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대 대통령선거 이후 여권은 차기 당권을 두고 양분됐다. 대선 직후 치러진 전당대회 때 친명계와 친문계를 중심으로 한 비명계는 대립각을 세웠다. 결과는 비명계 지원사격을 받았던 정청래 대표의 당선이었다.
‘전 당원 1인 1표제 강행’ ‘민주당-혁신당 합당 추진’ ‘공소청·중수청 당정 협의’ 등 굵직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내홍은 반복됐다. 친명계는 정청래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 발목을 잡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이 대통령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직접 교통정리에 나섰다. 당정 협의 끝에 공소청·중수청 법안이 통과되자 갈등은 봉합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른바 ‘ABC론’이 다시 불을 붙였다. 3월 18일 유시민 작가는 ‘최욱의 매불쇼’에서 민주당 지지층을 ABC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우선 A 그룹은 검찰개혁 등의 가치를 지지하는 민주당 코어 지지층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에서 이재명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진보 진영을 지켜온 ‘올드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지지율이 하락하고 전방위적인 공격이 들어올 때 대통령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지지자들이라고 규정했다.
B 그룹에는 이익 추구와 생존이 우선순위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당을 차지한 상황에서 B 그룹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명계(친이재명계)’를 자처하며 A 그룹을 향해 ‘반명몰이’하는 집단으로 규정했다. 유 작가는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할 때 B 그룹은 ‘가장 먼저 돌을 던질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A 그룹과 B 그룹 사이에는 C 그룹이 있다고 했다. 이익을 추구하지만, 진영 전체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타협점을 찾는 이들이라고 했다. 가장 이상적인 집단이라고 했다. B 그룹이 많아지면 이익을 두고 서로 다투다 당과 정부가 흔들리기 때문에, C 그룹이 두텁게 존재해야 한다고 했다.
유 작가는 최근 정부의 검찰개혁 타협 기조를 두고 이 대통령 당선 원동력인 ‘내란극복연합(A 그룹)’에 균열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안철수·이준석을 축출해 집권연합을 스스로 해체시켰던 윤석열 전 대통령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B 그룹은 ‘반명몰이’를 하며 친여 스피커 김어준 씨와 정청래 대표 등 A 그룹 지지를 받는 정치인과 스피커를 공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송이 나간 후 친명 진영에선 불쾌감이 감지됐다. 유 작가가 폄하한 B 그룹이 친명 지지자들을 일컫는 ‘뉴이재명’으로 풀이됐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선을 넘었다는 반발이 쏟아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감정적으로 갈등이 커질 것이다. 집권 1년밖에 안 됐는데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 대통령 되고 나서부터 계파 갈등이 없어졌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니 친문들이 다시 올라오는 것 같다. 지지층 갈등 봉합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유 작가는 매불쇼 방송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지만 과거 모질게 대했던 일화가 있다며 정 대표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정 대표는 곧바로 SNS에 “저 또한 두 배로 사과드린다”고 답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같은 날 SNS에 “‘(정치) 혈액형 A’임을 밝히는 분들이 많은 날”이라는 글을 올렸다. 친명계가 ‘유시민의 ABC론’ 이면에 ‘친문 부활’ 시나리오가 있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친명 대표적인 스피커 이동형 작가는 3월 19일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서 “송영길 대표부터 시작해서 김민석 총리 한준호 의원 그리고 조상호 정책보좌관, 다음에 (정성호) 법무부 장관, 실명으로 다 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 작가는 “그 사람들이 이번 검찰개혁 관련해서 대통령의 의중과 다르게 갈 수 있나”라고 했다. 유 작가 등 이른바 A 그룹이 주변 인물 비판을 통해 우회적으로 이 대통령에게 칼끝을 겨누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작가는 “싸움을 누가 걸었는지 생각해보라. 그랬는데 이제 마치 피해자처럼 코스프레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이 작가는 “‘친문의 부활’을 노린다고 생각한다”며 “이재명 대통령을 고립시키고 꺼져가는 ‘친문’의 세력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김어준, 조국, 유시민 손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친문 친명 갈등설’에 기름을 부었다. 3월 22일 ‘경향TV’에서 “이재명을, 저를 반대했던 소위 친문 세력, 특정하진 않겠지만 상당수 의원이 이재명 선거 운동을 안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고민정 의원은 3월 23일 SNS에 “대선 패배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 말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의 실패는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계파 갈등 넘어 노선 충돌
이번 논쟁은 단순한 계파 갈등을 넘어 노선을 둘러싼 충돌로 읽힌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했다. 이혜훈 전 새누리당 의원 등 보수 인사 기용, 검찰개혁 속도조절 기조도 그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소위 ‘올드 민주당’은 검찰·사법개혁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의 원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완수사권 예외적 유지 등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자들을 비판한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이 대통령을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여권에선 이번 사태로 양측 지지층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친명계’ 커뮤니티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국 대표를 비판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윤석열 정권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이유가 주를 이룬다. 정 대표, 김어준 씨, 유 작가 등이 이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옛 친문을 결집하고 있다는 음모론까지 나온다.
김어준 씨가 운영하는 딴지 게시판에는 이 대통령을 향한 불만과 함께 일부 친명계 의원들이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글이 올라오고 있다. ‘뉴이재명’을 극우 세력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언주 의원의 보수 정당 시절 ‘리박스쿨 강연’ 의혹 등 친명 의원들에 대한 ‘파묘’도 잇따르고 있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이재명 대통령을 논외로 하고 있지만, (ABC론은) 어떻게 보면 이 대통령도 적통이 아니라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주당을 지킨 사람들, 친노부터 해서 이 사람들을 규합하려는 것”이라며 “이렇게 (임기 초반) 대규모로 계파가 갈라진 적은 없다. 박근혜 정부 때도 초반에는 누가 찐박인지 경쟁했다. 결국은 당원들을 둘러싼 쟁투다. 소위 비명들이 믿을 것은 당원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