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스포츠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정식 메달 종목이 됐다. 이번 대회 e스포츠 종목 중 하나인 ‘뿌요뿌요’는 같은 색의 젤리 모양 캐릭터 ‘뿌요’를 4개 이상 연결해 터트리는 퍼즐게임이다. 연속해서 뿌요를 없애는 ‘연쇄’가 클수록 상대를 공격하는 데 유리하다.
2015년 도쿄에서 태어난 구리하라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생이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는 나이가 무색했다. 결승에서 그는 한국의 강동신(24)에게 첫 라운드를 내준 뒤 곧바로 15연쇄를 터뜨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10연쇄만 이어져도 최상위권 수준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국제대회 결승에서 무려 15연쇄를 만들어낸 것이다.
더 인상적인 건 그다음이었다. 상대의 공세를 살피던 구리하라는 “큰 연쇄를 노리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해 곧바로 전술을 바꿨다. 한 번에 긴 연쇄를 만드는 대신 짧은 연쇄를 수시로 이어가며 압박했다. 11세답지 않은 침착한 경기 운영에 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결과는 10-2 완승이었다.
경기를 지켜본 네티즌들도 구리하라의 실력과 승부사 기질에 주목했다. “이제 졌다고 생각한 순간 엄청난 연쇄로 뒤집었다. 11세 아이에게 저런 승부 근성이 있다는 게 놀랍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에서는 “운동도 잊지 않고 눈 건강도 잘 챙겼으면 좋겠다”며 어린 챔피언의 성장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본 매체 ‘닛칸스포츠’에 따르면 구리하라와 ‘뿌요뿌요’의 인연은 여섯 살 크리스마스에 시작됐다. 당시 열차를 좋아하던 소년에게 어머니가 ‘뿌요뿌요 테트리스2’를 선물했고, 구리하라는 곧 게임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일본 최대 규모의 격투게임 대회 ‘EVO Japan’에서 3위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2025년에는 ‘전국 도도부현 대항 e스포츠 선수권’에서 사상 처음으로 초등학생부와 일반부(오픈 참가)를 모두 제패했다. 최대 19연쇄를 만들어내는 실력에 어느새 ‘신동’이라는 별명도 따라붙었다.

구리하라만의 작은 승부 공식도 있다. 바로 장어다. 집에서 장어를 먹고 경기에 나섰다가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경기 전에 장어를 먹었을 때 승률이 엄청 좋다. 그래서 중요한 경기 전에 먹는다”고 말했다. 11세 ‘뿌요뿌요 신동’에게 장어는 말 그대로 ‘승부 음식’인 셈이다.
#우승해도 상금 못 받는 사정
실력은 일찌감치 프로급이었지만, 나이가 문제였다. 구리하라는 성인 최정상급 선수들과 겨룰 실력을 갖추고도 나이 제한에 막혀 프로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없었다. JeSU(일본e스포츠연합)가 프로 라이선스 취득 연령을 원칙적으로 13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이 열린 건 올해였다. e스포츠 선수들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어린 유망주들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자 JeSU는 2026년 2월 규정을 개정해 연령 제한을 폐지했다. 두 달 뒤인 4월, 구리하라는 마침내 초등학생 최초로 공인 프로 라이선스를 손에 넣었다.

일례로 지난 2월 열린 ‘GigaCrysta 뿌요뿌요 그랑프리 파이널’이다. 구리하라는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으나 상금 100만 엔을 받을 수 없었다. 그의 몫으로 돌아온 건 기념품이었다. 다만 이번 금메달은 이야기가 조금 다를 수 있다. 산케이신문사 계열 온라인뉴스 ‘자크자크’에 따르면 “구리하라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JOC(일본올림픽위원회)가 지급하는 포상금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JOC의 금메달 포상금은 통상 300만 엔이다.
#게임도 공부도 잡은 챔피언
아시아 정상에 오른 구리하라는 단숨에 주목받는 선수가 됐다. 그러나 경기장을 벗어나면 영락없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다. 취미는 탁구와 축구, 그리고 천연석 수집이다. “우승 선물로 무엇을 사고 싶으냐”는 질문에도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반짝이는 물건을 좋아해서 보석의 원석을 사고 싶다. 파란색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취재진에게는 구리하라는 “지금까지 꿈꿔온 ‘이상적인 모습’에 도달했으니, 이제 새로운 이상을 그려보고 싶다”고 답했다. 우승을 자축할 계획도 세웠다. 수집품에 더할 원석 몇 개를 사고 여행을 떠나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오야코동(닭고기·달걀덮밥)을 먹는 일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먼 미래에 구리하라가 그리고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뜻밖에도 그가 꿈꾸는 장래 직업은 ‘전철 기관사’다. 특히 도쿄메트로 지요다선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섯 살 크리스마스에 ‘뿌요뿌요’를 만나기 전부터 열차를 좋아했던 소년의 꿈은 금메달을 목에 건 지금도 그대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