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책을 맡은 그는 OB축구회에 대해 "많은 분들이 모르시겠지만 오래된 단체다. 1977년 만들어졌다.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넘길 때까지 단체를 잘 이끌어나가야 한다"면서 "OB축구회를 '멘토링 그룹'으로 만드는 것이 재임 기간 목표 중 하나다. 결국 축구가 우리의 목표였고 그간의 동반자였다. '한국 축구가 잘돼야 한다'는 방향에서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다짐했다.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 자리한 OB축구회 사무실에는 역대 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단의 단체 사진이 벽면을 따라 걸려 있었다. 조 회장은 그동안 선수, 지도자, 행정가 등 여러 위치에서 각각의 대회에 직간접적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한국 축구의 과거와 현재를 잇겠다는 OB축구회의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는 이번 월드컵을 맞아 새로운 감회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선수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한 대회와 개최지가 같기 때문이다. 그는 40년 전을 떠올리며 모든 것이 새로웠다고 말한다.
"우리가 1954년 처음으로 월드컵(스위스)에 출전했다지만 흔적이 많이 남지 않았던 시기였다. 32년 만에 다시 나가는 월드컵이었다. 긴장 속에 정신없이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같은 지원은 꿈꿀 수도 없는 시대였다. 선수 22명에 감독, 코치, 의무, 매니저가 딱 1명씩만 동행했다(웃음). 그래도 '우리가 드디어 세계무대에서 경쟁을 하는구나'라는 설렘이 있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역시 일부 경기가 고지대에서 열렸다. 당시 파주 국가대표 축구 트레이닝센터장을 맡고 있었던 조영증 회장은 선수단의 적응을 위한 환경 조성에 나섰다. 그는 "그때 스포츠 연구소에서 산소 결핍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파주 센터 한쪽에 그런 공간을 만들었다. 선수들이 의무적으로 하루에 30분이라도 그 공간에서 지내도록 했다. 심리적으로라도 도움이 된다는 조언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32년 만에 세계무대에 도전했던 당시 대표팀은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이탈리아와 한 조에 편성돼 1무 2패를 기록했다. 강팀과 격차를 확인하면서도 사상 첫 승점 획득이라는 성과도 거뒀다. 조 회장은 상대로 만난 당대 최고의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를 떠올렸다.
"맨투맨 수비 형태가 지금보다 활발하게 활용되던 시절이다. 우리도 맨투맨을 붙였는데 마라도나가 그런다고 막히는 선수인가(웃음). 우리가 고전하고 있었는데 '진돗개' 허정무 전 감독을 마라도나에게 붙인 것이 효과를 봤다. 당연히 좀 거칠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현지에서 '태권도 축구'라고 보도도 나오지 않았나."
40년이 지난 현재 조 회장은 국내 축구를 바라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흔들릴 때도 있었고 여러 가지 말이 나올 때도 있지만 어쨌든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1승도 못하던 팀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는 팀이 되지 않았나. 첫 시작은 프로리그 출범이라고 본다. 1983년 리그가 창설되면서 선수가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후로 리그도 성장했고 환경, 선수 기량 등 모든 것이 달라졌다."
국내에 프로 리그가 없던 시절, 그는 미국 무대에 진출한 흔치 않은 경력이 있다. 미국에 메이저리그사커(MLS)가 출범하기 이전, 북미사커리그(NASL)가 운영되던 시절이었다. 조 회장은 포틀랜드 팀버스, 시카고 스팅 등을 거쳤고 좋은 활약으로 올스타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차범근 선배가 독일에 진출했고 홍콩에서 일부 선배들이 뛰기도 했다. 나도 의지는 있었는데 수비수로서 유럽 진출은 정말 어려웠다. 외국인 선수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며 "미국은 축구 붐을 일으키려고 외국인을 많이 뽑을 때다. 40일 정도 장기간 테스트를 거쳐서 포틀랜드에 입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미국에서 환경의 차이를 체감했다. 한국은 발목에 감던 테이프를 세탁해서 쓰던 시절이었다. 그는 "미국에서도 하던 대로 했더니 핀잔을 주더라. 알고 보니 의무팀에서 선수의 요구대로 테이핑을 해줬다. 재활용 할 필요도 없었다(웃음). 사실 리그 축구 수준이 크게 높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장비 관리, 재활, 의료 지원과 같은 부분은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가장 부러운 것은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고 경기를 즐기는 문화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팬 아니겠나. 대표팀이든, 프로 구단이든 경기를 지켜보는 팬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아마추어 무대 또한 향후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선수를 키운다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고 본다. 월드컵에 나서는 선수들도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지난해까지 조 회장과 한솥밥을 먹던 수비수 이기혁(강원 FC)이 깜짝 발탁돼 관심을 모았다. 그는 가까이서 지켜본 이기혁에 대해 "신체 능력도 좋고 공도 잘 다루는 장점이 많은 선수다. 반면 수비 지역에서 위험을 초래하는 단점도 뚜렷했다. 강원이 어렵지 않게 데리고 올 수 있었다"면서 "그런데 단기간에 단점을 보완하면서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가 됐다.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40년 전 멕시코에서 세계축구의 벽을 마주한 조영증 회장. 이제는 멕시코에서 도전에 나서는 후배들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다. 10회에 가까운 월드컵 무대를 꾸준히 지켜봤다. 누구보다 후배들의 성공을 염원하고 있다. 그는 "부디 박수를 받으면서 대회를 마무리해서 우리가 같이 지켜온 유산을 이어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