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오후 11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 경찰 비공식 추산 약 5000명이 모인 현장에서는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수개표’ 등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태극기를 든 참가자들이 곳곳에 자리한 가운데, 중장년층이 주를 이뤘던 낮과 달리 밤이 깊어질수록 피켓을 든 2030 청년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자신을 민주당 지지자라고 소개한 한 30대 참가자는 “현장에는 민주당 지지자도 있고, 정치 성향이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며 “참정권 침해 문제는 진영을 넘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집회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청년들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원 행정직원으로 근무하는 20대 남성 A 씨는 이날 친구들과 함께 ‘진영 논리 OUT’, ‘팩트 기반 선관위 개혁’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집회가 특정 진영의 장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고 보고 시민들의 언어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A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허위 정보가 퍼지거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는 모습을 보며 문제의식을 느꼈다”며 “참가자들의 요구를 사실에 기반해 정리하고 하나로 모아 제도권에 전달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집회에서 나타난 2030의 참여 방식에 주목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보다 참정권 침해와 공정성 훼손에 문제의식을 느낀 청년층이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결집했다는 점에서 기존 정치 집회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는 평가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들은 정치적으로 조직된 집단이라기보다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낀 시민들에 가깝다”며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만큼 특정 진영보다 공정성과 참정권 문제에 대한 공감이 결집의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집회에서 드러난 2030의 특징은 의도적으로 정치색을 배제하려 했다는 점”이라며 “이념적 양극화에 대한 피로감 속에서 공정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집단행동으로 표출된 사례”라고 분석했다.
참정권 침해를 둘러싼 문제의식은 대학가에서도 나타났다. 한국대학총학생회공동포럼은 6월 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는 국민 모두의 표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헌법상 참정권이 국가기관의 관리 부실로 인해 실질적으로 침해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6월 10일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전국 18개 대학 총학생회도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동시 시국선언에 나섰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시국선언문에서 “이것은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와 헌법,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남을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총학생회 역시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적 권리가 방해받는 현 상황은 결코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정치적 도구로 사용돼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집회가 특정 단체나 지도부 없이 분산돼 움직이는 만큼 시민들의 요구를 정리하고 방향을 제시할 구심점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주말에는 2030 청년층의 참여가 두드러졌지만 평일로 접어들면서 고령층 비중이 높아졌고, 현장 곳곳에서는 기존 극우 성향 집회에서 자주 등장했던 구호와 상징물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현장을 찾는 사람들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 “정치적 색채가 강해질수록 원래의 문제의식이 흐려질 것 같다”며 집회의 지속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집회가 단순한 정쟁으로 흘러가지 않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제도 안으로 담아낼 수 있는 창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SNS를 통해 결집한 운동은 명분만으로 장기간 지속되기 어려운 만큼 사회적으로 논의 가능한 의제를 발굴하고 이를 대표할 주체를 세우는 등 제도권과 연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국민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는 것을 의무로 하는 정치권이 청년들이 제기한 문제의식과 요구를 제도적으로 반영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는 “시민단체와 법조계 등 사회 각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청년들의 문제의식을 담아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승구 기자 win9@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