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A 씨는 김 씨의 폭력을 피해 별거 중이던 딸을 마중 나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범행 직후 B 씨를 태우고 강원도 방향으로 도주했으나 같은 날 낮 12시 35분쯤 강원 양양군의 한 야산에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10월 13일 서울동부지법은 김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어 "도망과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 씨는 당초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장모를 살해할 계획은 없었다며 '우발적 범행'이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그가 범행 전 최소 2주 동안 장모 A 씨의 자택 주변을 배회한 정황과 흉기 2점을 미리 소지했던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계획범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경찰은 계좌 거래 내역과 휴대전화 기록 등을 분석해 범행의 계획성과 관련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한편 A 씨 유족 측은 김 씨의 신상정보 공개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0월 15일 서울경찰청은 다음 주 초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김 씨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위험 신호 포착하고도 두 달간 대면조사 '0회'
이번 사건의 핵심은 경찰이 범행 이전부터 김 씨의 위험성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8월 22일 김 씨가 아내의 소재를 찾아 달라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가정폭력 피해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B 씨를 직접 만나 폭행 피해 진술을 확보했고, 같은 달 27일 부부의 기존 주거지 관할인 경기 수원권선경찰서로 사건을 이송했다.
경찰은 남편에게 반복적으로 폭행당했다는 B 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재발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경찰 내부에선 김 씨와 B 씨가 속한 가정을 가정폭력 위험이 큰 'A등급(고위험군)'으로 분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3년 동안 가정폭력으로 3회 이상 입건되거나 최근 1년 동안 3회 이상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출동한 가정을 A등급으로 분류한다. 더구나 김 씨는 폭행과 불법촬영 등 형사처벌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월 26일 경찰은 B 씨의 신변 보호를 위해 김 씨에 대한 접근금지 조치 등을 신청했다. 법원은 9월 30일까지 김 씨에게 주거지 퇴거와 100m 이내 접근금지, 전화·문자 등을 통한 접근금지 등의 임시조치를 내렸다. 수원권선경찰서는 9월 2일 B 씨에게 긴급신고용 스마트워치도 지급했다.

사회복무요원인 김 씨는 당시 근무지에 출근하지 않고 있었으며 경찰의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경찰은 김 씨와 연락이 닿자 10월 10일 출석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김 씨는 예정된 날짜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경찰은 조사 일정을 13일로 변경했고, 김 씨는 첫 대면조사를 이틀 앞둔 11일 범행을 저질렀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사건을 이송받은 뒤 약 한 달 반 동안 피의자의 진술을 직접 확보하지 못한 셈이다. 압수수색 영장은 증거 확보를 위한 것으로 피의자를 강제로 체포할 수 있는 영장과는 다르다. 다만 영장 집행이 반복적으로 무산되고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이 소재 파악이나 추가 강제수사 필요성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검토했는지는 따져볼 대목이다.
수원권선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김 씨가 13일에도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를 검토할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습적인 폭행 피해가 신고됐고 이미 접근금지 조치까지 내려진 상황에서 피의자의 자진 출석을 기다린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접근금지 조치 공백 속 참극…경찰, 수사·피해자 보호 감찰 착수
피해자 보호조치에서도 공백이 발생했다. 법원이 김 씨에게 내린 접근금지 등의 임시조치는 9월 30일 종료됐다. 수원권선경찰서가 추가 임시조치를 신청한 것은 종료 엿새 뒤인 10월 6일이었다. 해당 신청은 8일 법원에 접수됐고, 수원가정법원은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인 12일 새로운 임시조치를 결정했다.
법원 관계자는 기존 조치의 효력이 종료된 상태에서 신청이 들어와 단순 연장이 아닌 새로운 청구로 검토하면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기존 임시조치가 만료되기 전에 연장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구체적인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와 피해자 보호조치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경기남부경찰청은 10월 12일 수원권선경찰서에 대한 정식 감찰에 착수했다. 경기남부청 관계자는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해 정식 감찰 조사에 착수했다”며 수사와 피해자 보호조치 전반의 적절성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감찰에서는 김 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이 세 차례 무산된 경위와 임시조치 재신청 과정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피의자 소재 파악을 위해 어떤 조치가 이뤄졌는지, 고위험 대상자 분류에 따른 피해자 보호조치가 적절하게 시행됐는지도 확인 대상이다. 다만 경찰관의 규정 위반이나 직무상 과실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도 13일 국무회의에서 관계 당국에 경찰 대응 과정에 대한 신속한 진상 규명을 지시했다.

유족들은 경찰에 적극적인 대응을 여러 차례 요청했다고 주장한다. A 씨의 유족은 10월 14일 언론과 만나 가족들이 경찰에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지만 “기다려라,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보호 기간이 끝났으면 피해자가 연락할 게 아니라 경찰이 먼저 연락해 어떻게 도울지 물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유족 측은 김 씨가 과거부터 B 씨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협박했으며 올해 초에 이뤄진 혼인신고 역시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과 유족 등에 따르면 이혼 소송 중이던 김 씨는 B 씨가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하려 하자 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유족 측은 B 씨와 별거하게 된 김 씨가 사전에 찍어 둔 B 씨의 신분증을 토대로 A 씨 자택 주소를 알아냈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상 혼인신고 시 성년 증인 2명의 서명이 필요하지만 증인들이 신고 현장에 직접 동행해야 할 의무는 없다. 실제 혼인신고가 이뤄진 구체적인 경위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족들은 김 씨가 흥신소를 이용해 가족의 동선을 파악했다고도 주장한다. 반면 김 씨는 흥신소 고용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신변보호 수단인 스마트워치도 참극을 막지 못했다. B 씨에게는 긴급신고용 스마트워치가 지급됐으나 범행 당시 전원이 꺼져 있어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튿날 제주에서도 경찰의 안전조치를 받던 40대 여성이 과거 교제 관계였던 60대 남성에게 살해됐다. 해당 피해자 역시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지만 범행 당시 긴급신고를 하지 못했다.
스마트워치는 피해자가 위급 상황에서 버튼을 누르면 경찰에 신고와 위치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갑작스럽게 공격당하거나 기기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피해자 가족들까지 보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가해자가 목에 칼을 들이대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제대로 스마트워치를 작동시킬 수 있겠느냐”며 “설사 작동시키더라도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가 피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가해자의 접근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전자장치 부착과 피해자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피난처 마련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잇따른 사건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10월 19일부터 30일까지 스토킹·교제폭력·가정폭력 등 관계성 범죄 사건과 피해자 안전조치 현황을 전수점검하기로 했다. 수사 중인 사건뿐 아니라 고위험 관리 대상과 현장에서 종결된 일부 신고도 점검 대상에 포함된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