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언론에 따르면, 원래 이번 정상회담은 3월 말 예정된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련된 일정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주하기 직전, 일본의 입장을 공유하고, 양국의 대중(對中) 정책을 조율하기 위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이란을 둘러싼 정세가 요동치면서 미중 정상회담은 연기됐고, 미일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 역시 중동 정세 대응으로 옮겨갔다. 일본 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미국의 요구였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고 유가 상승 압박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과 주요 이해당사국에 협력을 요청하며 해상 안전 확보를 위한 역할 분담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의 기대와 달리 각국은 군사적 관여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명확한 참여 의사를 내놓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가는 외교 채널이나 자국 의회를 통해 입장을 밝히는 방식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다. 문제는 일본이었다. 다카이치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마주하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면 상황에서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회담을 앞두고 언론에서는 “어려운 협상이 될 것” “미일 동맹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전망이 잇따랐다.

이어 다카이치 총리는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를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만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카이치 특유의 ‘스킨십 외교’와 트럼프 대통령의 찬사가 오가며 “회담은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다카이치 총리가 매력과 절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격노를 피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시선을 끈 장면은 따로 있었다. 일본 기자가 “이란 공격을 사전에 통보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기습을 노렸기 때문에 알리지 않았다. 기습에 관해서는 일본보다 더 잘 아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왜 진주만 공격을 미국에 알리지 않았느냐”라고 농담 섞어 답했다. 이란 공격을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빗댄 것이다. 진주만 공습은 1941년 12월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한 사건으로, 미군 약 24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촉발했으며, 결과적으로 일본의 패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이례적인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수십 년간 미국 대통령들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해 말하는 것을 피해왔으며, 대신 동맹국인 일본과의 관계 강화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금기를 깼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 순간 다카이치 총리의 눈이 놀란 듯 커졌으며 시종 띠고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엇갈린 회담 평가와 여론
회담 직후 백악관은 공식 홈페이지에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미국 국민의 이익을 위해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는 제목의 공식 자료를 공개하고, 이번 회담의 성과를 강조했다. 방위 협력 강화도 포함됐지만, 이란 분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일본 정부와 여당 내부에서는 다카이치 총리의 외교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함정 파견을 직접 요청받지 않아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는 안도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의 평화헌법을 언급하며 “교전 지역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데는 제약이 있다”는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분야 역시 큰 충돌 없이 정리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대미 투자·융자의 ‘2차 프로젝트’로 730억 달러 규모에 합의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특별한 변수 없이 사전 조율대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다만 핵심 쟁점이었던 중동 정세 대응, 특히 자위대의 관여 문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가 공개적으로 자위대 파견을 요구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도하고 있다”고 전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찬사를 반복하고 대미 투자와 수입 확대로 환심을 사 얻은 임시방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짚었다.

3월 20∼22일 요미우리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가 “해상자위대의 중동 파견에 대해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24%에 그쳤다. 미일 정상회담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는 69%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이번 조사에서도 71%로 여전히 높은 편이었다. 전달과 비교하면 2%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한편, 미일 정상회담에서의 다카이치 총리 발언을 두고 “아첨처럼 들린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는 취재진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이름인 ‘도널드’로 부르며 “세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사람은 도널드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으로 이란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3월 23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며 일본도 이를 지지해왔다”고 답했다. 이어 “당시 발언 역시 그런 취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