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첫째 주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공동전산망 화면에는 전세 물건이 줄줄이 공란으로 떠 있었다. 중개사는 롯데우성, 성원 1차, 신안, 신안동진, 양지대림 2차, 양지벽산, 염광, 우성 3차, 청구 3차, 중앙하이츠, 중앙하이츠아쿠아 등 단지 이름을 하나씩 짚어가며 “줄어든 정도가 아니고 아예 없다”고 말했다. 948세대 규모의 건영 3차와 2300세대가 넘는 우성 3차 5단지 등 대단지들도 소형부터 대형까지 전세 매물이 사실상 바닥난 상태였고, 중계동 일대를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 있는 전세 매물은 네댓 건이 전부였다.
한때는 수요자들이 매물을 놓고 조건을 비교하며 고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나온 집을 잡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게 현장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이 일대는 학원가가 밀집해 있고 학군이 좋아 교육 수요가 꾸준한 지역으로 꼽힌다. 실제로 다른 지역에 자가를 두고도 자녀 교육을 위해 중계동 전세를 구하는 수요도 적지 않다. 현장의 다른 중개사는 “보통 전세로 먼저 살면서 아이가 동네와 학교에 잘 적응하면 이후 집을 매입하려는 수요도 많다. 그러나 전세 물건이 바닥나다시피 하면서 수요자들 주거 계획도 틀어졌다”고 귀띔했다.
월세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중계역 인근 건영 2차에 1년 단기 임대 1건이 나와 있을 뿐이고 대림벽산, 라이프신동아, 청구 3차, 현대 2차, 한화꿈에그린, 중앙하이츠, 중앙하이츠아쿠아 등은 모두 “전멸”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주공아파트도 2단지에 1건, 5단지에 3~4건 정도만 남아 있을 뿐 4단지와 6단지, 7단지, 8단지, 10단지는 매물이 없었다. 학원가와 학교를 보고 들어오려는 수요는 꾸준한데 받아줄 물건은 거의 사라지면서 중계동 전월세 시장 전반이 극심한 품귀 상태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 체감은 통계와도 겹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은 9152건으로 2019년 4월 이후 8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서울 지역 전세 매물은 3월 말 기준 1만 6000건대까지 줄었고 지난해와 비교하면 약 42.3% 감소했다. 아파트 가격 대비 전세 가격이 비싸 갭투자 수요가 많았던 노원구 전세 매물은 같은 기간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음뉴타운은 강북권 대표 대단지 주거지로 학군과 교통 여건이 비교적 양호해 실수요 전세 수요가 꾸준한 곳이다. 강남권처럼 초고가 지역은 아니지만 서울 도심 접근성이 좋고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해 있어 중산층과 실수요자의 전세 체감 경기를 보여주는 지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현장 중개업소에 따르면 현재 길음뉴타운 2단지 33평 전세 1건 외에는 4단지와 5단지에 매물이 없고 7단지도 대형 평형 몇 건만 남아 있어 예년에 비해 전세 물량이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특히 지난해까지는 인근 입주 아파트들이 계속 있었는데 지금은 주변에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가 없어서 전세 물건이 많이 줄었다. 토지거래허가제가 없었으면 갭투자로 집을 사서 세를 놓거나 세입자를 끼고 거래하는 경우가 더 있었을 텐데 그런 흐름이 막혀 물량이 더 줄었다”며 “세입자들도 이사 가려고 다른 동네를 알아보다가 마땅한 전세가 없으니 결국 재계약하고 눌러앉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금천구와 구로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두 지역은 서울 서남권의 대표적인 중저가 실수요 주거지로 꼽히는데 최근 전세 매물이 빠르게 줄면서 체감 전세난이 더 심해지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 기준으로 올해 1월 1일 대비 3월 말 전세 매물 감소율은 금천구 64.1%, 구로구 60.2%로 노원구에 이어 서울에서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올해 서울 신규 입주 물량이 강남권 고가 아파트에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다는 점도 전세난을 키우는 배경으로 꼽힌다. 새 아파트 입주가 몰리면 통상 인근 전세 시장에 숨통이 트이지만, 실수요가 집중되는 노원구 등 비강남권 상당수 지역은 이런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토지거래허가제까지 겹치며 시장에 풀리는 물건이 더 줄어든 셈이다.
강북권 한 공인중개사는 “다주택자 중과세 유예 일몰로 다주택자들이 급하게 집을 팔아야 하니까 세입자들과 퇴거 협상을 하는 경우도 늘었다”며 “세입자들도 나갈 생각하니까 막막해서 매수희망자에게 집 안 보여주고 버티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재계약을 하려고 해도 전세난으로 보증금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주거비 감당이 어려운 세입자들은 하급지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5년 6월 수도권·규제지역에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금지해 세입자 전세보증금으로 매매대금이나 분양잔금을 치르는 구조를 막았고, 2025년 10월부터는 1주택자의 수도권·규제지역 전세대출 이자상환분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서울 전역 등 규제 강화 지역에서는 25억 원 초과 주택의 주담대 한도를 2억 원으로 낮추는 등 매수자 대출까지 조이면서 집을 사지 못한 수요가 전월세 시장에 더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정부 규제가 전월세 시장까지 영향을 미쳐 서민 주거난을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던 수요가 매매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면 결국 전월세 시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집값이 더 떨어지면 사겠다고 기다리는 관망 수요까지 임대차 시장에 남게 되면서 수급 불균형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실거주 의무 강화로 전세 재계약이 끊긴 세입자들까지 시장으로 다시 유입되면서 서울 전역의 전세 수요가 더 늘 수밖에 없다. 전세가격이 오른 상태에서 물량까지 부족하면 결국 월세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오르게 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서민 주거비를 압박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는 전세 공급 자체를 줄이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송 대표는 “자기 자금에 세입자 전세금까지 활용해 주택을 구매해 공급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온전히 자기 자금을 다 갖추지 못하면 그런 방식의 공급을 할 수 없게 됐다. 갭투자 억제라는 정책 목표는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장에 풀릴 수 있었던 전세 물량까지 함께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 변수로는 전세대출에 대한 DSR 적용 확대 여부가 꼽힌다. 정부는 비거주 1주택자 대출 규제와 장기 고정금리 유도 등 가계부채 구조 개선책을 예고한 상태인데, 시장에서는 이 가운데 전세대출까지 본격적인 상환능력 규제에 묶일 경우 전세 수요가 월세 시장으로 밀려나는 ‘월세화’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전세 수요 억제책이 자칫 서민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을 키우고 실수요자의 거주 안정성까지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단기간에 아파트 공급을 늘리기 어려운 만큼 당장 효과를 낼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전세난은 구조적으로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매입임대사업자 활성화나 비아파트 시장에 한정한 규제 완화처럼 단기 공급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다주택자들이 취득세 중과나 전세보증보험 강화 같은 장벽 때문에 투자를 꺼리고 있는데 비아파트는 가격 침체가 장기화한 만큼 이 분야에 한해서는 일부 규제 완화도 불가피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