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은 조작기소 특검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처리를 국정감사 이후로 미뤘다. 지난달 29일 의원총회에서 이달 1일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전은수 원내대변인은 의총 직후 “필요성은 다들 공감한다”면서도 “(처리) 시기는 당내 여론을 수렴해 국감 이후에 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처리 날짜에 대해서는 “그런 논의는 없었다”고 답했다. 대신 산업안전보건법과 도시정비법 개정안 등 민생법안 처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난 4월 30일 발의된 특검법은 지방선거와 9월 정기국회를 거치며 처리 시점이 잇달아 연기됐다. 민주당은 4월 30일 대장동 개발 의혹과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 12개 사건의 조작기소 여부를 수사하는 특검법을 발의했다. 당시 5월 처리를 추진했지만 논란이 확산하면서 지방선거 이후로 일정을 늦췄다. 이후 지난 9월 중 처리도 무산되면서 수개월째 입법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특검법 원안은 특별검사에게 기존 사건의 공소유지 여부를 판단할 권한까지 부여해 논란이 됐다. 기존 수사·기소 사건의 이첩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데다 이 대통령이 기소된 사건도 수사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특별검사가 대통령 관련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공소취소 관련 권한을 삭제하되 특검은 신속하게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조작기소 특검의 권한 사항 중 기존 기소 사건의 이송 및 처분에 관한 조항을 삭제하고 진상 규명에만 집중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조작기소 의혹 사건은 국회가 신속히 특검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상을 밝히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요청 이후 민주당은 특검법 처리에 다시 속도를 내며 이달 1일 본회의 상정까지 검토했다. 지난달 20일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확실하게 공소취소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으니, 특검법은 그대로 밀고 가면 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지난달 28일 특검법을 이달 1일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가능성에 대비해 소속 의원들에게 주말까지 일정을 비워두라고 공지했다. 다만 본회의 상정 여부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조정식 국회의장 측의 연기 제안이 나오면서 민주당의 기류가 달라졌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특검법을 강행할 경우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로 여야 대치가 장기화하고, 민생 현안보다 대통령의 사법 문제가 다시 정국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여기에 지난달 28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2주 연속 반등한 점도 속도조절을 고려할 배경으로 거론됐다. 어렵게 나타난 지지율 회복세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특검법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을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국회의장 측의 연기 제안에 민주당 지도부도 공감했고, 청와대와 조율한 끝에 국정감사 이후로 처리를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특검법 추진 과정에서 이미 여론 부담이 누적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공소취소 논란이 해소됐으니 추진할 수도 있지만 조작기소 특검법을 추진하던 때와 지금의 동력은 많이 바뀌어서 의논 중”이라며 “국정감사 기간에 굳이 특검법으로 시선을 분산할 필요가 적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추진 초반에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드라이브가 걸렸던 것이 후과로 남아 있는 것도 부담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내부에서는 여전히 특검법을 조기에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용기 민주당 최고위원은 “아직 결론이 나 있는 건 아니다”라며 “당장이라도 처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조작했던 내용들, 인간 사냥을 했던 내용들이 밝혀지게끔 조작기소 특검이 발족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범야권에서는 공소취소 권한을 제외하더라도 특검법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발과 함께 민주당의 법안 처리 방식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9일 의원총회에서 조작기소 특검법에 대한 당론 반대를 결정했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공소취소 권한을 주지 않을 거라 괜찮다는데 눈 가리고 아웅이고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조작기소로 결론을 내려놓고 답정너식 수사를 시킨다는 것 자체가 공소취소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진행하는 공소취소 빌드업 특검”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재명 정권에 분명히 경고한다. 기어이 공소취소를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곧 탄핵, 하야, 정권 퇴진의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신당은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법안 내용을 변경하면서 당내 여론을 이유로 처리를 미루는 민주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고금란 개혁신당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논평에서 이 대통령의 공소취소 관련 조항 삭제 요청 이후 민주당이 법안 수정을 추진하다 처리를 국감 이후로 연기한 과정을 지적했다. 고 대변인은 “법과 원칙입니까. 대통령의 말입니까. 당내 여론입니까”라며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조항이 빠지고, 여론을 살피며 처리 시점이 달라진다면 국민이 특검의 독립성을 어떻게 신뢰하겠습니까”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특검법을 서둘러 처리하기보다 여론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공소취소 권한을 뺀다 하더라도 야권에서 다시 공소취소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며 “대응해야 할 현안도 많은 상황에 특검법을 강하게 추진하면 되돌아올 역풍 때문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특검은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고 특검 수사 대상 사건은 대통령 개인의 사건이 아닌 검찰의 조작기소 의혹이 제기된 사건으로 오히려 넓어져야 탈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철준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