 거래 기준 3366건으로 전년 동월보다 65.6% 증가했다. 서울에서는 영등포와 송파 잠실, 문정법조타운 등 주요 오피스텔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거래 증가세가 확인됐다.
다만 현장에서는 거래가 살아났다기보다는 ‘급매가 한 차례 소진된 결과가 통계에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오피스텔도 주택 수 산정에 포함되기 때문에 다주택자 중과세 유예 일몰을 앞두고 기존 보유자들이 세 부담을 우려해 가격을 낮춘 급매물을 내놨고 이 물량들이 소진되면서 거래량이 일시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즉, 규제 변화 직전의 특수에 가깝다는 것이 현장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문정법조타운 일대 한 공인중개사는 “다주택자 규제 중과세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순간 거래가 확 늘었다가 급매물이 소진된 지금은 오히려 거래가 이전보다 더 줄었다. 아파트 시장이 과열되던 시기에는 이 일대 중대형 평형 오피스텔이 대체재로 거래됐는데 정부에서 강력하게 규제하면서 매매가 죽었다”며 “실평수 18평 안팎 물량도 잘 안 나가고 예전보다 거래량이 줄었다. 물건은 여전히 많이 나와 있지만 구매의사가 있는 수요자들도 가격 하락을 더 기다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임대 수익을 노린 투자 상품 성격이 강했던 오피스텔 특성상 세제 부담이 커지면서 투자 매수세가 급격히 위축된 것도 그 배경으로 꼽힌다. 문정법조타운 다른 공인중개사는 “호가는 지금도 전 평형에서 확실히 내려가고 있다. 투자 목적으로 매수하려는 분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면서 거래량이 늘어난 게 아니라 떨어지면서 거래량이 늘어난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소형 오피스텔이 밀집한 지역일수록 체감 경기가 더 냉랭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잠실 신천동 일대 한 공인중개사는 “이 지역은 크게 해봐야 9평 수준인 소형 위주라 실거주 수요마저도 많지 않다. 시세를 보면 대부분 분양가 이하고 거래량도 없다”며 “무주택자가 오피스텔을 매수했다가 향후 아파트 구입 시점에 처분하지 못할 경우, 자칫 취득세 중과 대상인 2주택자가 될 수 있다는 고민들도 크다. 일시적 2주택 혜택이 있다 해도 결국 안 팔릴 경우 ‘세금 폭탄’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경매시장도 일부 조정을 받는 분위기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2월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은 101.7%로 전월 107.8%보다 6.1%포인트 하락했다. 다만 낙찰가율이 꺾인 것과 달리 낙찰률과 평균 응찰자 수는 2개월 연속 늘어나며 경매시장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일반 매매에는 실거주 의무와 관할 관청 허가가 필요해졌지만 경매시장에는 이런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틈새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추세다.
이와 관련,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각종 규제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풍선효과만 생기고 있다. 먼저 시장이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해놓고 가격 안정화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현장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규제로만 묶어버려서 실수요자들의 불편함도 크다”며 “토지거래허가제와 같은 지역 규제는 물론 대출 규제나 거래 규제도 실거주 중심으로 일부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