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는 과거 공동주택의 주차 갈등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관련 법령 개정이 먼저 필요하다는 이유로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 특히 상가 주차 갈등은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했다. 정작 단속은 엄격해졌다. 선거용 공약을 넘어 현실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월 28일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 밀집지. 여러 아파트가 맞닿아 약 3500세대가 모여 사는 대규모 주거 단지다. 이곳은 아파트와 상가를 가리지 않고 주차 갈등이 한창이다. 곳곳에 '외부차량 단지 내 주차 강력 단속' 현수막 수십 장이 내걸렸다. 주거지와 상가가 빼곡하게 들어선 탓에 공영주차장을 새로 조성할 만한 공간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아파트의 한 경비직원은 "하루 중 반나절을 외부차량 주차 단속에 쓴다"고 말했다.
여기서 중심상권에 자리한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한 상가는 '주차 전쟁'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다. 이 상가에는 차량 18대를 댈 수 있는 공용주차장이 있다. 업주들 사이에서는 특정 점포가 주차 공간을 사실상 독차지하면서, 다른 점포 이용자는 주차장 이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불만이 거세다.
업주들은 이른 시간 문을 여는 농협 식료품매장이 주차장을 먼저 이용하면서 주차 공간을 선점하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토로한다. 개점 시간이 늦은 점포는 공용주차장 이용이 어려워 외부에 주차하다 과태료를 내는 일이 반복된다고 한다. 실제 이날 일요신문 취재팀도 차량을 인근 아파트에 주차했다가 경고장 스티커가 붙은 걸 확인했다.
상가 주차장을 이용하지 못한 차량이 인근 아파트로 밀려나고, 아파트는 부족한 주차 공간을 지키려 외부차량 단속을 강화해 갈등이 생활권 전체로 번지는 악순환이다.
문제는 이런 갈등의 실마리마저 풀 방법이 마땅치 않은 점이다. 먼저, 해당 상가 관리규약이 석연찮게 설계됐다. 이 상가는 관리위원회 회장·총무·감사 3명을 뽑을 때 지하 1층에서 한 명, 지상 1층에서 한 명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지하 1층은 농협 식료품매장이 유일한 점포다. 주차장 독점 지적을 받는 곳이다. 이곳 점주가 현재 관리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다. 여러 업주가 주차 문제로 회의 개최 등을 요구하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

권익위는 인천 서구청으로 민원을 넘겼다. 서구청은 업주들에 "해당 상가 관리인단이 처음 선임된 뒤 임기 연장 등을 추가로 신고했어야 하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며 조치를 미뤘다. 또 "집합건물 관련 문제는 관리인과 업주들끼리 해결해야 하고, 구체적 판단은 법원이 한다"며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문의하는 방법을 안내했다.
구청이 상가 관리인단의 의무 위반을 먼저 확인하고도, '소송 사안'이라며 실질적 갈등 조정에는 선을 그은 셈이다. 서구청 관계자가 일요신문에는 "주차 문제는 상가 관리규약에 따라 업주들끼리 자체 해결해야 한다"며 "상가 관리규약 타당성도 명백한 위법이 없다면 지자체가 개입할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업주들의 농협 본사를 향한 민원은 농협에 이첩했다. 농협 측은 "농협 식료품 매장 역시 민원인과 같은 상가 입주사"라며 "해당 건물 관리위원회를 통해 협의해야 한다"고 답했다. 역시 '당사자끼리 해결하라'고 답한 셈이다.
일요신문은 농협 식료품매장 점주에게도 입장을 물었다. 해당 점주는 "독점의 기준이 뭐냐"며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관리규약 등에 대해서는 "제가 개인 차원에서 말씀드릴 게 없다"고 했다.
이처럼 주차장 이용 문제를 둘러싼 상가 내부 분위기는 예민해진 상태다. 최근에는 일부 점주들이 관리인단에 회의 개최를 촉구하는 게시물을 붙였으나 다시 떼어지는 일 등이 반복되기도 했다. 주차장 갈등이 이미 감정싸움으로 번져 더는 양보도 타협도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전국 민원 창구인 권익위 국민신문고 빅데이터 동향을 보면, 주차 갈등 심각성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올해 1월부터 가장 최근 공개 자료인 4월까지 민원 분야 1위는 빠짐없이 '교통'이었다. 교통 분야 민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늘 주차 관련 내용이었다.
주차 갈등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논의가 없지는 않았다. 권익위는 2022년 사유지 주차 갈등 해소 방안을 모색하는 국회 토론회와 국민 의견 수렴 절차 등을 진행했다. 이후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에 공동주택의 법정 주차 대수 보장, 주택과 주차 공간의 별도 분양 등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하지만 권고에 그쳤다. 국토부가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다른 법령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불수용했다.
상가 주차장 갈등은 그보다도 뒷전이었다. 상가 주차 문제는 여러 점포·입주자·방문객이 얽혀 공동주택만큼 이해관계가 복잡하지만, 의제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애초 공동주택 민원을 계기로 논의를 시작해서 상가 주차 갈등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와중에 주차 단속은 강화됐다. 권익위는 당시 공동주택 주차장과 주택가 이면도로, 상가 입구 등에서 발생하는 불법 주차에 대해 견인이나 과태료 부과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는 관련법 일부 개정으로 이어졌다.

전범진 변호사(새솔법률사무소)는 "상가 관리규약은 제정 때 준용해야 할 표준은 있지만 요령껏 비켜가는 행태도 가능한 게 사실"이라며 "주차 문제도 상가 관리규약만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어느 한 쪽에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 구체 법률이 없는 현실에서 사각지대 해소는 정부나 지자체 혹은 각 관청이 적극 행정에 나서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주차 갈등은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올해 2월 26일부터 5월 26일까지 90일 동안 '주차 갈등'이 언급된 기사는 468건이었다. 함께 언급된 관련 키워드 1위는 '예비후보'였다. 그 외 여러 지역이 동시에 거론됐다. 지방선거 국면에서 주차 문제가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주요 생활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