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한 원로 법조인이 말했다. 지난 5월 김건희 사건을 맡아 징역 4년을 선고한 재판장이 죽었다. 지인들에게 “심적으로 힘들다”고 했다. 어떤 게 힘들었을까. 전두환을 재판했던 재판장의 말이 떠올랐다.
“끊임없이 욕하는 전화가 걸려 오더라구. 내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말이야. 무서워서 집에 못 들어갔어. 그러다 어느 순간 공격이 딱 끊기더라구. 뭔가 집단적인 세력이 있어.”
법무장교 동기생인 대법관이 있었다. 그가 대법관 시절 내게 이런 하소연을 털어 놓았다.
“내 판결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계속 협박을 하고 따라다녀. 집요해. 겁이 나는 거야.”

“퇴근할 때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면 주위부터 살펴. 그 사람이 있나 해서 말이지. 그리고 차 문이 열리자마자 단거리선수처럼 냅다 집으로 도망가. 대법관 체면에 이래서 되겠어?”
그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집 문 앞에서 화살을 맞은 판사도 있잖아? 나는 요새 양복 안에 짧은 몽둥이를 넣고 다녀. 위기가 닥치면 싸워야지 뭐.”
고등법원장을 지냈던 분이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삶을 마감했다. 실력도 인품도 모자람이 없는 분이었다. 그가 고소를 당했다. 형사 앞에서 상대방에게 물어뜯기는 대질조사를 앞두고 삶을 포기했다. 판사들에겐 목숨 같은 것이 자존심이다. 그게 상처가 날 때는 죽고 싶을 것이다. 법무장교 동기인 변호사와 저녁을 먹을 때였다. 그는 판사 시절 불같은 성격이었다. 거짓말을 참지 못했다.
“내가 점심을 먹으러 나간 사이에 누가 와서 내 사무실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어. 소방차 여러 대가 출동하고 빌딩 전체로 불이 번질 뻔했어.”
그의 표정이 어두웠고 음식 앞에서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범인은 10년 전 민사사건 의뢰인이야. 결과가 나쁘지 않았어. 불만을 말한 적도 없고. 계속 반성해 보는데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영장이 심사되던 날 법원 앞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군중들이 법원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유리창이 박살나고 기물들이 부서졌다. 폭도가 판사실이 있는 복도를 다니면서 문을 발로 차며 판사 이름을 불렀다. 그 일을 당한 판사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집단적으로 자존심을 다친 내면에서 피가 흘렀을 것이다.
나는 40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해 왔다. 법정에서 수많은 판사의 모습을 지켜봤다. 대부분이 성실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밤을 새워 판결문을 쓰면서 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그들은 자존심 하나를 먹고 그 자리를 지킨다.
밀밭에 가라지가 섞여 있었다. 법정에서 노인에게 무식하다며 눈알을 부라리는 판사를 봤다. 더 무서운 경우도 있었다. 억울한 당사자가 손가락을 잘라 판사에게 보낸 경우가 있었다. 그 판사는 “왜 이걸 내게 보냈죠?”라고 했다. 인간을 보지 않고 기록만 보는 미숙아도 많았다. 그들의 목표는 상급심에서 칭찬받을 판결문이 전부다. 가라지들이다. 소수지만 사법부 전체를 흙탕물로 만든다. 30년 동안 법관을 해 온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판사는 사회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 바로 앞에 살인범을 놓고 그 눈을 똑바로 보면서 사형선고를 해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봐. 누가 그 일을 하고 싶겠어? 그렇지만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반면 이런 재판장도 봤다. 연쇄 살인범에 대해 형을 선고하는 법정이었다.
“사형선고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판사 생활 30년 동안 사형을 선고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기징역에 처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그를 보면서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법관이 됐다. 고요하던 법조계에 풍랑이 일고 있다. 분노가 판사석에 앉아 있다. 법의 실종이다. 판사들이 사회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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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journalis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