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일 오후 신사동 가로수길은 한산했다. 초입부터 임대 안내문이 붙은 점포가 보였고 거리 안쪽으로 걸어가면 불 꺼진 1층 상가가 이어졌다. 체감상 한 건물에 한 곳꼴로 공실이 보였고 건물 전체가 비어 있는 곳도 드물지 않았다. 가로수길 한가운데 한 블록은 라코스테와 에크루아웃렛, 차홍룸 등 일부 매장을 제외하면 사실상 통째 비어 있었다. 남아 있는 점포도 독립 브랜드보다 프랜차이즈가 많았다.
대로변 뒤편 세로수길은 상대적으로 유동 인구가 많았다. 가로수길보다 임대료 부담이 낮은 골목 안쪽에 자리잡은 요식업체와 카페에는 저녁 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같은 시간 가로수길 중심부는 한때 서울의 대표 가두상권으로 꼽혔다는 설명이 무색할 만큼 활기가 빠져 있었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던 브랜드와 점포들이 빠져나간 뒤 중심 거리를 다시 채울 신규 수요는 충분히 붙지 못하고 있다.
가로수길 일대 공인중개사무소와 점포들은 인터뷰 요청을 잇따라 거절했다. 한 점주는 “저희가 취재에 잘 응하지 않는다.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어서 이런 기사가 계속 나가면 저희한테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가로수길에서 5년 이상 가게를 운영했다고 밝힌 다른 점주는 “상권이 죽어서 매출이 줄어든 것은 맞다. SNS(소셜미디어) 홍보를 통해 단골 고객을 유치하며 장사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관광객이 없어 새로 들어오는 손님이 줄었다”며 “임대료는 내내 그대로였다. 임대료가 높은 채로 공실이 늘고 손님 발길이 뜸해지면서 다들 나갔다고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의 2025년 4분기 리테일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7대 가두상권 평균 공실률은 13.8%였다. 같은 기간 성수 공실률은 2.5%, 명동은 5.6%였지만 가로수길은 45.2%에 달했다.
가로수길 침체의 직접적인 배경에는 높은 임대료 부담이 있다. 인근 상권의 한 공인중개사는 “건물주 입장에서는 한 번 낮춘 월세가 계속 기준이 되는 게 부담”이라며 “대부분 2년 단위로 계약하더라도 임차인이 오래 있을 가능성을 봐야 하니 처음부터 낮은 가격으로 받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월세가 내려가면 임대수익이 줄고 건물 담보가치나 대출 조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그래서 공실이 있어도 임대료를 쉽게 내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프라인 상권의 주도권이 소매에서 외식으로 옮겨간 영향도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영갑 KYG상권분석연구원 교수는 서울 상권의 변화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맛집’을 꼽았다. 그는 “과거 오프라인 상권의 주도권은 옷가게, 액세서리, 화장품 같은 소매업종이 쥐고 있었지만 소매가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오프라인 상권의 중심이 외식과 경험 소비로 넘어갔다. 온라인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경험을 제공해야 살아남는 구조가 된 것”이라며 “소비하려면 결국 그 지역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맛집’들이 상권을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이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곳이 지금 뜨는 상권이다. 큰 자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대료 등 고정비가 너무 많이 드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훈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교수는 “가로수길처럼 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상권은 단일 소비층에 의존하기 때문에 임대료가 오르면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성수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 권역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카페, 쇼핑, 브랜드 팝업, 기업 활동이 함께 붙어 있어 소비층이 더 두텁다”고 말했다. 그는 “성수에는 패션, 웹툰, 엔터테인먼트 등 작은 기업과 문화·콘텐츠 산업이 함께 자리 잡고 있고 지자체 차원의 지역 정체성 구축 노력도 이어져 가로수길보다 안정적인 기반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성수 역시 임대료 상승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김영갑 교수는 “상권을 만드는 사람들은 임대료가 오르면 빠르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며 “이태원이 떴다가 임대료가 오르자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 것처럼 지금 성수도 임대료가 많이 오른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유명한 맛집들이 성수에 많이 자리 잡았지만 성수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면 그곳도 가로수길처럼 될 수 있다”며 “서울 상권은 그런 방식으로 계속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동은 관광객, 신촌·이대는 업종 부재

명동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한 차례 무너졌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으면서 다시 일어섰다. 코로나19 이전 명동을 채웠던 단일 브랜드 화장품 로드숍은 줄었고 그 자리를 드럭스토어와 약국, 뷰티 편집숍이 채웠다. 명동역에서 을지로입구역 방향으로 걷는 동안 한 블록마다 약국을 찾을 수 있었고 이 권역에만 올리브영 매장이 9곳에 달했다.
명동역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예전에는 화장품 브랜드 매장이 많았는데 팬데믹을 거친 뒤 약국이 많이 생겼다. 외국인들이 약국에서 파는 화장품이나 기능성 제품을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명동은 공실이 거의 없다. 1층 임대료가 비싸 공인중개사무소도 4~5층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3.3㎡(약 1평)당 1층은 120만~140만 원 수준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명동의 활기는 서울 가두상권 전체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올해 1분기 서울 가두상권 평균 공실률이 8.8%로 전년 동기 대비 1.9%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방한 외래관광객은 약 476만 명으로 역대 1분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앞서의 공인중개사는 “명동은 관광지로서 상징성이 있어 관광객이 계속 교체되며 들어온다”며 “일본인 중심, 중국인 중심에서 지금은 더 다양한 관광객이 찾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신촌·이대 상권은 가로수길과도 명동·성수와도 사정이 다르다. 이곳은 특정 상권으로 수요가 옮겨갔다기보다 오프라인 소비 자체가 줄어든 쪽에 가깝다. 과거 의류, 화장품, 잡화 매장이 몰렸던 이대 앞 상권은 온라인 쇼핑 확산과 신촌 기차역 공영주차장 폐쇄로 관광객 감소를 거치며 약해졌고 여전히 회복 동력을 찾지 못한 모습이다.

한국부동산원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신촌·이대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5년 3분기 15.1%를 기록한 뒤 2026년 1분기까지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서울 평균 9.1%보다 높은 수준으로, 대학가 상권의 빈 점포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훈 교수는 “내국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 SNS에 많이 노출되면서 관광객들이 반드시 가봐야 하는 장소로 인식되기도 한다”며 “이제 관광객들은 관광객만 모이는 곳보다 내국인이 많이 찾는 곳에서 매력을 느낀다. 내국인들이 찾는 장소를 따라가 로컬 문화를 확인하고 즐기려는 형태로도 바뀌고 있다”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