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21일 찾은 서울 성북구 돈암동 한신한진아파트는 4500세대가 넘는 대단지다. 단지 내 우촌초를 비롯해 돈암초, 서울정덕초, 동구여중, 삼선중, 서울동구고와 가까운 ‘학세권’으로 꼽히고 지하철 4호선과 우이신설선이 가깝다. 20평대부터 50평대까지 평형도 다양해 통상 전세 물량 회전이 잦은 편이지만 최근 현장 분위기는 달랐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매물이 자취를 감춘 지 꽤 됐다. 최근 한두 개씩 나오긴 하지만 30평대 전세가 예전에는 5억 5000만 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7억 5000만 원까지 올라왔다”며 “대단지인데도 전세 물건이 드문드문 나오고 월세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근 중소 단지의 전세 매물 품귀는 더 심했다. 휴플러스 409세대와 송산 345세대, 동일 236세대, 코오롱 629세대 모두 전세 물건이 단 한 건도 없었다. 돈암동 인근 공인중개사는 “코오롱아파트는 최근 1층 매매가가 8억 1000만 원선이었는데 전세가 8억 5000만 원에 나가 깜짝 놀랐다”며 “손님이 중개업소에 전세 물건을 문의하셨는데 물량이 계속 없다가 네이버에 매물이 나오니까 곧바로 가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값에 계약한 것”이라고 말했다.

래미안세레니티 인근 공인중개사는 “가끔 물건이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 월세고 전세는 정말 없다”며 “33평형 전세가 예전에는 6억 5000만 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7억 5000만 원선까지 올랐다. 네이버에 매물을 올리면 찾는 사람들이 바로 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작년과 비교하면 10% 정도 오른 것으로 보인다. 인근 30평형도 5억 5000만 원에서 6억 원으로 올랐는데 기본적으로 물건 자체가 없다”고 전했다.
전세난은 강북권 구축 대단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송파구는 최근 전국에서 가장 전셋값이 빠른 속도로 치솟고 있는 대표 지역으로 꼽힌다. 대단지와 학군 수요가 맞물린 잠실·신천동 주요 단지를 중심으로 현장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일대를 찾았다.
리센츠·엘스·트리지움 등 잠실 일대 대단지는 단지 안팎에 초·중·고교가 밀집해 학군 기반 거주 수요가 꾸준한 지역이다. 리센츠는 서울잠신초·중·고, 엘스는 잠일초·신천중, 트리지움은 버들초를 끼고 있고 인접한 잠실주공5단지와 레이크팰리스에도 각각 신천초와 송전초가 자리해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아이들 학교가 이 안에 다 있다. 그런데 집주인의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고 임대사업자 물건이 줄면서 전·월세 물량이 사라졌다”며 “원래 임대로 살던 사람들이 다 난리가 났다. 여력이 되는 사람들은 매수로 돌아서 집값을 밀어 올리고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전세를 계속 구하는데 물량이 없다”고 말했다.
리센츠 인근의 다른 공인중개사는 “엘스·리센츠·트리지움을 모두 따져도 전세 매물이 몇 건 되지 않는다”며 “엘스 한 단지만 봐도 25평형은 월세 물건 3개가 전부이고 전세는 아예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급매물 소진 이후 매매가는 원상복구됐고 전세가는 확 올랐다”며 “현재 매매가가 35억 원 안팎인 33평형 전세가는 기존 13억 원에서 최대 16억 원까지 뛰었다. 매매가 30억~31억 원선인 25평형 전세도 11억 원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마다 찾는 손님은 많은데 물건이 없어 못 구해주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6800세대가 넘는 송파구 파크리오도 잠실·신천동 전세 시장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 대단지 중 하나다. 파크리오 전세 물건은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의 공인중개사는 세제와 실거주 요인이 전세 매물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파트 주인들이 거주 기간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 많다. 장기보유특별공제가 축소될 경우 거주 기간에 따라 양도세 부담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 단지들을 초기에 사서 재건축까지 버틴 고령 집주인들도 많다. 일정 기간만 거주해도 대기업 1년 연봉보다 더 큰 세금을 아낄 수 있어 소득이 없는 집주인들이 직접 들어오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집주인들이 직접 들어오면서 세입자들이 밀려나고 전세 물건은 더 귀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파크리오 인근에는 잠실래미안아이파크 2678세대와 잠실르엘 1865세대 등 대규모 신축 단지가 최근 잇따라 입주를 시작했다. 다만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 등으로 세입자를 낀 신축 입주가 쉽지 않아 신축 입주가 주변 전세난을 크게 풀어주지는 못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잠실래미안아이파크 인근 공인중개사는 “통상 입주 기간이 끝나면 전월세 물건은 거의 없다. 그런데 지금은 워낙 물량이 없다 보니 이곳까지 넘어와 임대 물건을 문의한다”며 “우리한테도 파크리오 물건이 있는지 문의가 들어오고 신축만 보던 분들도 파크리오 쪽으로 가서 물건을 찾아달라고 하고 못 구하면 다시 주변 단지를 찾는 식이다. 찾는 분들은 분주한데 물건이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규제에 막히고 공급은 줄고…전세난 장기화 우려 커져
지난해 10월 20일부터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실거주 목적이 아닌 매입이 어려워진 데 이어 5월 10일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4년 만에 재시행되며 임대 공급은 더 위축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전셋값도 우상향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5월 1주 0.23% 오른 데 이어 5월 2주 0.28%, 5월 3주 0.29% 상승하며 오름폭을 키웠다. 이는 0.31%를 기록했던 2015년 11월 둘째 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매매가격지수(0.07% 상승)보다 전세가격지수(0.11% 상승)의 오름세가 더 컸다.
문제는 전세난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2만 7158가구로 지난해보다 40% 이상 줄어 2016년 이후 1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급은 지속 감소하는 반면 결혼과 분가에 따른 가구 수 분화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2022~2023년 전셋값 하락기에 낮은 가격으로 계약했던 세입자들이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계약갱신청구권 종료 국면에 들어서면 전세시장 압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태릉CC 공급 일정 단축과 수도권 비아파트 매입임대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시장 기대감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태릉CC는 일정을 단축해도 2032년 입주라 다음 정권에서나 효과가 나타날 것이고 지금 전세난을 풀 대책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매입임대도 일부 도움은 되겠지만 근본 문제는 아파트 입주물량 부족과 실거주 의무 부과로 인한 전세 소멸”이라고 말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1가구 1주택과 실거주 의무 강화 기조가 계속되면 전세 가격은 공급 부족으로 급등할 수밖에 없다”며 “전세를 구하지 못한 수요가 월세로 이동하면 아파트뿐 아니라 비아파트 월세까지 더 가파르게 우상향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