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표 페인트'로 유명한 기업 '강남제비스코'가 한 예다. 2대 주주였던 오너일가 사망 시점을 감췄다는 논란에 최근 휩싸인 곳이다. 상속세를 낮추고자 주가를 낮게 형성했다는 의혹이 뒤따랐다.
이 회사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배 수준이다. 투자자들은 이 회사가 자산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현실도 풀어야 할 숙제로 지적한다. 토지 등 부동산 가치를 오랜 기간 매입가 그대로 기재하는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다. 기업 입장에선 자산 가치를 저평가 상태로 방치하면 PBR이 조금이나마 높아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저평가주'로 주목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셈이다. 강남제비스코 측은 "PBR 개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강남제비스코는 국내 도료 산업을 이끄는 대표 기업으로 꼽힌다. 1945년 설립돼 건축용, 공업용, 선박·중방식용, 자동차보수용 등 다양한 분야의 도료 제품을 공급해오고 있다. 코스피 상장사로 시가총액은 약 2000억 원 안팎이다.
강남제비스코는 2025년 12월 31일 황익준 전 사장 대표직 사임, 전문경영인 김재현 단독 대표 선임을 공시했다. 같은 날 황익수 전무의 지분 18.87%가 모친 임예정 회장에게 12월 29일 상속됐다고도 공시했다. 황 전무가 고인이 됐다는 의미다. 그는 회사 창업자인 고 황학구 전 회장의 손주이자 고 황성호 2대 회장의 차남이다. 회사에선 2대주주였다.

통상적으로 대거 지분을 보유해온 오너일가가 사망하면,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다. 주가가 오르면 상속자 세금도 늘어난다. 상속세를 고인 사망일 전후 각각 2개월 종가 평균으로 매기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유고 사실을 감추면 세금을 아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강남제비스코도 이를 노리고 황 전무 유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의혹이 있다(관련기사 [단독] ‘6월부터 상속, 공시는 12월 말’ 강남제비스코, 오너일가 사망 시점 은폐 의혹).
이런 가운데 황익준 전 강남제비스코 사장이 대표이사직뿐 아니라, 사내이사직까지 내려놓은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이는 강남제비스코 등기부를 통해 드러났다. 경영 일선에서 아예 빠지겠다는 뜻이라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해 왔다. 2025년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이같이 말했다.
PBR로 한참 시끄럽습니다만, 어떻게 정상적인 회사가 지금 팔아도 주가보다 순자산가치가 높을 수 있습니까. 경제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심지어 PBR 0.3? 3000원에 사서 회사 문 닫고 팔아버려도 1만 원 받을 수 있다는 건데 말이 안 되잖아요. 근데 그런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죠. 어느 날 경영진이 마음대로 해서 1000원 짜리가 될지 모른다. 이게 현실이잖아요.기업이 주가 상승을 억제하는 방법은 여럿이다. 장부상에 자산가치를 실제보다 축소 기재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자산가치를 실제보다 낮게 장부에 반영하면 PBR이 덜 낮아져 저평가 종목으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줄고, 그만큼 주가 상승 압력도 약해질 수 있다.

공시지가는 세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지표다. 땅의 실제 가치보다 너무 낮게 책정돼 온 탓에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했다. 당연히 실제 가치가 공시지가보다 낮은 경우는 현실에서 찾기 힘들다. 그런데 강남제비스코는 보유한 투자부동산 등의 가치가 공시지가의 약 36%에 불과하다고 기재한 것이다.
물론 회계기준 상 이런 기재 방식은 위법이 아니다. 다만 강남제비스코는 1975년 상장하고, 1992년 이후 단 한 번도 자산가치를 재평가한 적이 없어 정도가 심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주이익 제고를 위해 자산가치를 재평가하는 기업은 흔하다. 최근 사례만 봐도, 한창제지는 지난 3월 20일 경남 양산공장 토지 및 부수토지 등 자산재평가를 실시해 기존 장부가액 약 256억 원에서 재평가 금액이 855억 원이 됐다고 공시했다. 만호제강은 부산과 서울 역삼동 등에 위치한 토지 재평가 결과, 기존 360억 원에서 2514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고 3월 11일 공시했다.
한창제지와 만호제강도 자산 재평가 이전까지는 부동산 장부가액이 공시지가보다 낮게 쓰여 있었다. 그럼에도 공시지가의 50% 이상 비율은 유지해왔다.

일각에선 기업 상장 자체의 구조적 문제를 꼬집기도 한다. 기업들이 상장하는 목적이 과연 투자 유인 및 회사 성장에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상장사가 되면 비상장사일 때보다 각종 세금을 줄일 수 있는데, 일부 기업들도 이런 이유로 상장하는 게 아닐지 시장 불신이 깊다.
실제 국세청 등에 따르면, 주가누르기 방지법 핵심인 상속세만 봐도 상장사가 비상장사보다 훨씬 유리하다. 상장사는 사망 시점 전후 각각 2개월 종가 평균, 비상장사는 회사의 자산을 따져 세액을 계산한다.
예로 들면, 상장사인 강남제비스코의 임예정 회장은 아들 황 전무의 18.87% 지분을 상속받았다. 그 무렵 회사 시가총액인 약 1900억 원의 18.87%가 상속세 책정 기준이 된다. 만약 강남제비스코가 비상장이었다면, 회사 자기자본 약 6190억 원의 18.87%가 세금 계산 기준이 된다.

조 씨는 "강남제비스코는 자산가치를 재평가하면 총 자산이 1조 원에 달하고, PBR은 아마 0.2배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추산된다"면서도 "계열사 강남화성 가치만 3000억 원 수준인데 시가총액이 2000억 원 수준이란 게 말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특히 "또 다른 관계사 (주)강남은 해양 기뢰를 탐색·제거하는 소해함을 만드는 국내 최대 기업이라 미국-이란 전쟁 국면에서 테마주로 부각될 수 있었다"며 "합작사인 KS첨단소재도 최근 2차전지 사업에 돌입해 호재가 많은데, 이들 회사가 도무지 이런 사실들을 알리지 않는다"고도 꼬집었다. 그는 "임예정 회장이 향후 아들이나 딸에 또 상속을 해줘야 할 수 있기 때문일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강남제비스코 관계자는 '자산재평가 계획' 'PBR 개선 계획' 등 질문에 "(PBR 낮다고) 누가 그러냐"며 "(개선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